마크 벰 Marc Behm
Ballantine Books; ISBN: 0345427998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크 벰의 81년작 [아이 오브 비홀더]의 주인공은 'The Eye'라는 이름으로만 불리워지는 중년의 사립탐정입니다. Watchman, Inc.이라는 기업 규모의 사립탐정회사에 속해 있는 월급쟁이로, 크로스워드 퍼즐과 20년전에 떠난 아내와 딸에 대한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만 빼면 특별히 튀는 것도 없는 남자입니다.

어느 날, 그에게 의뢰인의 아들과 사귀고 있는 여자에 대해 알아내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여자를 미행하던 그는 그녀가 의뢰인의 아들과 결혼한 뒤 그를 죽이고 시체를 호수에 버리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아요. 두번 다시 생각할 여지 없이 그는 정신없이 살인자에 매료되고, 그녀를 뒤쫓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The Eye'와 살인마 조애너 에리스의 10년에 걸친 긴 여정이 시작됩니다. 조애너 에리스가 남자들을 살해하며 미국 전역을 누비는 동안 'The Eye'는 수호천사처럼 그녀의 뒤를 따릅니다.

[아이 오브 비홀더]는 결코 정상적인 사립탐정물이 아닙니다. 'The Eye'는 범인 잡는 것 따위는 관심도 없는 남자니까요. 반대로 그는 전적으로 살인마의 편입니다. 남은 증거를 대신 치워주고, 경찰이나 치근대는 남자들이 오면 대신 막아주기까지 하지요.

이 남자는 왜 이러는 걸까요? 그의 동기는 둘로 나뉩니다. 우선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그의 딸 매기가 조애너와 같은 나이 또래이기 때문이지요. 그는 아내와 딸이 사라진 뒤 20년 동안이나 딸과 만나는 환상을 품어왔습니다. 싸구려 B급 영화의 온갖 클리셰들을 동원해가면서요. 그런데 그의 환상을 능가할 정도로 과격한 모습으로 조애너가 등장한 것이지요. 그는 조애너가 그의 딸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 얽혀버립니다. 엉겁결에 그는 조애너를 입양해버린 것이죠.

그러나 그의 동기는 성적이기도 합니다. 그는 피핑탐입니다. 수십 년 동안이나 탐정 노릇을 하다 그만 그게 그의 성벽으로 굳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는 영화 관객들이 스크린 위의 이자벨 아자니나 애슐리 저드를 사랑하는 것처럼 조애너를 사랑합니다. 그는 팬들이 사진과 기사를 모으는 것처럼 조애너가 살해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짭니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그가 보고 있는 영화가 10년을 넘게 끄는 긴 작품이며 맘만 먹으면 인터액티브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슬프게도 그의 간섭은 종종 치명적이고, 영화 속의 이자벨 아자니에게 관객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의 존재는 늘 어둠 속에 묻혀 있습니다.

조애너 에리스는 분명 마음을 끄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철저하게 도덕과 무관한 인물입니다. 도시를 떠도는 우아한 육식 동물처럼 그녀에게 살인과 강도행각은 당연한 삶의 방식입니다. 이런 무도덕성은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이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자유로움을 조애너에게 부여합니다. 'The Eye'가 조애너에게 매료된 진짜 이유도 그 자유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손대지 않은 범죄들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 자유는 조애너를 죄는 족쇄이기도 합니다. 결코 후퇴할 수도, 투항할 수도, 제대로 된 계획도 세울 수 없는 일방 통행만이 존재할뿐이죠. FBI에게 쫓기며 서서히 몰락해가는 조애너의 지친 모습에는 늙고 지친 야수한테서 느낄 수 있는 어떤 애처로움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특징이 기존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팜므 파탈들과 조애너를 구별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마크 벰이 조애너를 성적으로 착취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적어도 그녀를 동정하고 이해하고 따라갑니다. 결코 위험한 타자로 규정하고 밖으로 밀어내지만은 않죠.

조애너에게는 그녀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하려 도둑질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어간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해서 고아원과 감화원으로 이어지는 끔찍한 이야기가요. 그녀의 삶에는 러브 스토리도 있습니다. 인생의 스승인 다라스 박사, 눈먼 아버지와 같은 랠프 포브스, 그리고 마지막 공범자이자 연인인 베키. 조애너는 이들과의 관계로 탈출구를 트려하지만 늘 좌절하고 맙니다. 아마도 그녀에게 마지막 희망이었을 베키가 죽자 그녀의 살인은 처음으로 감정적이 되기도 합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옆방문을 두드리며 일곱 명의 남자를 차례로 쏴죽이는 일은 조애너의 미친 캐릭터를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지요.

이쯤해서 페미니스트적 또는 동성애적 접근법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러기엔 이 소설은 지나치게 'The Eye'의 시선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The Eye'가 주인공인 이상, 이 소설이 그런 식으로 방향 전환을 할 가능성은 없죠. [아이 오브 비홀더]는 결국 비틀린 성적 취향을 품은 한 남자의 성적 환상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가끔 벰은 'The Eye'에게 필요 이상의 서비스를 하기도 합니다. 섹스 장면이 거의 없는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조애너의 누드 장면이 이처럼 많이 나오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마도 'The Eye'의 비틀린 성격이 조애너에게 구원의 기회가 되었을 수도 있었던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을 그런 파국으로 몰고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애너의 절망적인 삶을 고려해보면 그게 과연 파국이었을까요. (00/10/14)

DJUNA

기타등등

소설은 제목을 "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라는 옛 속담에서 따온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마지막 페이지 나오는 앤소니 신부의 말에서 따온 것입니다. 'The Eye'가 "What does God see, Father, when he looks at us?"라고 묻자 신부는 이렇게 대답하죠. "If I knew that, pal, I'd be God myself. Whatsoever he beholdeth is for his eyes only."

[아이 오브 비홀더]는 한동안 절판되었다가 작년에 복간되었습니다. 아직 국내 번역본은 나와 있지 않은 것 같군요.

두 편의 영화 버전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는 클로드 밀레 감독, 이자벨 아자니, 미셸 세로 주연의 [Mortelle randonnée]이고, 다른 하나는 이 책의 복간 원인이 된 스티븐 엘리엇 감독, 애슐리 저드, 유안 맥그리거 주연의 [아이 오브 비홀더]입니다. 첫번째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밀레의 영화가 원작에 더 가까운 모양입니다. 스티븐 엘리엇의 영화는 아이의 나이와 직업을 바꾸었고 조애너의 유산 이후 벌어지는 많은 이야기들을 삭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퀴즈 하나. "Czechoslovakia에 있는 수도는 무엇일까요?" 네 글자입니다. 'The Eye'는 10년 동안이나 풀지 못했지만 여러분은 더 빨리 풀 수 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