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2025)


강동인의 [파란]은 영화의 기반이 되는 초반 설정을 오프닝 크레딧 이전에 깔끔하게 요약정리하면서 시작됩니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 태화는 국가대표 클레이 사격 선수인데 폐섬유종을 앓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폐이식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지지만 아버지는 수술 중 죽어요. 더 고약한 건 아버지가 수술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사람을 치어 죽이고 암매장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태화는 폐와 함께 죽은 아버지의 죄도 물려받았습니다.

현재로 넘어가면 우리는 두 번째 주인공을 소개받습니다. 태화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인 남자의 딸인 미지예요. 태화는 어떻게든 미지에게 보답을 해주려 하지만, 미지는 자퇴하고 가출했습니다. 그리고 둘은 어느 날 아주 운명적으로 어느 보석상에서 만납니다. 미지는 태화가 팔려던 장신구를 훔쳐서 달아나고요.

정말 인위적인 우연의 일치지요. 하지만 그런 우연의 일치는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니까 그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해도 우기면 되지요. 단지 그러려면 이 우연의 일치에 기반을 둔 이야기가 잘 흘러야 되는데, 이 영화는 그런 거 같지 않습니다. 영화가 많이 투박하고 거칠며 인위적인 장치들이 지나치게 잘 보입니다. 그 중 상당수는 왜 거기 그렇게 넣었는지 이해가 되긴 하지만 잘 먹히지 않는 장치들이지요. 주변 사람들이 태화를 살인자의 아들이라고 비난하는 환상 장면 같은 게 그래요.

태화와 미지 모두 그렇게까지 호감이 가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특히 태화는 자신의 고통을 지나치게 자기도취적으로 전시하기 떄문에 재수가 없죠. 영화가 그 재수없음에 지나치게 관대해서 더욱 재수가 없고. 하지만 관객들은 그런 재수없음을 이해합니다. 다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그런 호감가지 않는 사람들이 된 것이고, 그 안에서 그들은 모두 최선을 다하거든요. 얼마 전에 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도덕극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로비]의 주인공에 대해 불평한 적 있는데요. 적어도 태화는 영화 내내 끊임없이 올바르게 고민하며 어떻게든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주인공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후반에 이르면 숨겨진 여러 비밀이 드러나고 [파란]은 초반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멜로드라마틱한 경로를 따릅니다. 그리고 그런 길을 택한 영화가 주는 재미들이 상당한 서스펜스를 업고 흘러나옵니다. 여기서부터 관객들은 영화가 퀄리티 같은 어느 정도 포기하더라도 두 주인공이 해피 엔딩을 맞길 바라게 됩니다. 단지 따로따로요. 암만 봐도 둘은 서로를 못견딜 거 같으니까. (25/04/16)

★★☆

기타등등
원래 2023년에 [로스트]라는 제목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입니다.


감독: 강동인, 출연: 이수혁, 하윤경, 권다함, 김현, 임영주, 다른 제목: Lost

IMDb https://www.imdb.com/title/tt28679713/

    • 마지막 문단의 '여기서부터 관객들은 영호가 퀄리티 같은 어느 정도 걸 포기하더라도' 라는 문장에서 '영호가'는 '영화가', '퀄리티 같은 어느 정도 걸'은 '퀄리티 같은 걸 어느 정도'가 맞는 듯 합니다. 평가가 박한 듯 후한 듯 오묘한 리뷰네요. ㅋㅋ
    • 집착하는 것 같아서 좀 난감합니다만. 수정하신 부분에 여전히 단어 하나가 빠져 있습니다... ㅋㅋㅋ '영화가 퀄리티 같은 어느 정도 포기하더라도' 에서 '같은'과 '어느' 사이에 '걸'을 집어 넣으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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