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민트 (2026)


[휴민트]는 한반도 분단상황을 배경으로 구식 냉전 첩보영화를 만들려는 류승완의 시도 중 하나입니다. 첫 번째 시도였던 [베를린]과는 같은 유니버스를 공유합니다. 초반에 [베를린]에서 있었던 사건이 잠시 언급돼요. 이 영화의 내용과는 별 상관이 없는데 말이죠.

영화의 배경은 블라디보스토크입니다. 사실은 대부분 라트비아에서 찍었지만요. 저번 [하얼빈]도 여기서 찍었고 나홍진의 [호프]도 여기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검색해보니 [베를린] 촬영지도 여기라고요. 하긴 요새 분위기에 러시아에서 영화를 찍는 건 어렵겠지요.

영화의 이야기는 신세경이 연기하는 채선화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이 사람은 블라디보스토크의 아리랑이라는 북한식당의 직원입니다. 북한의 마약 조직을 수사하는 국정원 조과장(조인성입니다)이 이 사람을 정보원으로 포섭했습니다. 그러니까 제목의 휴민트 대상인 거죠. 수사 과정 중 조과장은 북한 여자들을 인신매매하는 조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북한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인 황치성(박해준)이 있어요. 국경 지방의 실종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북한 국가보위성 조장인 박건(박정민)이 파견되는데, 이 사람은 채선화의 전남친입니다.

일단 전 재미있게 봤습니다. 관객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미끼(그러니까 채선화의 안전이죠)을 좋은 페이스로 끝까지 끌고 가는 영화입니다.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터지는 액션도 괜찮습니다. 조인성이 혼자 뛸 때는 많이 [존 윅]스럽습니다. 단지 조인성은 키아누 리브스보다 액션을 더 잘 하고 멋있는 척을 더 많이 하지요. 박정민이 중반에 뛰어든 뒤로는 류승완 나이의 감독이라면 당연히 영향을 받았을 수밖에 없는 [첩혈쌍웅]이 떠오르고요. 영화의 기반은 아무래도 후자였겠지요. 하여간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인구수에 심각하게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많은 러시아 마피아들이 죽습니다. 저거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요샌 뒷감당 걱정을 하게 되는 영화들을 연달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단지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고 이 영화가 맘에 들었느냐. 그건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에는 좀 익숙한 방화의 느낌이 있어요. 영화를 보는 동안 이게 뭔가 고민했는데, 끝나고 나니 알겠습니다. [휴민트]는 수상쩍을 정도로 7,80년대 호스티스 영화의 느낌이 묻어 있습니다. 채선화는 심지어 가족과 국가를 위해 성매매를 하는 위치에 있으니 호스티스 영화 주인공과 정말 비슷하죠. 게다가 영화의 중심 소재가 성매매와 인신매매잖아요.

이런 이야기도 당연히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정말 북한 출신 여성들이 이런 식으로 해외에서 성매매에 몰리는 일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있을 법한 상황이죠. 뭐, 북한과 남한의 남자 공무원들이 이 상황을 저지하려고 뛰어드는 이야기도 할 수는 있습니다. 물론 관객들에게는 그 사람들이 구하려는 사람이 사연 많고 아련한 미인인 신세경이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영화는 채선화를 포함한 북한 여자들을 좀 '불쌍한 우리 누이'처럼 그립니다. 그리고 전 그게 많이 재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영자의 전성시대]의 영자 같은 여자들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지식인 남자의 시점이 느껴집니다. 제 평범한 직간접 경험에 따르면 한반도 여자들이 불쌍해진 가장 큰 원인은 대부분 한반도 남자들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 책임을 최종악당 황치성에게 돌리고 서양 남자에게 팔려가려는 누이를 구출하는 한반도 남자 이야기로 만들어버립니다. 이 재수없음이 극단적으로 표현되는 부분이 하얀 슬립 드레스를 입힌 여자들을 방탄 유리 상자에 넣고 총격전 액션에 넣어버릴 때인데...

그러니까 영화가 남북한 두 남자가 [첩혈쌍웅]을 찍는 액션물인 이상 이 재수없음은 사라지기가 어렵습니다. 두 남자가 그 지저분함을 솔직하게 받아들였다면 조금 더 나았겠지만 그래도 마찬가지였겠죠. 저 같으면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될 수 있는 한 남자들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보았겠지만 그건 류승완이 만들고 싶어하는 종류의 영화는 아니었을 거예요. (26/02/13)

★★★

기타등등
초반의 액션은 마하도르라는 가상의 국가에서 벌어지는데, 아무래도 좋은 이미지인 곳은 아니라 가상의 국가로 만든 건 이해가 가요. 하지만 그 지명 앞에 '동남아시아'를 떡 박아놓은 눈치없는 짓은 왜 했나요.


감독: 류승완, 출연: 조인성, 박정민, 박해준, 신세경, 다른 제목: Humint

IMDb https://www.imdb.com/title/tt32606470/

    • 원래 베를린 후속편은 블라디보스토크로 준비했었죠. 표종성(하정우)가 마지막에 가려던 곳도 그곳이었고... 그런데 한국은 이런 쪽으로 후속편을 만드는 경우가 없거나 있어도 저퀄리티의 작품들이 태반이라.. 베를린 때에도 련정희(전지현)이 외교관을 역임하는데도 상사 지시로 접대역을 맡는 것도 그렇고 류승완 영화에서 여성캐릭터 소모가 좀 심하다는 생각은 드네요. 이런 소재로 더 그럴싸하게 잘만든 영화라면 이미 이스턴 프라미스 같은 영화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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