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쟁이들 (2012)


신정원의 영화들을 악평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무개성적이라고 비난하는 건 극히 어렵죠. [시실리 2km] 때만해도 긴가민가 했던 그의 개성은 [차우]에서 분명해졌고, 코믹 호러 삼부작의 마지막 편인 [점쟁이들]과 함께 완성되었습니다. 이들 중 어느 것도 굉장한 완성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의 영화에서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죠. 신정원의 개성은 처음부터 완성도를 희생하며 만들어집니다. 물론 각각의 작품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또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개인적인 취향을 물으신다면, 전 [시실리 2km]를 살짝 싫어하는 편이고 [점쟁이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좋아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신정원의 다른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점쟁이들]도 그리 유쾌하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 무대입니다. 한국의 버뮤다 삼각지대라고 불리는 울진리에서는 몇십 년 동안 수많은 초자연현상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되었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점쟁이, 초능력자, 영매, 성직자들이 천도재를 지내 이곳을 정화하려 모이고, 여기엔 얼마 전에 재벌 폭로 기사를 쓰던 신문기자 찬영이 끼어듭니다. 하지만 무료 재능 기부인 줄 알았던 이 행사가 마을을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의뢰에 의한 것이라는 게 밝혀지고, 천도재도 파국으로 끝나자, 다섯 명의 점쟁이들과 찬영만이 남죠. 이 각본은 배우 지진희가 태국 여행 중 가이드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태국 관광 간 한국 점쟁이들이 버스 안에서 단체로 접신되는 일이 있었다나요. 알고 봤더니 그 곳은 수천 명이 사고로 죽은 지역이라나.

신정원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면 [점쟁이들]은 비교적 따라가기가 쉬운 영화입니다. 조금 유난스럽고 어이없긴 합니다만, 찬영과 다섯 명의 점쟁이들은 거부감 없이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인물들입니다. 스토리는 그럭저럭 기승전결이 분명하고요. 물론 처음에도 그런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호오도가 극도로 갈리는 전작 [차우]의 평가 때문에 감독이 어느 정도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까요. 실제로 잘린 장면들이 더 어이없이 재미있다는 소문도 돕니다.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대충이나마 말이 되는 스토리는 이 영화에서 그렇게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이런 것이 뒤에 깔려야 진짜로 중요한 영화 특유의 유머가 살아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유머가 무엇인지는 전작들을 보신 분들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영화에는 호러와 코미디 모두가 존재하는데, 코미디는 호러 같고, 호러는 코미디 같습니다. 우선순위는 모두 파괴되어 있어서, 종종 싱겁기 짝이 없는 저질 농담이 중요한 극적 장면을 무심하게 눌러버리기도 합니다. 리듬은 몽땅 엇박자이고 드라마와 액션의 핀트도 다 어긋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것들을 평등하게 다룹니다. 

전작들을 따라온 관객들은 [차우] 때처럼 당황하거나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영화 한 편만 봐도 신정원의 감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대충 짐작이 가기 때문이지요. 몇몇 장면들은 구체적인 방법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신정원은 각본에 나온 장면이 다 끝나도 배우들에게 여분의 애드립을 끌어내기 위해 컷을 늦게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그 결과물로 보이는 장면들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그의 방식을 뚫어본다고 해서 이 영화가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보는 건 오히려 너무 쉬운 것 같습니다. 반대로 관객들과 신정원 사이에 공통된 이해가 형성되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 정도는 자연스러운 거죠. 어차피 [차우]를 안 본 관객들에게 [점쟁이들]은 [차우]나 마찬가지로 괴작일 테고요. 

이런 스타일은 코미디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주제와도 연결됩니다. 신정원의 영화에서는 악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 사이에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초자연적인 존재들이나 괴물들은 악과 무관하거나 그 부수물이거나 심지어 희생자이죠. 신정원은 이 작고 진부한 악당들을 다룰 때 분노보다는 경멸을 더 크게 담는데, 그 때문에 이 우선순위의 파괴는 오히려 정통적인 효과를 내게 됩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악당들은 정상적인 스토리 안에서는 당연히 배정받는 최소한의 존엄성도 박탈당하고 말죠. [점쟁이들]의 경우는 다른 두 편에 비해 그래도 조금 정통적인 편이라 최종 보스가 귀신인데, 그렇다고 영화가 그에게 대단한 존재감을 주는 건 아닙니다. 초자연적인 존재이긴 하나, 그는 어쩌다가 힘을 쥔 소악당에 불과해요. 찬영이 최종 보스와 대면하는 장면을 보시죠. 보스가 불쌍해질 지경입니다. 보스가 부리는 사악한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 정도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고요.

