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 Shih Ming (2025)

[실명]의 원작은 대만작가 류쯔제의 동명 소설이고요. 감독인 저우 메이위는 작가와 친구 사이라고 합니다. 감독은
영어 이름이 Julian Chou라서 남성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보니까 작가처럼 여성이더라고요.
영화의 시대배경은 좀 과거입니다. 원작 단편은 2003년에 나왔다고 해요. 하지만 그보다는 뒤예요.
영화 속에서 동성혼 지지 시위가 벌어지고 등장인물들은 구형 휴대폰을 쓰며 2024년 에필로그에서
주인공 막내 아들의 성장이 보이기 때문에 대충 시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구체적인 연도가
찍힌 인터넷 기사도 있었는데, 제가 눈이 빠르지 못해서 넘겼어요.
영화는 한이라는 남자애를 중심으로 시작됩니다. 의사 아빠를 둔 명문고 학생이에요.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처럼 의사가 되길 바라지만, 걔는 그러기 싫습니다. 일단 적성이 아니기 때문이지만
그만큼이나 아버지에 대한 반발감이 커요.
어느 날, 한은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사진이 취미인 듯한 쉐진이라는 안과의사를 만나 관심을
갖게 됩니다. 둘은 섹스까지 가지만 쉐진은 한을 거절해요. 그리고 관객들은 한보다 먼저
쉐진이 한의 어머니 수이의 첫사랑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수이이죠. 단지 영화의 이야기가 한의 관점에서 해석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아들이 자신과 분노의 대상과 욕망의 대상 모두를 공유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죠. 그 때문에 영화가 종종 근친상간적이
됩니다. 아들이 어머니를 욕망하는 건 아니지만 둘의 욕망이 너무 겹쳐져 있어요.
영화에서 가장 선명한 건 이들의 남편이고 아버지인 의사 펭선생에 대한 분노입니다. 정말 최악의
인간이에요. 동아시아 남자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출세지향적이
되는 건 이해 못할 일도 아니고, 상상력이 부족하고 속이 좁은 것도 어쩔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영화 내내 같이 살고 싶지 않은 최악의 가부장입니다. 영화는 이 사람의
존재가 아내와 큰 아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짐인지를 아주 꼼꼼하게 그려요.
수이가 이성애자였어도 이 사람의 결혼생활은 고통스러웠을 거예요. 수이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대만 중상층 계급 사람들에 대한 야유와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영화는 수이의 동성애 욕망만을 보여줍니다. 쉐진은 조금 더 복잡해요. 일단 모자
모두와 관계를 갖는 사람이니까요. 이 사람은 수이에 대한 욕망이 가장 강한데, 모자는
모두 쉐진의 화장실에 놓인 전기면도기와 같은 남자의 흔적에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둘 다 이 사람이 한 번 남자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말이죠.
중화권 멜로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재미있게 보실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여전히 재미있을 거 같은데요. 부끄러움 없이 재미있는 것을 마구 보여주고 하고 싶은
말을 막 하는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들이 주는 직설적인 재미가 있지요.
(25/11/12)
★★★
기타등등
수이 역의 린이천이 제작도 맡았습니다.
감독: Mei-Yu Chou,
출연: Ariel Lin, Wu Ke Xi, Jim Liu, Frederick Lee, Moon Lee, Wang Yu Xuan,
다른 제목: Blind Love
IMDb https://www.imdb.com/title/tt35332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