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 (2012)


방은진의 [용의자 X]의 원작은 물리학자인 유카와 마나부가 아마추어 탐정으로 나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시리즈 중 3편인 [용의자 X의 헌신]입니다. 이 작품은 이미 2008년에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졌죠.

소설은 우발적으로 폭력적인 전남편을 살해한 옆집 여자를 위해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는 수학교사의 이야기입니다. 알고 봤더니 그 수학교사는 유카와 마나부와 같은 대학 출신이고 엄청난 천재였던 거죠. 이 두 사람의 지능대결이 주가 되는 퍼즐 미스터리입니다.

외국의 퍼즐 미스터리를 각색하는 데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면 트릭을 가능하게 하는 원작의 문화적, 지리적 환경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이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방은진의 영화에서도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들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반은 성공하고 반은 좀 어색하고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도난당한 자전거를 대여자전거로 설정해서 자전거 등록제가 없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커버한 건 잘한 것이었죠. 하지만 알리바이에서 중요한 영화 티켓을 다룰 때는 분명한 방향을 정하지 못해 헛갈려 하는 것이 보입니다.

하지만 방은진은 영화를 만들면서 원작의 퍼즐 미스터리가 그렇게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옆에서 몰래 짝사랑만 해오던 여자를 위해 자기 인생을 걸고 엄청난 일을 벌이는 수학교사 석고의 캐릭터에 더 관심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영화에서 퍼즐 미스터리는 캐릭터 드라마를 끌어가기 위한 핑계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영화가 한 가장 큰 변형은 주인공인 유카와 마나부 캐릭터를 삭제해버린 것입니다. [바스커빌의 개]를 각색하면서 셜록 홈즈를 지워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죠. 이해는 갑니다. 시리즈 영화를 만드는 것도 아닌데 시리즈 탐정을 등장시키면 드라마의 완결성이 깨지죠. 현실성에도 문제가 있고요.

하지만 명탐정을 뺀다고 퍼즐 미스터리가 퍼즐 미스터리가 아닌 어떤 것이 되는 건 아닙니다. 여전히 이야기는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그 알리바리를 파괴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 걸요. 천재 범죄자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 명탐정 캐릭터를 지워버리고 그 역할을 평범한 노력파 형사 민범에게 주면 이야기의 균형이 깨져버립니다. 현실성 떨어지는 거짓말탐지기 에피소드나 지나치게 이른 단서 제시 같은 것들도 이야기에 별 도움이 안 되고요.

결정적으로 영화는 석고의 심리를 과잉분석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괴짜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는데, 이 인물의 행동과 동기를 완벽하게 이해시켜 100퍼센트 감정이입을 유발하려 하는 것이죠. 전 이게 올바른 선택 같지 않습니다. 이해가 안 된다면 그냥 두라고요. 굳이 그 인물을 알기 쉬운 요약본 버전으로 만들 필요는 없어요.

캐스팅이 좋은 편이긴 한데, 배우들이 아주 잘 활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류승범은 지나치게 '이과 천재'의 스테레오타입에 빠져 있어서 종종 캐리커처가 되고, 이요원의 연기스타일은 여자주인공 화선의 불안함을 묘사하는 데에 조금 장애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편안해 보이는 건 형사 민범 역의 조진웅인데, 정작 이 캐릭터의 기능성이 영화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죠. (12/10/13)

★★☆

기타등등
여러분은 영화를 본 뒤에 극장 티켓을 어디다 두세요? 그걸 지갑 안에 두는 게 그렇게 어색한가요? 어차피 영화판에서는 크레딧 카드와 CCTV가 있어서 쓸모 없는 단서이긴 했습니다만.

감독: 방은진, 출연: 류승범, 이요원, 조진웅, 김윤성, 곽민호, 김보라, 다른 제목: Perfect Number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Suspect_X.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9873

    • 일본 영화도 그닥 재밌게 보진 않았는데 기대치를 좀더 낮춰잡아야겠군요.



      전 영화티켓을 버리지 않는다면 지갑 안에 넣어두긴 해요. 가끔 지갑 정리하다보면 몇달치 영화티켓이 나오죠.
    • 전 영화티켓 비롯해서 모든 티켓을 서랍 속 상자에 모아 놓아요. 그냥 기념품으로요. 근데 요즘 영화티켓이 영수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모으는 재미가 없어졌어요ㅠㅠ.



      마지막 문단 다섯째줄에서 '이요원이 연기스타일'은 '이요원의'를 잘못 쓰신 거겠죠?^^;
    • 영화표는 같이 본 사람의 이름을 적어서 서랍에 보관합니다.(혼자 보면 혼자라고 적고요)
    • 얼마 전까진 지갑에 잔뜩 넣어놨다가 안 쓰는 컵에 잡동사니랑 같이 쌓이고 있어요.
    • 평소에는 모르겠는데 웬지 형사가 알리바이증거로 요구할때 지갑에서 꺼내주는건 좀 어색해보이기도 할듯.
      그나저나 좀 오버하는것 같지만 전 지난여름에 아래 뉴스를 보는순간 범인이 용의자X의헌신을 읽어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나 소설을 안보신분은 절대 클릭하지 마시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12/2012071200056.html

      (추신) 유카와 마나부가 두번째는 유가와 마나부로 되어 있어요^^
    • 통일시켰습니다.

      뉴스를 읽었는데, 그런 일은 워낙 흔해서요. 꼭 소설과 연결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 영화티켓은 그냥 버립니다. 지갑에 있는것도 가방에 있는것도 어색하지 않아요.
      방바닥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아요;;;; 저에겐 팜플렛 사이에 끼워져서 집에버려져있는게 가장 없을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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