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 The Hunt (2020)


크레이그 조벨의 [헌트]는 개봉 운이 정말 없었던 영화입니다. 거의 차에 치여 튕겨나갔는데 맞은 편에서 온 다른 차에 치인 수준이에요. 원래는 2019년 가을에 개봉예정이었는데, 엘 파소 총기 사건이 터져서 미루어졌죠. 그래서 올해 봄에 개봉을 했는데, 그만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구를 정복했습니다. 만든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전 이 불운이 여러 모로 이 영화와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정보 없이 보는 게 가장 좋은 영화입니다. 누가 나오는지도 모르고 보세요. [글로우] 시청자들은 오래 전부터 베티 길핀의 단독주연작이라며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전 이 배우를 몰랐어요. 이 영화에 한해서는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리뷰의 형식을 맞추기 위해 이야기를 푼다면, 영화는 레드넥을 사냥하는 리버럴 엘리트들의 이야기입니다. 레드넥 열 두 명을 납치해 무기를 주고 풀어준 뒤 사냥하기 시작하는 거죠. 리처드 코넬이 쓴 고전 [가장 위험한 게임]의 전통을 잇는 작품인데, 요새 정치 분위기를 반영한 풍자물이 된 거죠.

그럼 영화는 도대체 누구편을 드는 건가요? 일단 형식적으로는 아무 편도 안 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사냥감인 레드넥들은 대체로 얄팍한 불쾌한 사람들이고 이들의 사연을 알게 되면 더 불쾌해집니다. 사냥꾼인 리버럴 엘리트들은 일단 사람들을 사냥한다는 점에서 낙제감이고 대놓고 재수없습니다. 이들은 그냥 리버럴이 아니라 리버럴한 부자들이에요. 힐러리 클린턴에 투표했고 인종차별과 호모포비아에 반대하지만 비행기 승무원에게 "너 같은 게 캐비어는 먹어 봤니"하고 이죽거리는 부류지요.

그래도 엄격하게 저울질을 해보면 영화는 리버럴 엘리트들에 조금 기울어있습니다. 영화 대부분이 리버럴 엘리트들에 대한 농담이긴 해요. 하지만 영화는 사냥감인 레드넥들에겐 그 정도의 관심도 보이지 않는 걸요. 보면 이 영화 각본의 집필과정은 대충 다음과 같은 독백에 따라 전개되었을 거라 추정됩니다. "아, 저 트럼프 뽑고 지구온난화 부정하는 레드넥들 다 죽여버리고 싶어! 아니야. 우리가 옳다는 사실을 너무 당연시하고 몰입하면 그러다 괴물이 될 수도 있어. 일단 우리는 그 천치들보다 훨씬 혜택받은 사람들이잖아!" 아, 재수없어. 하지만 그 재수없음이 영화에서는 꽤 재미있고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도 그걸 압니다.

당연히 이 풍자는 얄팍합니다. 일단 양쪽 모두가 극단적인 사람들이고 원래 사방팔방에 총을 난사하는 풍자에서 정밀함과 깊이를 기대할 수는 없지요.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도 아닙니다. 지금의 미국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와는 아주 맞지 않죠. 하지만 그래도 한국 인터넷 사용자 중 찔리지 않으면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방팔방 난사되는 총알도 맞으면 아파요.

액션 영화로서도 꽤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일단 정이 가지 않는 인간들에게 대한 무자비한 폭력이 주는 심술궂은 쾌락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단 주인공이 정해지면 정통 서바이벌 액션의 재미가 생겨요. 그리고 주인공 크리스탈을 연기하는 베키 길핀은 아주 좋은 액션배우입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크리스탈은 주변에서 살해당하는 레드닉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고 그걸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어떻게 보여주는지는 영화를 보고 확인하시고. (20/04/30)

★★★

기타등등
VOD 가격이 2만원이라니 왜 그런 거예요?


감독: Craig Zobel, 배우: Betty Gilpin, Ike Barinholtz, Amy Madigan, Emma Roberts, Ethan Suplee, Hilary Swank

IMDb https://www.imdb.com/title/tt8244784/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92146

    • 영화가 의외로 재밌더라고요. 현재 글로우를 보고 있어서 베티 길틴의 어색한 연기 혹은 그 캐릭터의 어색함보다는 훨씬 좋더군요. 근데 숫자가 뭐 그리 중요한 영화는 아닌 것 같은데 비행기 안에서 깨어난 그 덩치 큰 레드넥이 12명 중의 하나라면 나중에 '돈'의 존재로 1명이 비는 것과는 무슨 관계인지 헷갈리네요.
    • 여담이지만 알 파치노 나온 hunters가 이 영화때문에 제목을 바꾼 거죠.
      • 그건 TV시리즈라 별 영향도 없을 텐데도 바꾸는군요
    • 코로나 이후 디지털로 개봉하는 신작들은 가격이 다 19.99불로 맞춰져있더군요. 아마 우리나라도 그 기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 "그러다 괴물이 될 수도 있어. 일단 우리는 그 천치들보다 훨씬 혜택받은 사람들이잖아!" 아, 재수없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안 볼려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듀나님 리뷰 읽어보고 한번 볼까봅니다 아 물론 튜비나 후플라 (공립도서관이 운영하는) 같은 공짜 사이트로 간 다음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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