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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Tales of the Slayers] 이 작품에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들은 첫번째 슬레이어에서부터 미래의 슬레이어인 프레이까지 여덟 슬레이어들의 이야기를 연대기 순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일종의 슬레이어 야사집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림체와 스토리의 스타일과 분위기가 굉장히 달라서 결과적으로 꽤 흥미로운 책이 되었답니다.
'Prologue' 이야기는 터덜터덜 아프리카의 어느 벌판을 걷고 있던 슬레이어가 뱀파이어 하나를 사냥하면서 시작됩니다. 뱀파이어를 처치하자 근처 마을에서 온 한 소녀가 음식을 가지고 슬레이어에게 다가옵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소녀의 대사를 통해 우린 슬레이어들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섀도우맨이라는 마법사들이 한 소녀에게 악마를 불어넣어 슬레이어를 만들었고 바로 그 때문에 사람들이 슬레이어가 하는 일들을 고마워하면서도 정작 슬레이어 자신은 두려워한다는 거죠. 그리고 슬레이어가 죽으면 다른 소녀가 선택되어 슬레이어의 혈통을 물어받고 그들 속에서 슬레이어는 영원히 살 거라고요. 내용이 워낙 짧은 데다 (5페이지짜리랍니다) 그게 순전히 정보 제공용이니 특별히 언급할 건 없군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흙냄새나는 거친 분위기는 인상적이고 첫번째 사냥 장면은 상당히 극적입니다. (Writer: Joss Whedon, Pencils: Leinil Francis Yu, Inks: Dexter Vines, Colors: Dave Stewart, Letters: Michelle Madsen)
'Righteous' 이야기의 무대는 중세 유럽의 어느 도시. 이야기는 한 와처의 회상으로 시작합니다. 그가 훈련시킨 슬레이어는 도시를 공포에 빠트렸던 뱀파이어를 퇴치하지만 슬레이어가 악마 추종자라고 믿는 어리석은 신부의 말에 빠진 도시 사람들은 슬레이어를 불태워죽입니다. 분노한 와처는 밤에 도시의 문을 열고 죽은 뱀파이어의 동생을 도시 안으로 불러들이지요. 'Righteous'는 거의 동화처럼 짧고 간략한 모럴 스토리입니다. 그 단순함 때문에 이야기의 암담한 힘이 더 잘 살기도 하고요. 위든은 대사 없이 모든 장면들을 지문으로 처리하고 그 지문은 모두 각운이 맞는 간단한 운문으로 처리했는데, 이 역시 이야기에 잘 맞는답니다. 팀 세일의 그림 역시 이야기만큼 소박합니다. 디테일을 줄이고 종종 원색으로 단순화시킨 비주얼은 적절해요. 피가 튕기는 2페이지 그림 한 장으로 처리된 슬레이어와 뱀파이어인 세인트 저스트의 대결은 그 중 절정이고요. 하지만 그림에 조금 더 시대성이 반영되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Writer: Joss Whedon, Artist: Tim Sale, Colors: Matt Hollingsworth, Letters: Richard Starkings)
'The Innocent' 주인공인 슬레이어 클로딘느는 아마도 와처인 듯한 남자 장과 애인 사이입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클로딘느는 장과 함께 성당 담벽을 기어오르는 뱀파이어 하나를 해치웁니다. 사냥이 끝나자 장은 다음 처단할 뱀파이어가 사는 곳을 알려주고 클로딘느는 그 주소로 달려갑니다. 문제는 장이 말한 'An aristocratic tyrant who feeds from the poor in order to slake his unnatural thirst'가 '마담 기요틴'을 피해 숨어 있던 보통 사람이었고 클로딘느가 그의 심장에 말뚝을 박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죠. 클로딘느는 살인과 관련된 전형적인 버피버스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버피가 종종 겪는 "살인은 죄야!" 딜레마보다는 조금 더 복잡하군요. 클로딘느가 겪는 고통은 그녀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보다 그때까지 그녀가 믿고 있던 단순한 선악 구분이 혁명 당시의 피투성이 세상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조금 짧다는 느낌이 듭니다. 클로딘느와 장의 관계가 조금 더 살아있고 마지막 '사냥'이 보다 빠른 호흡으로 이어졌다면 어두운 결말이 더 효과적이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테드 네이피의 그림은 시대 분위기와 맞고 이야기와도 어울리지만 드라마틱한 콘트라스트는 부족합니다. 꽝 내리치는 장면이 하나쯤 있어도 되었을 걸 그랬어요. (Writer: Amber Benson, Artist: Ted Naifeh, Colors: Dave Stewart, Letters: Michelle Madsen)
'Presumption' 이야기는 슬레이어와 뱀파이어가 역시 제인 오스틴이 다루었을 법한 시골 저택의 파티에서 만나며 시작됩니다. 이들은 서로가 자신의 먹이감이라는 걸 알면서도 상대방에게 묘한 호감과 공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이들의 대화 끝은 결국 목숨을 건 결투일 수밖에 없죠. 에스핀슨은 제인 오스틴 당시 작가들이 썼을 법한 예의바르고 정중한 문장들로 이 짤막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습니다. 화사한 파스텔조의 예쁘장한 그림들도 온화하고 여성적인 오스틴 세계를 모범적으로 표현하고 있고요. 세 편의 컴컴한 이야기들을 연달아 본 뒤에 접하는 작품이라, 'Presumption'은 한숨 돌리는 휴식의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에스핀슨은 이 이야기를 통해 19세기 초 여성들의 갑갑한 삶의 환경에 대해 한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참, 이 이야기 뒤에는 깜찍한 반전이 하나 있답니다. 지금까지 다른 단편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결말을 다 밝혔지만 이건 그냥 남겨두겠어요. (Writer: Jane Espenson, Artist: P. Craig Russell, Colors: Lovern Kindzierski, Letters: Galen Showman)
