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커 펀치 Sucker Punch (2011)


척 봐도 [써커 펀치]는 '야심작'입니다. 한 동안 성공의 길을 걸으며 때를 기다리고 있던 영화감독이 어렸을 때부터 꾸었던 자신의 백일몽을 대자본으로 현실화시킨 작품이지요. 이런 작품은 걸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망하는 경우도 만만치 않게 많지요.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과 자신이 가진 재료를 과신하기 마련이거든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영화인지 알려드리죠. 때는 1960년대. 주인공인 '베이비 달'은 엄마를 잃고 사악한 의붓 아빠에 의해 정신병원으로 끌려갑니다. 그런데 정신병원에 들어오면서부터 현실에 한 겹의 레이어가 생겨요. 이 판타지의 세계에서 정신병원은 일종의 매음굴로 바뀌고 여기에 갇힌 여자들은 생존을 위해 돈많은 남자들 앞에서 춤을 추며 탈출을 꿈꿉니다. '베이비 달', '로켓', '스위트 피'와 같은 환자들의 이름들도 다 이 판타지의 세계에서 나온 거죠. '베이비 달'은 춤을 출 때 가상의 전쟁터를 무대로 하는 폭력적인 환상에 빠지는데, 바로 그 세계가 예고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액션 장면인 것입니다.  


척 봐도 야심이 느껴지죠? 60년대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 장르를 프랑크 베데킨트의 작품인 양 풀어낸 이야기를 뮤직 비디오와 비디오 게임의 감수성으로 장식한 영화죠. 그래요, 전 진짜 잭 스나이더가 이런 꿈을 꾸며 사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도 안 이상해요. 그가 이런 백일몽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기다린 것도 이상하지 않고. 문제는 그 꿈이 현실화될 가치가 있었느냐는 거죠. 


기본 줄거리만 봐도 [써커 펀치]는 위태롭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때에 액션에 몰입하나요? 그 액션이 주인공의 운명을 결정하는 '진짜 사건'일 때입니다. 하지만 [써커 펀치]에 나오는 액션은 모두 가짜예요. 어설프게 첫 번째 레이어의 판타지적 현실에 연결되어 있지만 그 연결성도 그렇게 강하지 않단 말이죠. 결정적으로 이 꿈의 세계와 연결된 첫 번째 레이어의 세계는 지독하게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관객들은 가끔 나오는 액션 장면을 보기 위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나머지 이야기를 견뎌야 합니다.  


액션 장면도 좋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짧은 치마를 입은 에밀리 브라우닝과 친구들이 일본도를 들고 날아다니며 사무라이, 스팀펑크 좀비 사이보그, 용, 로봇을 때려잡으니 아주 나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 비슷비슷한 전쟁터를 무대로 한 CG 세계들은 쉽게 질려요. 각각의 에피소드에 별다른 차별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템 모으기'라는 너무나도 게임스러운 스토리 전개 안에 갇혀 있는 것도 맥빠지고요. 


여성 액션 장르 영화로서도 [써커 펀치] 영화는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액션물들은 대부분 남성판타지, 그것도 작정하고 만든 너드 판타지입니다. 이런 영화들도 적절하게 만든다면 여성 관객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고, 심지어 페미니즘과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써커 펀치]에서 주인공들은 오로지 잭 스나이더라는 남자의 몽정을 위한 화보들처럼 보여요. 주체가 느껴지지 않는 겁니다.  


[써커 펀치]를 좋게 볼 수 있는 길이 없는 건 아닙니다. [쇼 걸]이 그랬듯, 이 영화 역시 미래에 소수의 열성팬들을 확보할 기회가 있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처음부터 상업적 실패작일 수밖에 없는 기획이었다는 거죠. 어떻게 봐도, 만족시킬 수 있는 다수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스트레스 해소용 액션물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일반 관객들에게는 카타르시스가 결여된, 불필요하게 음침한 영화일 거고, 아트 하우스 관객들에게는 그냥 같잖아 보일 테니 말이죠. (11/04/05)


★★


기타등등

대사 자막에서는 'lobotomy'를 기억을 없애주는 수술 정도로 풀어서 번역하더군요. 하긴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 단어를 모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영어권에서는 일상적인 단어지만 한국어에서는 표준번역어도 없으니까요. 하긴 한물간 과거의 우행을 굳이 우리 언어 안에 받아들여야 할 이유도 없죠. 그리고 나중에 그 단어가 나올 때는 제대로 번역하긴 했어요. 그게 정확히 뭐였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감독: Zack Snyder, 출연: Emily Browning, Abbie Cornish, Jena Malone, Vanessa Hudgens, Jamie Chung, Carla Gugino, Oscar Isaac, Jon Hamm, Scott Glenn


IMDb http://www.imdb.com/title/tt097876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4678

    • 백질절제수술인가 그렇지 않습니까?
    • 뇌엽절제술, 뇌엽절리술, 전두엽 절제술이라는 역어도 있죠. 전 전두엽 절제술이 가장 익숙해요.
    • 아메리칸 맥기의 앨리스 같은 느낌일려나요...
    • 아메리칸 맥기의 앨리스 같은 작품을 기대했는데 말이죠.
    • 저 역시 전두엽 절제술이 가장 익숙하군요.
    • 로보토미라는 개념을 아가사 크리스티의 로맨스 첩보물 소설에서 가장 처음 접했는데,
      나중에 이게 미국에선 나름 큰 문제가 된 역사가 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근데 우리나라는 전두엽 절제술 대신 인권 유린이 있었으니...
      아니, 미국도 인권 유린은 있었겠지만요.
    • 스토리는 딱 아메리칸 맥기 같은데 차이가 멀까요
    • 기대를 했었는데 별로인가봐요.
      흠..리뷰만 읽어봐선 그냥 듀나님 개인의 취향에 안맞아서 조금은 뭐랄까 구차한 느낌이 들긴하는데..볼까 말까 고민되네요.
    • 네이버 링크는 [노미오와 줄리엣]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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