악당들을 이렇게 깔보는 영화이기 때문에, [점쟁이들]의 무게는 거의 전적으로 주인공들에게 넘어갑니다. 그들은 엄청나게 튀는 사람들은 아니에요. 독립적으로 개성적이라기보다는 신정원의 전체적인 개성이 조금씩 반영된 인물들이죠. 하지만 영화 안에서 차별화와 역할 분담이 분명히 되어 있고, 농담 안에서 잘 섞입니다. 김수로나 강예원처럼 코미디에 익숙한 배우들과 김윤혜나 이제훈처럼 이 장르에 초보인 배우들이 별 부담없이 잘 섞이는 건 배우의 기능에 대한 이해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이죠. 반대쪽에서 보면 배우들이 영화와 역할의 실없음을 깔보지 않고 진지하게 연기했다는 말이기도 하고.

[점쟁이들]은 어느 방향으로도 더 갈 수 있었던 영화입니다. 더 용감한 신정원스러운 괴작이 될 수도 있었고, 개성을 조금 더 포기하고 이야기에 집중해서 더 '정상적'인 영화가 될 수도 있었겠죠. 어느 쪽으로 가도 평가가 더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전 어정쩡하다고 할 수 있는 최종본이 그렇게 나쁘지 않아요. 바로 그 어정쩡함 때문에 분명한 정의가 불가능한 하나의 성격이 나온 것처럼 보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이런 정도의 타협이 신정원식 코믹 호러 영화에서 최대한의 완성도를 뽑아낼 수 있는 지점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최종 편집 때 잘려나간 장면들이 궁금한 건 어쩔 수가 없지만요. (12/09/30) 

★★★

기타등등
사람 시체는 바다 밑에서 비교적 빨리 썩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침몰한 배 안에 있었던 시체들은 대부분 뼈도 남기지 않고 분해되었겠지요. 물론 초자연현상 때문에 형태가 그렇게 오래 유지되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죠.  

감독: 신정원, 출연: 김수로, 강예원, 이제훈, 곽도원, 김윤혜, 양경모, 다른 제목: Ghost Sweepers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Ghost_Sweepers.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8453

    • 우와 별셋 별로라고 말들이 많던데 ^^
    • 전 차우를 워낙 웃기게 봐서 살짝 실망했어요ㅠㅠ ㅋㅋ 이번 영화는 개그코드가 좀더 대중화 되었다 해야 되나? 그래도 피식피식 웃기긴 하더군요. 이제훈의 망가지는 모습도 꽤나 재밌었고~
    • 차우처럼은 다시 못 만들었을 거예요. 이 정도 스케일의 영화라면 투자자에 대한 책임을 져야죠.
    • 우와 별셋22222222222222
    • 자기만의 개성을 갖는다는 건 좋은 거죠.
      그걸 받아들이고 못 받아들이고는 각자의 문제고.
    • 바닷속은 땅속보다는 부패가 느리죠. 법의학에서 1:2:8(공기중:물속:땅속 부패속도) 법칙이란게 있더라구요.
    • 어차피 그 정도 세월 동안이면 시체는 뼈까지 없어지기 마련이라더군요. 가만히 물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주변 수생 생물들의 먹이가 되기도 하니까. 그 정도 오래 된 침몰선에서 해골이 나오는 일은 그냥 없다고 하더라고요.
    • 인터뷰 기사 봤거든요. 첫 편집본이 4시간 30분 정도 됐었다는데. 고거 한번 보고 싶네요. +_+



      http://m.yna.co.kr/mob2/kr/contents.jsp?cid=AKR20121004209500005&domain=2&ctype=A&site=0100000000&mob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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