'The Glittering World' 이 에피소드의 또다른 특징은 이야기 소재를 나바호 전설에서 가져왔고 슬레이어와 뱀파이어 모두가 나바호 원주민들이라는 것입니다. 주인공 슬레이어는 마치 고독한 총잡이처럼 마을 술집에 등장해 와처를 죽인 뱀파이어와 최후의 대결을 벌이는데, 이들의 대결은 두 사람 모두 백인들에게 모든 것을 잃은 원주민들이고, 둘의 입장이 그렇게까지 다른 편이 아니기 때문에 서글픈 비극성을 부여받게 됩니다. 마지막에 뱀파이어를 죽인 슬레이어는 스러져가는 적수의 시체를 거의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싸안지요. 스티브 라이버는 이 작품을 갈색조의 단색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의 그림은 서부극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살려내면서도 거칠고 잔인하고 난폭합니다. 의미있는 대사가 거의 없이 진행되는 초반부의 대결은 샘 페킨파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합니다. 이 에피소드는 마지막에 가서 [버피] 시리즈와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무대인 뱀파이어들이 우글거리는 술집이 서니데일에 서 있었거든요. 에피소드 끝에 가면 우리에게 익숙한 누군가가 깜짝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한답니다. (Writer: David Fury, Artist/Letters: Steve Lieber, Colors: Matt Hollingsworth)
'Sonnenblume' 시대 배경은 당연히 히틀러 정권 당시의 독일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소넨블룸은 히틀러 유겐트의 당원이고 슬레이어입니다. 불구인 와처와 총통의 말을 생각없이 따르던 소넨블룸은 전부터 알고 지내던 유태인 가족이 박해를 당하고 자기 자신도 그 가해자들의 일부가 되자 심각한 정신적 혼란에 빠집니다.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말려든 슬레이어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Sonnenblume'은 'The Innocent'와 같은 성격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혐오와 고통 속에 자신을 묻는 클로딘느와는 달리 소넨블룸은 에피소드 끝에서 분명한 자신의 목표를 세웁니다. 조금 이야기가 더 길게 늘리고 비교적 뻔한 반전을 내세우는 대신 후반부의 심경 변화를 더 잘 묘사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죠. 이 에피소드는 호오도의 차이가 심한 편인데, 그건 그림 때문일 겁니다. 아트 슈피겔만과 케테 콜비츠를 반쯤 섞은 듯한 거칠고 투박한 그림체에 대한 반응이 극을 달리기 때문이지요. 다들 왜 불평인지 모르겠어요. 이런 스타일은 시대 배경과 소박한 내용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데 말입니다. (Writer: Rebecca Rand Kirshner, Artist: Mira Friedmann, Letters: Jason Hvam)
'Nikki Goes Down!' 이야기는 악마 밀수꾼에게 살해당한 남자 친구의 원수를 갚는 니키의 모험담입니다. 전체적인 스토리도 당시 블랙플로이테이션 영화의 분위기와 비슷해요. 단순하고 거칠고 70년대 분위기가 풀풀 납니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의 재미는 스토리보다 스토리를 끌어가는 콜런의 다이내믹한 그림들에 있습니다. 특히 니키가 거대한 악마 박쥐를 타고 뉴욕시 지하철 터널을 누비는 장면을 한 번 보세요. (Writer: Doug Petrie, Artist: Gene Colan, Colors: Dave Stewart, Letters: Michelle Madsen)
'Tales' 이 에피소드에서 프레이는 자기 무기를 훔쳐간 스파이더 몽키를 따라왔다가 반쯤 무너진 서재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서재는 지금까지 와처들이 기록한 슬레이어들의 연대기로 가득 차 있었지요. 와처없이 자란 프레이는 책을 읽으며 자신이 혼자이지만 외롭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괜찮은 에필로그지만 그 후에 나온 7시즌 사건 전개와는 잘 맞지 않습니다. 윌로우가 모든 SIT들에게 능력을 주는 장면을 쓰면서 이걸 깜빡했던 모양이지요? 참, 프레이가 들고다니는 창과 같은 무기는 버피가 카일렙의 포도주 창고에서 발견한 그 절대 무기와 같은 것입니다.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지금까지 나온 모든 슬레이어들과 버피가 그려진 컷이 하나 나오고요. 이 그림을 팀 세일이 그린 커버와 비교해봐도 재미있겠죠. (Writer: Joss Whedon, Pencils: Karl Moline, Inks: Andy Owens, Colors: Dave Stewart, Letters: Michelle Madsen)
전체적으로... 하지만 암담한 분위기에 지나치게 기운 건 단점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일단 [버피] 시리즈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의 다양한 질감이 떨어져요. 그리고 [버피]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작가들이 어두운 분위기를 진지한 감정의 문제로 다루는 대신 쿨한 허세로 여기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든단 말이에요.
기타등등
DJU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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