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스틸 Real Steel (2011)


[리얼 스틸]의 원작은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 [스틸]입니다. 읽어본 적은 없지만 그가 직접 각색한 [트와일라잇 존]의 에피소드는 언젠가 24시간 [트와일라잇 존] 마라톤을 할 때 본 적이 있지요. 시사회에서 보도자료를 받았을 때야 두 작품이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격투 로봇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걸 제외하면 내용이 완전히 달라요. [트와일라잇 존]의 에피소드가 하드보일드하다면 [리얼 스틸]은 달짝지근한 가족 오락이지요.


시대배경은 2020년의 미래입니다. 이 세계에서는 로봇 격투기가 인기지요. 그렇게 현실적인 미래는 아니에요. 이런 로봇을 만들려면 로봇 공학의 문제들도 풀어야 하지만 일단 에너지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 하거든요. (2.5미터 키의 강철 로봇이 권투 한 판을 치르려면 에너지가 얼마나 들지 생각해보셨나요?) 이런 것이 10년 안에 우당탕탕 해결되었다면 이미 그 변화가 주변에 보여야 하는데, 이 세계는 그냥 로봇 스포츠가 있는 현재거든요.


영화의 주인공은 전직 복서인 찰리 켄튼입니다. 격투기 로봇을 조종하며 살고 있는 그는 루저 중 루저죠. 경력은 바닥을 쳤고, 아들의 엄마가 죽었는데도 인간적인 감정을 보일 줄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들의 이모가 아이를 입양하려고 하자 그는 그걸 미끼로 5만 달러를 뜯어 중고 로봇을 살 생각을 해요. 이 정도면 알만한 인간 아닌가요.


영화는 그와 아들 맥스가 억지로 엮이다가 고철처리장에서 주운 로봇 아톰(2014년 제품이라네요!)을 격투기 로봇으로 키운다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러는 동안 찰리는 인격적으로 성장하고 아버지로서의 책임감도 느끼게 되지요. 그러는 동안 아톰은 다른 로봇들을 계속 때려눕히고요.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2시간 넘는 러닝타임 내내 술술 넘어가지요. 하지만 전 이 영화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가장 먼저 걸렸던 건 각본의 진부함입니다. 물론 엄청나게 신선한 이야기를 기대하며 [리얼 스틸] 같은 영화를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권투 선수 자리를 로봇이 차지했을 뿐, 척 봐도 뻔한 스포츠 영화 공식을 따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진부함이 그냥 용서받는 건 아닙니다. 진부한 공식을 따르면서도 좋은 영화들은 대부분 대사, 캐릭터 설정, 드라마의 전개 방식에서 자기만의 변주를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리얼 스틸]을 보고 있으면 [시나리오, 이렇게 써라!]식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법 교과서에 나올 법한 문장들이 마구 떠올라요. 오로지 그런 교과서에만 있을 법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 이야기죠.


그 다음으로 불만이었던 건 로봇입니다. 전 로봇 영화를 볼 때 로봇이 인간과는 다른 무언가를 하길 바랍니다. 연애를 하건, 싸움을 하건, 살인을 하건, 지구를 정복하건요. 하지만 이 영화의 로봇은 그냥 권투를 해요. 아무리 슈가 레이 레너드의 조언과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권투는 권투죠. 인간이 하는 게 더 드라마틱한 것을 굳이 로봇이 할 필요는 없어요.


더 걸렸던 건 로봇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이 영화의 로봇은 사실 정의만 따진다면 로봇도 아니에요. 인간의 조종을 받는 사람처럼 생긴 기계니까요. 그게 문제라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심지어 그런 기계를 그리면서도 이런 로봇 영화에 흔해 빠진 신비주의를 부여한다는 거죠. 아톰은 '특별한' 로봇입니다. 그 로봇이 대단한 이유 일부가 불가지론의 베일 속에 감추어져 있으니까요. 이건 그냥 반칙입니다.


특수효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 영화의 로봇들은 그냥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기계 같아요. 어느 게 CG이고 어느 게 애니매트로닉스인지도 잘 구별 못하겠고. 그런데, 요새는 특수효과가 완벽할수록 특수효과를 보며 느꼈던 경이감도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 특수효과를 통해 그리는 이야기가 평범하기 짝이 없을 때는 더욱 그렇고요. (11/10/06)


★★☆


기타등등

그들에게 인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전 아톰을 만나기 전에 찰리를 거치는 로봇들을 동정하게 되더군요.

 

감독: Shawn Levy, 출연: Hugh Jackman, Dakota Goyo, Evangeline Lilly, Anthony Mackie, Kevin Durand, Hope Davis, James Rebhorn, Marco Ruggeri, Karl Yune, Olga Fonda


IMDb http://www.imdb.com/title/tt043303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6460

    • 두번째 문단의 2미터 50미터->2미터 50센티 아닌가요?
    • 예고편을 보면서 인간이 안에 타지도 않고 원격으로 조종하는 로봇격투기에 사람들이 열광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근데 이미 그런 로봇 격투기 게임이 있고 팬들 역시 많지요. 리얼 스틸에 나오는 로봇에 비하면 장난감 수준이지만요.
    • 저도 이걸 보고서는 이건 로봇 영화가 아니라 가족영화구나.. 로봇은 들러리..같다는 생각이.
    • 와 리얼 스틸이다~ 이거 대단히 재밌지요. 로봇을 미끼로쓴 가족영화
    • 시간은 술술 잘가지만 별다른 매력이 없다 라는 부분에 대공감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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