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Hanna (2011)


한나는 핀란드의 외딴 숲 속에서 아빠 에릭과 함께 삽니다. 집에 읽을 만한 책은 백과사전 한 권과 그림 전래 동화책 한 권. 한나는 음악을 들은 적도 없고, 아빠 이외의 다른 사람을 만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 개의 외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고 완벽한 사냥 기술과 암살 기술을 가지고 있지요. 아이의 목표는 단 하나. 엄마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마리사 비글러라는 여자를 죽이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이치에 맞아보입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여러분은 이치와 논리에 집중하는 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한나가 마리사 비글러를 불러들이기 위해 신호를 작동하는 부분부터 그렇습니다. 그 신호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나, 에릭이 여기 있소!"라는 뜻인가요? 그럼 처음부터 그 신호는 자발적인 것입니까? 그리고 도대체 왜 마리사 비글러는 한나의 엄마를 죽였고 한나까지 죽이려 하는 걸까요? 영화 속에서 한나와 에릭이 벌이는 살육은 어떻게 정당화됩니까?


영화 끝까지 봐도 답은 안 나옵니다. 억지로 생각하면 몇 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못할 거야 없죠. 하지만 답은 원래부터 없습니다. [한나]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맥거핀입니다. 거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만큼이나 히치콕적이지요. [한나]의 각본은 논리 따위엔 티끌만큼도 신경을 안 씁니다. 영화를 끌어가는 설정은 오로지 한나와 에릭, 마리사를 움직이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들이 움직인다면 이야기 뒤에 숨은 진상이 무엇이건 상관 없습니다. 사실 설명된다면 오히려 맥이 풀릴 겁니다. 아니, 실제로도 맥이 풀립니다. 영화는 후반에 가서 한나의 정체를 조금 흘리는데, 그 장면은 척 봐도 의무감에 억지로 넣은 거 같아 재미가 없습니다. 그 장면이 들어갔다고 해서 우리가 한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이 비논리는 그 자체로 영화에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영화는 첨단 테크노 스릴러 장르로 시작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림 동화에 더 가깝습니다. 적어도 유럽의 구전 동화에서 비롯된 악몽 같고 이상한 분위기를 끝까지 끌고 가지요. 몇몇 힌트들은 놓치기가 불가능할 지경입니다. [한나]는 백설공주가 못된 계모의 목을 꺾으려고 덤벼드는 그림 동화입니다.


액션에 너무 집착하며 영화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액션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액션 장면이 매력 없다는 건 더더욱 아니고요. 단지 영화는 한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평등하게 다룹니다. 이들은 모두 중요성과 관계 없이 병렬식으로 무심하게 배열되어 있지요. 미국 정보원들과 킬러들을 따돌리는 액션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한나가 우연히 만난 영국인 가족과의 관계도 그만큼 중요하게 다뤄요. 한나가 겪는 첫 음악, 첫 데이트, 첫 키스는 액션만큼이나, 아니, 액션보다 더 중요합니다.


[한나]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스케일을 소품으로 축소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 뒤에 숨겨진 음모들은 그 중 하나만 제대로 터져도 블록버스터 시리즈 몇 편을 만들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지만, 정작 영화 안에서 그것들은 열 여섯 살 소녀의 무전 여행을 위한 동기로만 사용된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한나는 절실하고 다채롭지만 깃털처럼 가벼운 영화입니다. 많이들 마지막 한 방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전 이 결말이 캐릭터와 드라마에 거의 완벽하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그 이상의 무게를 부여했다면 오히려 가식적으로 느껴졌겠죠. (11/04/19)


★★★☆


기타등등

케미컬 브라더스의 음악이 진짜로 좋습니다.

 

감독: Joe Wright, 출연: Saoirse Ronan, Eric Bana, Cate Blanchett, Tom Hollander, Olivia Williams, Jason Flemyng, Vicky Krieps, Jessica Barden, Aldo Maland


IMDb http://www.imdb.com/title/tt099384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6456

    • 오, 기대 전혀 안했는데 별점에서 화들짝.
    • 오, 기대 전혀 안했는데 별점에서 화들짝.22
    • 스토리야 다르지만 니키타와 비교하여 주인공의 갈등과 킬링머신으로 성장등, 개연성을 본다면 어떤지 궁금합니다.
    • 방금 보고 나왔는데 케미컬 브라더스의 음악이 진짜로 좋습니다 22

      20여분을 거의 음악 없이 이끌어가다 음악의 존재를 모르는 여주인공에 맞게 굉음을 뿜어대고, 독일인 악당 테마는 휘파람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게 끝내주더군요.



      사실 내용에 대해서도 불만이 없었어요. 액션영화를 기대하고 갔다가는 2막 내내 다소 벙쪄있을테지만 한나같은 인물에게 이런 이야기가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하죠.









      다만 음악과 사운드 믹싱 모두 엄청나게 공격적인 탓에 일반 관객에게는 정신없이 느껴질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편집도 액션 장면에서 살짝 오버하는 낌새가 보이고요...
    • 다프트펑크는 트론이고, 케미컬 브라더스는 한나고
      동시대에 비슷한 일을 했네요.
    • 방금 30분 정도 전에 보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한나라는 결핍의 정서를 가진 열 여섯 소녀가 처음 세상을 만나는 설레임과 낭만으로 가득 차 있는 잔인하고 차가운 동화 같았어요. 보는 내내 굉장히 황홀했습니다.
      조 라이트 감독은 거장이 될 것 같아요. 연출이 굉장히 우아하고 영화적이고 영상이나 음악이나 배우들이나 100% 잘 활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겐 블랙 스완에 이어 올해의 영화 리스트에 꼭 올라갈 수작이었네요.
      안 보신 분들 꼭 추천요
      근데 OST는 수입 안되나보죠? ㅠㅠ
    • 근데 케미컬 브라더스가 다 작곡한 건가요? 전 다리오 마리아넬리 작곡인 줄 알았는데..
    • 도니다코 / 네, 케미컬 브라더스가 다 했습니다. 전통적인 스코어가 하나도 없죠.
    • 그렇군요. ^^ 혹시 OST 구할 수 있는 경로를 아시는 분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조 라이트 영화는 항상 사운드 트랙 수입이 되더니 하필 이번엔 안 하는 건지 ㅠㅠ
    • 도니다코/ 북미에서도 cd가 안나온 걸로 압니다. 향후 출시 계획이 있는지는 모르겠구요.
      저는 itunes 뮤직 스토어에서 구입했습니다.
    • 아악! 화들짝 별점에 화학형제들까지! 봐야겠다는 의지가 용솟음 치네요!
    • 덕분에 저도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에서 구입했어요!
      그래도 CD로 가지고 있지 않으면 소장한 느낌이 안 나요. ㅠㅠ
    • 오늘 보고왔는데 음악 정말 최고! 트론의 다펑만큼 캐미털브라더스도 대단하더군요
    • 시어샤는 갈수록 예뻐지죠, 알렉시스 블레델하고 영화찍고 있다던데 궁금해요:-) 그만큼이 어긋나서 '그만큼이'가 된건가요?
    • 아일라/ 반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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