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리아 Hysteria (2011)


'실화에 바탕을 둔 작품'이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그것만으로는 모자라 '진짜로!'라고 못을 박아요. 그런데 이렇게 선언하는 영화들 중 정말 실제 사건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작품이 얼마나 되나요.

전 여기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없습니다. 하지만 타냐 웩슬러의 [히스테리아]에서 '실화'는 조셉 모티머 그랜빌이라는 의사 겸 발명가가 전기로 작동하는 바이브레이터를 만들었다는 것으로 그치는 것 같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모두 재미와 주제를 위해 만들어낸 것이겠죠. 일단 실존인물과 영화 속 그랜빌은 나이부터가 달라요.

영화 속 그랜빌은 세균 이론에 바탕을 둔 급진적인 치료법을 주장하다가 늘 직장을 잃고 쫓겨나는 젊은 의사입니다. 그러던 그는 로버트 달림플이라는 의사의 밑으로 들어가는데, 이 사람은 '골반 마사지'로 여성들의 히스테리아를 치료하는 사람이지요. 그랜빌은 곧 새 일에 적응하는데, 그만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손 근육에 이상이 생깁니다. 하지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그랜빌은 친구인 에드먼드 신전-스마이스가 발명한 전기 먼지떨이를 개량해서 자기 손을 대신 할 바이브레이터를 만들게 되지요.

이 이야기는 완곡어법으로 묘사된 포르노 같습니다. 암만 봐도 달림플과 그랜빌이 여자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섹스 서비스니까요.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 이건 진지하기 짝이 없는 의료행위였습니다. 당시 (남성) 의사들은 여자들만 앓는 히스테리아라는 병의 존재를 진지하게 믿었고, 여성 오르가즘에 대한 지식은 형편없었습니다. 물론 이들은 이런 마사지가 만들어내는 자극을 성적인 쾌락과 제대로 연결짓지도 못했습니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정말 그랬어요.

당연히 이 영화는 코미디가 됩니다. 그것도 예상 외로 귀여운 코미디지요. 암만 봐도 영화는 섹스 코미디인데, 그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들인 빅토리아 시대 신사들은 그걸 모르는 것입니다. 영화 내내 그들은 그냥 천진난만하고 정직합니다. 당시 예절 바른 신사들의 태도와 말투를 끝까지 유지하고 있고요. 단순한 트릭이지만 결과물을 보면 상당히 웃깁니다.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메세지를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히스테리아]는 이를 위해 여성 캐릭터를 하나 만듭니다. 달림플의 페미니스트 딸인 샬롯이죠. 그랜빌은 조신하고 여성스러운 동생인 에밀리를 먼저 사랑하다가 점점 씩씩하고 용감한 샬롯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샬롯은 메시지 전달용으로 만들어진 인물이고, 그런 인물의 기능에 맞게 행동합니다. 19세기 페미니스트의 메시지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그랜빌이 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설명하는 역할도 하죠. 이 정도면 꽤 뻣뻣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결과는 예상 외입니다. 샬롯은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인물이에요. 아무리 직설적인 메시지를 전달해도 그것이 자연스러운 캐릭터의 매력과 장점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로맨스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지요.

[히스테리아]는 걸작이 되기엔 지나치게 착한 영화입니다. 나쁜 사람도 없고 나쁘게 끝나는 사람도 없는 얌전한 영화지요. 섹스 코미디, 로맨스, 법정물로 이어지는 과정도 익숙하기 짝이 없고요. 하지만 이런 얌전함은 소재와 비교되어 귀여운 재미를 만들어내고, 휴 댄시, 매기 질렌홀, 조나단 프라이스, 루퍼트 에버릿이 만들어내는 능청스러운 연기 앙상블의 재미도 만만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 소재로 이렇게 건전하고 깨끗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성취지요. (12/08/19)

★★★

기타등등
영화 홍보물에 '바이브레이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더군요. 웃기는 나라.


감독: Tanya Wexler, 출연: Hugh Dancy, Maggie Gyllenhaal, Jonathan Pryce, Felicity Jones, Rupert Everett, Ashley Jensen, Sheridan Smith, Gemma Jones, Malcolm Rennie, Kim Criswell

IMDb http://www.imdb.com/title/tt1435513/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7655

    • 으앗 예고편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기대되네요 ㅎㅎ
    • 지나치게 착한 듯. 만들어서 전 좀 가증스럽다는 느낌마저 들어서 별로더군요. 정말 몰랐다는 생각은 안 들고 영화가 순진한 척~ 하고 있다는 생각만 들더라구요.
    • 순진한 척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거의 직설적인 빅토리아 시대 의사들의 묘사죠. 귀여워보이는 건 부차적이고 내용 자체는 그냥 비판. 실제로 당시 많은 의사들이 vulvular stimulation을 성적 쾌락과 연결시키지 않았다는 건 조금만 조사해 봐도 알 수 있죠. 지금 상식적인 게 당시에도 그랬던 건 아니에요.
    • 물론 이런 무지는 히스테리아에 대한 치료법으로 자궁 절제가 등장하는 식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 이렇게까지 무지했었다니 상상이 안갑니다. 겨의 150여년 전의 일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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