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싶은 (2010)


뇌질환으로 인한 우울증 때문에 툭하면 자살을 시도하는 민호의 병실에 상업이라는 기억상실/전신마비 환자가 들어옵니다. 알고 봤더니 그는 민호의 철천지 원수. 민호는 반드시 상업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하반신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도 없고 상업은 언제 퇴원할지 모릅니다. 


[죽이고 싶은]의 도입부는 근사한 블랙 코미디입니다. 인생의 막장에 선 두 원수가 같은 병실 안에서 주변 물건들을 이용해 서로를 죽이려는 상황을 상상해보세요. 그들은 너무 연약해서 작은 물건에 머리를 맞아도 죽을 수 있지만 그런 물건을 던지는 것도 중노동입니다. 이건 실사판 [톰과 제리]의 설정입니다. 전 이 단순한 설정을 끝까지 밀고 갔다면 영화가 더 재미있었을 거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화를 한 10분 쯤 보다 보면 관객들은 이 이야기가 보기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화는 왜 그 두 남자가 원수가 되었는지 분명히 밝히지 않으며, 그들의 동기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오히려 미스터리가 됩니다. 그리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백과장이라는 인물이 두 환자에게 뭔가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이들이 겪고 있는 드라마가 전체 사실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확신이 서죠. 


막판에 폭로되는 반전은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말이 많고 장황한데, 그 과정이 너무 환상적이라 실제 세계에서 현실화되기가 거의 불가능해요. 이 영화의 장황한 설명은 이야기를 해결하는 대신 오히려 여분의 미스터리를 추가합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유발되는 효과도 있는데, 그게 의도인지는 모르겠군요. 


멋진 아이디어가 사방에 굴러다니지만, [죽이고 싶은]은 그 재료들을 그렇게까지 능숙하게 쌓아올린 작품은 아닙니다. 영화보다는 연극에 더 어울리는 느낌인데, 그건 폐쇄된 공간 안에서 드라마가 벌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드라마 대부분을 배우들에게 의지하고 영화적으로는 최소한의 지원만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추상적인 주제가 영화의 발목을 잡고 있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이고 싶은]은 건질 것들이 많은 영화입니다. 천호진과 유해진은 건더기가 많은 좋은 캐릭터들로 멋진 연기를 보여주며, 연극적이라고 해도 그들이 서로를 잡아먹으려 바둥거리는 모습은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최근에 저의 사디즘을 만족시켜준 몇 안 되는 복수영화예요. 주저하지 않고 자기 일을 끝까지 만족스럽게 완수하는 복수자를 보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10/08/10)



기타등등

영화의 시대배경은 1984년. 대부분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이 시대배경에 대해 궁금해 할 텐데, 사실 별 의미는 없다고 합니다. 지금의 정신병원이 영화의 스토리 전개와 잘 맞지 않기 때문에 시대를 앞당겼다고 하는군요.


감독: 조원희, 김상화, 출연: 천호진, 유해진, 서효림, 이정헌, 라미란, 안은정, 송지은, 김서형, 다른 제목: Desire To Kill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Desire_To_Kill.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4971


    • 시대배경과는 상관없는 영화군요. 저는 아주 잠깐 87년 '양김의 분열'에 대한 정치적 알레고리라는 망상을 잠깐 해 보았지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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