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 스피치 The King's Speech (2010)


[킹스 스피치]가 나오기 전에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인 조지 6세가 말더듬이었다는 걸 알았던 사람들이 몇이나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도 거기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겠지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격동기를 거쳤다는 걸 제외하면 그렇게 튀는 인물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안에는 멋진 드라마의 가능성이 들어 있습니다. 거대한 역사적 사실과 개인적 드라마의 만남이 있고, 장애를 극복하는 도전 정신이 있고, 어쩌다보니 자신에게 넘어온 사명에 최선을 다하려는 평범한 사람의 노력이 있고, 계급을 넘어선 우정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더 일찍 발굴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죠.


영화의 이야기는 당연히 조지 6세의 말더듬 치료에 집중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말더듬이 심했던 우리의 주인공 요크 공작은 아내인 엘리자베스의 주선으로 할리 스트리트에 말더듬 교정학원을 열고 있는 라이오넬 로그라는 교정사를 만나 그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요크 공작이 형 에드워드 8세의 뒤를 이어 조지 6세가 되자, 로그의 역할은 중요해집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져, 그의 고객이자 친구가 전세계를 상대로 연설을 해야 할 때가 왔으니까요.


형식적인 면에서 보았을 때 [킹스 스피치]는 20세기 중반에 유행했던 정신분석 영화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이 영화에는 정신분석 같은 건 나오지도 않고, 로그 역시 정신분석의와는 거리가 멉니다. 심지어 그는 자격증이 있는 의사도 아니죠. 그냥 이런 방면에 경험이 좀 있는 전직 배우일 뿐입니다. 하지만 장르의 성격은 온전히 남아 있어요. 정신적인 장애와 상처로 괴로워하는 주인공이 치료자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 말입니다. 실화가 이렇게 장르 공식과 비슷하면 이야기를 만들기도 쉽고 관객들이 받아들이기도 쉬워집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관객들이 주인공들에게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평범한 고민을 안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어쩌다 보니 역사적인 순간에 중요한 위치에 있었을 뿐이죠. 국왕이나 왕비라는 타이틀을 지워내면, 타고난 결점 때문에 고민하는 소심한 남자, 그런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 다소 허세가 넘치지만 그래도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전문가가 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말미에 조지 6세의 개인적 성취가 역사적 임무와 연결되는 순간은 감동적입니다.  


배우들에게도 좋은 영화입니다. 콜린 퍼스, 제프리 러시, 헬레나 본햄 카터에게는 모두 아카데미용 연기를 할 기회가 주어지지요. 특히 퍼스에게는요. 그는 장애에 씨름하는 영국 왕족입니다. 캐스팅된 순간부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자격을 받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그런 역을 맡았다고 모두 멋진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겠죠. 그건 좋은 배우에게 주어진 완벽한 기회일 뿐입니다. 


[킹스 스피치]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자, 과연 이 작품이 경쟁작인 [소셜 네트워크]를 밀어내고 작품상을 받을 만한 작품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니, 이 작품이 상을 받은 건 당연하더군요. 확실히 이 영화에는 "와, 물건이다!"라는 소리가 나올 만한 압도적인 개성은 없습니다. 그냥 얌전하고 보수적이고 건전하며 대중적인 멜로드라마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카데미의 취향과는 더 잘 맞는 영화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세월이 조금 바뀌었다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같은 영화들만 작품상을 받아야 한다는 법은 없죠. (11/03/10)


★★★☆


기타등등

1. 사실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30년 전에 나왔다고 하더군요. 단지 엘리자베스 왕비의 요청 때문에 왕비의 사후로 미루어졌다고 합니다. 작가의 끈기도 드라마감입니다. 


2. 콜린 퍼스가 로그의 아내로 나오는 제니퍼 일리와 만나는 장면에서 [오만과 편견]을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감독: Tom Hooper, 출연: Colin Firth, Helena Bonham Carter, Geoffrey Rush, Jennifer Ehle, Derek Jacobi, Michael Gambon, Guy Pearce, Claire Bloom, Timothy Spall, Anthony Andrews, Eve Best


IMDb http://www.imdb.com/title/tt150432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6439

    • 톰 후퍼군요.
      텍사스 전기톱 토브 후퍼인 줄 알고 깜놀 ~
    • 그래도 감독상은 아직도 잘 이해가 안가죠 물론 오스카는 작품상과 감독상이 잘 안갈리지만 ^^

      이작품도 네이버 링크는 다르군요
    • 흠, 좀 이상하군요. 그냥 클릭하면 달빛으로 가고 제목을 따서 옮기면 킹스 스피치로 가요. 드러난 주소랑 링크가 다른 모양입니다.
    • 감독이 톰 후퍼였군요. 다니엘 데론다와 프라임 서스펙트 6의 감독이었어요.
    • 티모시 스팔이나 데렉 자코비를 아무 정보 없이 만난 것도 저에겐 큰 즐거움이었죠. 데렉 자코비 많이 늙었더군요. ㅠㅠ



      유튜브 어딘가에 콜린 퍼스의 연설과 실제 조지6세의 연설을 싱크로나이즈드 한 영상이 있더군요. 초반은 거의 완벽하게 맞아떨어집니다! 게시판에서 이미 소개됐었는지도 모르겠네요.
    • 라이오넬 로그가 맞습니다. 리그라고 오타가...제임스윌비가 등장했던 버티와 엘리자베스란 티비영화가 있어요. 거기서 킹스스피치랑 겹치는 말더듬/연설내용이 나와요. 그러나 그 영화의 주는 제목처럼 부부의 금슬이라서 로그는 완전히 조연이죠. 정말 부부가 사이가 좋았나봐요.
    • 고쳤습니다.

      정말 부부 사이가 좋아 보이더라고요. 영화대로라면 엘리자베스 왕비는 무척 매력적인 사람이었을 듯.
    • 이 영화 온가족이 함께 볼만한 지 궁금합니다. 아버지가 굉장히 보수적이시라서 성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이 나오면 좀 곤란한데요^^; 등급은 PG-13이고 내용상 그런 장면이 나올 것 같지도 않은데.. 제 예상이 맞겠지요?
      • 완벽하게 온가족용 영화입니다. 성적인 장면 폭력적인 장면 모두 없습니다. 이동진 평론가 말처럼 누구나 좋아할만한 그런 영홥니다.
    • 엘리자베스 왕비, Queen Mother가 사망했는지 몰랐는데 벌써 거의 10년이나 지났군요.
      국민들에게 제일 호감을 주는 왕족이었다고 하죠. 왠지 계속 살아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사망시 이미 101세였네요.
    • (기타등등 말고) 마지막 단락에서 으하하하.. 절대 동의해요.
    • 전시의 흑백 필름속에서도 연출이 가능했는지...폭격맞은 런던을 둘러보는 모습이나
      여군으로 차량 정비를 하는 두 딸을 바라보는 처연한 모습은 그냥 일반 엄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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