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잠 (2017)


정재은의 한국과 일본 합작 영화인 [나비잠]은 일본이 배경이고 중간에 나오는 '나비잠'이라는 단어 하나를 제외하면 대사도 모두 일본어입니다. 그냥 일본 영화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그와는 느낌이 조금 다릅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베스트셀러 작가 료코가 주인공입니다. 병세가 심해지기 전에 마지막 소설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고 있는 료코는 우연히 잃어버린 만년필을 찾아준 한국인 유학생 찬해와 가까워집니다. 찬해는 료코의 개를 산책시켜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소설을 타이프해주는 일까지 맡게 되고 당연한 순서지만 둘은 사랑에 빠집니다.

연애 이야기지만 이야기의 무게 중심은 료코에 쏠려 있습니다. 이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 여성 작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주로 나이 든 남자와 불륜관계에 빠진 젊은 여자 이야기를 감각적인 문체로 묘사한 소설을 쓰는데, 어느 정도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고, 자신은 문학이라는 행위에 정말로 진지한데, (심지어 원고도 만년필로 씁니다. 그 나이면 컴퓨터 세대일 텐데 말이죠) 강의를 듣는 남자학생들은 '주부잡지에 나오는 수기' 같은 소설을 쓴다고 빈정거리고요. 솔직히 의도와 상관없이 희미하게 놀리는 느낌이 안 느껴지는 건 아닌데, 그래도 영화는 애정을 담뿍 담아 진지하게 이 캐릭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남자주인공 찬해는 도구적인 인물입니다. 몇몇 설정이 제시되긴 하지만 뚜렷한 개성이 없는 남자로 료코 없이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실격]을 읽고 일본 문학에 빠져 일본에 왔지만 일본에서는 언제나 관찰자이고 타자일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러니까 일본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을 대표하는 사람이죠. 어떻게 보면 이들 연애의 기록은 찬해의 관찰기에 가까워요. 그러다 영화 끝에 찬해는 단순한 관찰을 넘어... 아, 이건 스포일러가 되겠군요.

료코 역을 맡은 배우는 나카야마 미호입니다. 이 캐스팅 자체가 한국이 보는 일본이라는 영화의 성격을 대표하죠. [러브레터] 덕에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더 사랑받는 배우니까요. 영화는 찬해 역의 김재욱이 최대한 억누른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배우는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모든 아리아를 독점하는 프리마돈나입니다. 김재욱은 아마 일본어를 가장 잘 하는 한국인 배우 중 하나일 텐데(당연히 하정우보다 잘 하겠죠), 이 영화에서는 '완벽한 일본어'를 연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찬해의 완벽하지 않은 일본어를 드러내고 이를 스토리에 녹여내는데, 일본 관객들에겐 어떻게 들렸는지 모르겠어요. (18/09/04)

★★★

기타등등
이 영화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료코의 개 톤토의 실종입니다. 영화는 이를 중간에 적당히 마무리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잊힐 리가 없습니다. 료코와 같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경우에는 더욱 힘들 거고요.


감독: 정재은, 배우: Miho Nakayama, 김재욱, Hidekazu Mashima, Masanobu Katsumura, Shun Sugata, Masatoshi Nagase, Asami Shibuya, 다른 제목: Butterfly Sleep

IMDb https://www.imdb.com/title/tt8938010/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68779

    • 정말로 궁금하신 건지는 몰라도 트위터에서 검색해 봤더니, 김재욱의 영화 속 일본어에 관해 대체로 '잘한다'의 반응이네요. 소수 의견으로 '김재욱의 말투가 좋았다.', '김재욱의 일본어 아름다웠다.'와 '김재욱의 일본어가 신경 쓰였지만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가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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