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적 An Unseen Enemy (1912)


D.W. 그리피스의 단편 [보이지 않는 적]은 릴리안과 도로시 기시 자매가 같이 주연한 첫 번째 영화입니다. 소문에 따르면 그리피스는 기시 자매를 구별하지 못해서 머리를 묶은 리본 색깔로 불렀고 공포 연기를 끌어낸다면서 리허설 때 진짜 총으로 자매를 위협하고 그랬답니다. 그 꼴을 보고 참다 못한 메리 픽포드가 따지자 그 뒤로는 안 그랬다고. 한심한 이야기입니다.

시대에 너무 뒤떨어져서 지금 보면 귀엽기까지 한 스릴러입니다. 그러니까 얼마 전에 아버지를 잃은 삼남매가 있습니다. 두 자매가 상심해 집구석에 박혀 우울해하는 동안 오빠는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부동산 일부를 처분하고 왔습니다. 하지만 은행문을 닫아 집 안 금고 안에 돈을 넣어두죠. 이걸 본 그 집의 가정부가 범죄자 친구를 불러들여 돈을 털려고 합니다. 오빠는 또 외출했고 동생들만 방에 가두고 위협하면 되는 거죠.

줄거리만 보면 잘 모르시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안 되는 장면이 속출합니다. 암만 봐도 자매는 그냥 창문으로 빠져 나갈 수 있을 거 같고, 밖에서 가정부가 방에 난 구멍에 총을 집어넣어 위협을 하지만 각도를 생각해보면 전혀 위험하지 않고, 자매는 조금 멀리 있는 오빠뿐만 아니라 경찰이나 이웃에게도 연락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영화 속 인물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했어도 훨씬 심심하고 간단하게 끝났을 일들입니다. 요새 영화였다면 여자주인공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사태에 대처했겠죠. 겁에 질려 구석에 숨거나 기절하는 대신. 물론 당시 관객들은 이를 그냥 이야기의 관습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관객들은 그 어처구니없음 자체를 즐길 수도 있겠군요.

페이스도 좋고 서스펜스도 많이 남아있는 편이지만, 역시 이 영화의 가치 90퍼센트는 기시 자매에게 있습니다. 이 어이없는 이야기 속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아름답고, 둘이 같이 나오는 장면만 보면 실제 스토리보다 더 깊은 내용이 있을 거 같고 그렇답니다. (18/03/30)

★★☆

기타등등
위의 사진이 익숙하실 거예요. 프랑수아 트뤼포가 [아메리카의 밤]을 기시 자매에게 헌정할 때 저 사진을 썼습니다.


감독: D.W. Griffith, 배우: Lillian Gish, Dorothy Gish, Elmer Booth, Robert Harron, Harry Carey, Grace Henderson

IMDb http://www.imdb.com/title/tt0002553/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9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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