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의 눈 Los ojos de Julia (2010)


[줄리아의 눈]은 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종류의 호러입니다. 시력상실 호러죠. 원래부터 무서워했었지만 요샌 더 무섭습니다.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도 덜덜 떨며 볼 수밖에 없어요. 


하여간 이 영화의 주인공 훌리아는 시력을 서서히 잃어가는 병에 걸렸습니다. 쌍둥이 자매인 사라도 같은 병에 걸렸다니 유전병이겠죠. 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면 급속도로 시력이 떨어지지만, 이식 수술로 고칠 수는 있는 모양입니다. 이게 실제로 있는 병인지는 모르겠어요. 영화를 위해 만들어낸 병일 수도 있지요.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사라는 수상쩍은 상황에서 자살합니다. 훌리아는 이게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주변을 조사하죠. 사라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수상쩍고 심지어 남편도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사라의 죽음과 관련된 것 같은 수상쩍은 인물이 훌리아의 뒤를 밟고 있어요. 상황이 워낙 안 좋다보니 훌리아의 시력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결국 수술을 받아야 할 단계까지 가죠. 


각본가 겸 감독인 기옘 모랄레스는 호러 장르에 대한 아이디어를 잔뜩 가지고 있고 그걸 공습하듯 퍼붓고 있습니다. 일부는 [어두워질 때까지]와 같은 고전에서 빌려온 것이지만, 많은 부분은 그 자신의 것이죠. 그리고 그가 이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내는 영화는 섬세한 분위기와 효과적인 아이디어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서스펜스물이에요. 그 강도도 상당하고요. 훌리아가 범인에게 쫓기는 후반 부분은 서스펜스에 눌려 거의 지칠 지경입니다. 오히려 조금 쳐내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영화는 전통적인 이탈리아 지알로 스타일입니다. 초자연적인 요소가 제거된 추리물이지만, 등장인물의 생각과 행동은 알 수 없는 광기와 비논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폭력은 극단적이죠. 하지만 [줄리아의 눈]은 스페인 영화이기도 하잖아요. 폭력과 살인, 광기 속에 스페인식 멜로드라마가 진하게 녹아 있어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지배하는 것도 바로 그 멜로와 로맨스고요.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주인공 훌리아입니다. 벨렌 루에다의 연기는 멋집니다. 배우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이 캐릭터의 행동은 이해가 안 가는 구석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수술을 받아 몇 주 동안 의사의 관리가 필요한 사람은 병원을 떠나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자살한 쌍둥이 자매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훌리아의 행동 절반은 '이층으로 달아나는 금발 여자'의 공식에 충실합니다. 오로지 스스로를 위기에 빠트리기 위해 하는 행동이죠. 수많은 이탈리아 영화들이 조악하기 짝이 없는 각본으로 지알로 고전이 된 걸 생각하면 이런 건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나 싶은데, 그래도 지적은 해야겠더라고요. (11/03/21)


★★★


기타등등

주인공 이름을 잘못 쓰는 번역 제목은 싫어요.


감독: Guillem Morales, 출연: Belén Rueda, Lluís Homar, Pablo Derqui, Francesc Orella, Joan Dalmau, Boris Ruiz, Daniel Grao. Clara Segura, Andrea Hermosa, 다른 제목: Julia's Eyes


IMDb http://www.imdb.com/title/tt151268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8218

    • 오타 신고! '이층으로 달아다는' -> '이층으로 달아나는'
      신고 처음이에요 수줍네요 ><
    • '훌리아의 행동 절반은 이층으로 달아나는 금발 여자의 공식에 충실' 이거 때문에 몰입도 뚝 떨어질 때가 몇번 있더라구요. 지알로 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영상을 떼어내도 스토리 자체만으로도 문학적인 완성도가 꽤나 높은, 제가 느끼기엔 드라마와 주제의식 모두 어지간한 수준 이상인 영화였는데 저런 식의 주인공은 난감해요 -_-;; 그래도 굉장히 재밌게 봤네요. 전 악당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악역이 좋아야 영화가 산다의 좋은 예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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