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트 Flight (2012)


윕 위테이커는 여객기 파일럿입니다. 영화 초반에 그는 102명의 승객을 태운 올랜도-애틀란타 사우스젯 227 항공기를 조종하게 되는데, 비행기가 그만 중간에 심각한 고장을 일으킵니다. 그는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비행기를 거꾸로 뒤집어 활공시켜 안정시키고 기적적인 비상착륙에 성공합니다. 사망자는 겨우 여섯 명. 기적입니다. 

보통 영화 같았다면 이 부분은 이야기 끝에 붙었을 겁니다. 하지만 로버트 제메키스의 [플라이트]에서 이 드라마틱한 비상착륙은 도입부에 불과합니다. 윕 위테이커는 분명 영웅입니다. 아니, 거의 수퍼 영웅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의 영웅적 행동에는 결함이 하나 있습니다. 비행 전날, 그는 스튜어디스와 진탕 놀면서 술을 잔뜩 마셨고, 정신을 차리려고 비행 직전에 코카인을 흡입했으며, 이륙 후에는 몰래 주스에 진을 섞어 마셨지요. 불시착 이후 당연히 병원이 혈액 검사를 했으니, 이 사실은 숨길 수도 없습니다. 

이 끔찍한 법률 위반 행위가 위테이커의 비행사로서의 판단이나 능력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영화 중간에 마치 자신의 몸을 실험이라도 하듯 술을 잔뜩 들이키고 음주운전을 하는데, 그 때도 멀쩡한 정신의 보통 운전자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실력을 보입니다. 아주 드물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술에 영향을 받지 않거나 받아도 이런 작업에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하지만 세상엔 그런 부류에 속한 사람들보다 자신이 그런 부류라고 믿는 보통 사람들이 더 많지요. 아무리 윕 위테이커가 첫 번째 카테고리에 속한다고 해도 그가 두 번째 부류를 막는 법률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윕 위테이커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됩니다. 한마디로 그는 개망나니입니다. 그에게서 의미있는 것은 조종사로서의 실력밖에 없는데, 그것과 그에 대한 오만방자함이 그의 정신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사생활은 당연히 엉망. 오래 전에 이혼당했고 아내와 아들은 모두 그를 싫어합니다. 

영화의 드라마는 윕 위테이커의 인간적 성장입니다. 이론상, 그는 영화 시작할 때와 똑같은 상태로 이야기를 끝낼 수 있습니다. 끝내주는 변호사 휴 랭과 노조가 그를 돕고 있으니까요. 그냥 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손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윕 위테이커는 정말 그러고 나가도 별로 이상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고, 도덕적이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에게 끊임없이 압력을 가하면서 그에게 변화를 요구합니다. 그렇게 다채로운 드라마라고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여전히 강렬하죠. 일단 캐릭터와 상황이 제대로 잡혀 있고 덴젤 워싱턴이라는 멋진 배우가 그 캐릭터를 살려주고 있으니까요. 

신경 쓰이는 것은 영화의 기독교적 면입니다. 이 영화가 기독교 선도영화라는 건 아닙니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기독교도인 건 영화의 무대가 미국 남부이기 때문에 당연하죠. 심지어 영화는 작정하고 거의 광신도에 가까운 몇몇 기독교인 캐릭터를 놀려대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 윕의 심경변화 뒤에 '비행기 사고를 포함한 모든 것이 신의 계획일 수도 있다는' 주석이 습관적으로 따라 붙는 건 거슬립니다. 제가 과민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13/02/09)

★★★☆

기타등등
색맹 캐스팅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윕 위테이커나 휴 랭이 특별히 흑인이어야 할 이유는 없죠. 제 생각에 위테이커의 아버지가 터스키기 파일럿이었다는 이야기는 덴젤 워싱턴이 캐스팅에 맞추어 덧붙인 것 같습니다. 상관 없긴 한데, 이런 식으로 주연 배우가 캐스팅되면 주변 캐스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군요.  

감독: Robert Zemeckis, 배우: Denzel Washington, Kelly Reilly, Bruce Greenwood, Don Cheadle, Melissa Leo, John Goodman, Nadine Velazquez, Tamara Tunie, Brian Geraghty

IMDb http://www.imdb.com/title/tt190766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6359

    • 제메키스가 일반 실사 극영화를 만든 건 오랜만인 거 같아요.
      반갑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 터스키기를 키키로 잘못 쓰셨어요.... 그런데 백인 배우였더라도 아버지가 2차대전이나 한국전쟁에서 파일럿이었다고 하면 간단한 것 같아요.
    • 평균 한달에 한번 비행기를 타는지라 도입부만 보자면 공포영화였습니다. 감독의 10여년전 전작 캐스트어웨이에서도 그랬거든요. 조연들 보는 재미가 쏠쏠했고 항상 사필귀정에 유의해야겠다는 생각도..
    • 실험이라고 -> 실험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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