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저주의 멜로디 (2011)


작년에 나왔던 가장 황당한 뉴스는 김곡, 김선 형제가 티아라 멤버 은정 주연의 걸그룹 호러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뉴스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묘하게 이치에 맞았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호러 감수성이 넘치는 몇 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음악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압니다. 둘이 합쳐진 단편 [Bomb! Bomb! Bomb!]은 걸작이죠. 그렇다면 상업영화 장르와 그들의 감수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뭔가 재미있는 게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여간 이게 지금까지 이 영화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 주변을 떠돌던 소문과 기대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이 영화의 시사회가 있었는데...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못 만든 영화여서가 아닙니다. 그 위험은 예상했죠. 화이트의 문제점은 영화가 평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크레딧을 떼고 영화를 본 사람들 중 이 영화를 김곡, 김선 형제와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핑크 돌스라는 잘 안 나가는 걸그룹이 주인공입니다. 보면 인기없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악의 연예인 루머만 골라서 모아놓은 애들이에요. 백댄서 출신인 리더는 왕따이고, 얼굴마담 막내는 성형중독이고, 메인 보컬은 목을 뚫어준다는 한약에 중독되어 있고... 그리고 이들은 모두 지독하게 사이가 나쁩니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같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새 기획사 건물을 청소하던 리더 은주가 15년 전 이 건물을 쓰다가 화재로 몰살당한 옛 걸그룹의 뮤직비디오를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찾아낸 거죠. [화이트]라는 그 노래가 맘에 든 회사는 이 곡을 멋대로 쓰기로 합니다. 음, SES도 97년에야 데뷔했는데, 당시 이런 걸그룹과 노래가 존재할 수 있었으려나요.


이들은 이 곡으로 인기 그룹이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회사에서 메인에게 역할을 몰아주기로 결정하고 멤버들이 거기에 목숨이라도 걸린 것처럼 매달리는 거죠.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이 단계에서는 각각 멤버들의 이미지를 차별화시켜서 파는 게 중요하지 않던가요. 그리고 메인 보컬 아니면 좀 어때요. 구하라는 솔로 파트가 한 소절밖에 없어도 잘만 뜨더구만.


그러는 동안 메인으로 뽑힌 멤버들에게 끔찍한 사고들이 일어납니다. 여러분도 의심하셨겠지만 여기서 가장 이상한 건 하얀 가발을 쓴 귀신이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고들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메인을 뽑는 일이 계속되고 멤버들이 여전히 거기에 집착한다는 거죠. 이상하지 않습니까. 얘들은 겨우 4명이에요. 한 명만 빠져도 티가 확 납니다. 그리고 두 명, 세 명이 떨어져나가는 단계부터는 메인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차라리 처음부터 솔로시켜 달라고 조르거나.


이 부분부터 영화는 어떻게 하면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돌 여자애들을 고문할 수 있을까에 집중합니다. 감독들은 신선한 고문 방법을 찾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결과는 평범합니다. 이런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일차적으로 떠올릴 법한 것들이죠. 이들이 모두 나쁘지는 않아요. 종종 연습실 거울 귀신처럼 뻔한 소재를 택하면서도 나쁘지 않은 리듬감을 찾아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것들이 막판의 하얀 가발 사다코 클라이맥스로 이어지면 좀 허탈해집니다.


아이돌 아이들이 한 명씩 귀신 때문에 고생하는 동안 추리파트가 진행됩니다. 은주와 은주의 '아는 언니'인 순예가 화이트의 미스터리를 밝혀내는 과정이죠. 당연히 비밀은 노래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노래를 자르고 붙이고 뒤집어 돌려야 합니다. 논리적으로 두 가지가 걸립니다. 우선 이 노래는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된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 만들어지지 않았나요. 그럼 어떻게 단서가 미리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지요? 둘째로, 15년 전에 죽은 사람의 귀신치고는 디지털 문화에 지나치게 능숙한 것 같지 않습니까? 단서가 되는 플짤들은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거죠?


영화를 보면서 자꾸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과연 소재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 걸까. 과연 대상이 되는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애정은 갖고 있는 걸까. 영화는 지나치게 빨리 결론을 내리고 오로지 그 결론만을 위해 스토리와 캐릭터를 굴립니다. 그 결과물은 많이 공허해요. 아무 생각없이 가위로 종이인형의 목을 자르는 아이들의 놀이처럼.


지루한 영화라고는 못하겠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영화는 지나치게 빨라요. 공포의 분위기를 즐기고 추리를 따라갈 여유가 없습니다. 영화는 그냥 마구 달립니다. 거의 줄거리 요약 같아요. 여기엔 상업영화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중을 절대로 지루하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보면서 재미있는 상업용 장르물을 만드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답니다. (11/05/31)


★★


기타등등

1. 애프터스쿨이 애프터스쿨 노래를 부르며 나오는데 그룹 이름만 퓨어랍니다. 어색하더군요.


2. [방독피]는 언제 개봉한답니까.

 

감독: 김곡, 김선, 출연: 함은정, 황우슬혜, 메이다니, 최아라, 진세연, 변정수,김영민, 김기방, 이정석, 다른 제목: White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White_2p__The_Melody_of_the_Curse.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904

    • [새 기획사 건물을 청소하다던] -> '청소하던' 이 맞을 것 같습니다.

      구하라 언급하신 부분에서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 전 극중 TV 쇼에서 사생팬을 좀비로 만든 설정이 재미있었습니다. 그게 최고의 재미였던듯. 그래도 함은정은 꽤 잘하더라고요.
    • 헐 김곡 김선이기에 기대했던 것인데 저런 영화라니 난감하네요.
    • 핑크돌스라니 ㅎㅎㅎ 5돌스 밀어주기인가요 ㅎㅎㅎ
    • 방금 보고 왔네요. 전 사생팬을 좀비로 만든 설정이 이 영화가 별로였던 모든 이유를 설명한다고 생각해요. 그냥 얄팍해요. 사생팬을 좀비로 그리는 거? 정말 얄팍한,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아니 맨날 하는 얘기잖아요. 거기엔 조금의 양면성도 예외성도 없습니다. 클라이막스에서 그런 상황에서 팬들이 정말 자기 목숨이 위험해지면 가수도 짓밟아 죽여버릴까요? 죽기 전에 껴안고 죽겠다고 같이 죽겠다고 들러붙는 애들도 많을걸요? 걔들은 자의식을 통째로 아이돌 가수에게 종속시킨 애들이라구요. 그 사랑은 어리석고 무섭지만 때론 감동적인 구석도 있고 신기한 면도 많은 데 그만큼 각본가/감독이 이런 문화를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는 게 티가 나죠. 모든 면에서 다 그런 얄팍한 수준의 시선이 깔려 있고 그걸로만 굴러가니ㅠ 동방신기 수준이면 거의 지들이 엎드려 계단을 만들어줄지도 몰라요.ㅋㅋㅋㅋ사생팬들을 너무 과소평가하는군요. 그냥 다 똑같은 무뇌좀비로 그린 건 이 영화 전체의 태도가 다 그래요. 멤버들도 하나같이 다 인간 말종들처럼 그렸더군요.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고 다들 그런 태도로 살겠어요? 생각해보면 참 나쁜 영화에요. 애정이 없는 소재에 대해선 절대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새겼습니다.
    • 어제 보고 왔는데... 듀나님은 평범하다고 했지만 제 생각엔 평범보다 못한 영화였네요.
      결정적으로 무섭지도 않고, 이야기가 재밌지도 않고, 2011년 한국 공포영화도 실망으로 시작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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