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장 (2016)


남연우의 첫 감독작이고 주연작인 [분장]은 작년 프라이드 영화제 때 화제를 모았던 작품인데 얼마 전에야 개봉되었습니다. 그 동안 계속 궁금했던 영화지만 어제 간신히 봤죠.

사전 정보 거의 없이 본 영화입니다. 트랜스젠더를 연기하는 연극배우가 주인공이라는 것만 알았어요. 배우가 트랜스젠더를 연기하면서 정체성 위기를 겪는다거나, 뭐, 그런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전 이런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사람들에 여기에 매료되는 이유는 알겠는데, 이 소재로 만들어진 설득력 있는 좋은 작품은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다행히도 [분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송준이라는 무명 연극배우가 주인공입니다. 송준은 [다크 라이프]라는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인 인기 번역극의 주연자리를 노리고 있는데, 이태원에서 만난 트랜스젠더와 무용수인 남동생의 도움을 받아 성공적으로 오디션에 합격합니다.

모두가 예상했던 경로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달라요. 오디션 때문에 성소수자 모임에 참석하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하고 변호하려던 송준에게 친한 친구가 커밍아웃합니다. 여기까지는 또 괜찮아요. 멋있는 척하면서 이해심있는 이성애자처럼 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예술을 위한 탐미적 재료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세계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그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는 여기에 혐오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자신의 위선적인 외피를 감당할 수 없어지는 거죠.

그냥 혼자만 고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송준은 히트 연극의 주연이라 그의 갈등은 연기에 반영이 됩니다. 웃기는 건 그의 그런 연기를 연출자와 관객 모두 ‘진정성’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여기서 영화의 주제는 호모포비아와 리버럴의 위선을 넘어 예술에 대한 보다 큰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예술이란 결국 타인의 삶을 착취해 탐미적인 재료로 써먹고 소비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우리의 경험은 결국 허상에 불과한 게 아닐까요.

기술적으로 아주 잘 만든 영화는 아닙니다. 투박하고 거칠어요. 좀 더 교활하게 관객들을 설득했다면 좋았을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분장]만큼 이 주제에 대해 정확하고 가차없는 태도로 이야기하는 한국 영화는 최근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긴 자주 만들어지지 않는 것도 당연한 것이, 이런 영화의 잠재 관객들 중 이 작품의 공격과 풍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17/10/06)

★★★

기타등등
근데 [다크 라이프]는 진짜 고루하고 재미없는 작품인 것 같지 않습니까?


감독: 남연우, 배우: 남연우, 안성민, 홍정호, 한명수, 양조아, 최용진, 김정영, 이수광, 다른 제목: Lost to Shame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Lost_to_Shame.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4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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