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Dawn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4)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에서 가장 멋들어졌던 아이디어는 이미 팀 버튼이 리메이크로 건드렸던 1편을 따르며 거기에 이야기를 맞추는 대신, 인간들의 실험으로 지능을 얻게 된 침팬지 시저를 주인공으로 한 완전히 새로운 역사를 바닥부터 쌓아올리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죠. 이 시리즈의 시저는 오리지널 시리즈 4,5편의 주인공 시저와 이름이 같고 역할이 비슷하지만 원작 시리즈의 시간여행 패러독스와 같은 무리한 설정은 없고 캐릭터와 드라마도 훨씬 깊습니다.

하지만 새 리부트 시리즈는 원작을 완전히 버릴 수가 없습니다. 피에르 불의 원작소설을 따르건, 오리지널 시리즈 2부의 결말을 따르건, 같은 시리즈 5부의 보다 낙관적인 결말을 따르건, 시저가 이끄는 유인원들은 인류와 맞서거나 인류를 정복할 정도의 세력으로 커져야 하는 것이죠. 하려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1편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했던 시저를 포기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 역사적 전환점을 시저가 살아있을 때 이루어야 하는데,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요? 일단 1편에서 숲으로 달아난 유인원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세요. 그들이 죽어라고 번식에만 집중했다고 생각해도 논리적으로 불릴 수 있는 지능있는 유인원의 수는 제한되어 있지요. 이런 이야기를 이치에 맞게 풀려면 최소한 수 세기가 필요한데, 그럼 시저를 쓸 수가 없잖아요.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의 작가들도 이 문제점들 때문에 골치를 좀 썩혔을 겁니다. 몰랐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들의 대안은 설정의 비논리를 적당히 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인원들이 갑자기 늘어났어요. 그러려니 하죠. 하필이면 인류를 거의 멸망시킨 시미언 플루에서 살아남은 인간 생존자들이 유인원들이 사는 숲에 있는 수력 발전소를 이용하려고 해요. 넓은 게 땅이니 다른 데에서 발전소를 찾으면 될 것 같지만 그냥 급하다고 치죠. 유인원과 인간의 첫 번째 전쟁이 벌어져요. 아무리 유인원들의 지능이 높다고 해도 신체적 핸디캡이 있고 복잡한 언어를 구사하지도 못하고 현대식 군사훈련도 못 받아봤으니 인간의 상대가 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운이 좋았다고 치죠...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구석이 많은 각본입니다.

이런 임시방편 설정들을 정리하고 무게를 넣어주는 것은 기성품 장르 규칙입니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 스파르타쿠스나 모세의 이야기를 심은 SF였다면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서부극입니다. 60년대 수정주의 서부극을 예로 드는 게 가장 손쉽겠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훨씬 오래되었어요. 고전 서부극 시절에도 비릇한 예는 쉽게 찾을 수도 있고, 원조를 찾으려면 유럽 문화가 토착 문화와 충돌하던 초창기까지 거슬러 가는 게 맞아요. [반격의 서막]이 택한 건 몇 백년의 세월 동안 비슷비슷한 사건들이 쌓이고 이야기되면서 고정된 고전적인 이야기로, 몇몇 논리적인 일탈이 있다고 해도 쉽게 잊을 수 있는 보편성의 힘이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완전히 반대되는 결말을 지향한다는 것이죠.

비극적인 영화입니다. 충분히 공존할 수 있었던 두 지적 존재가 결국 전쟁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니까요. 영화는 특별한 악역을 설정하는 대신 자신의 종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 네 부류의 관점을 충분히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보여줍니다. 결과적으로 그들 중 한 쪽이 악역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우린 그 '악역'이 왜 그런 길을 택했는지 이해합니다.

1편에서 시저가 구원자 영웅이었다면, 2편의 시저는 실패한 영웅입니다. 영화의 스토리 전개 자체가 그의 실패를 요구하죠. 그는 올바른 비전을 가지고 있는 공정한 지도자지만 바로 그 고지식한 선함이 약점이 되어 그를 파멸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의 시저는 전통적인 비극의 주인공이 지녀야 하는 모든 요소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영화의 블록버스터식 결말도 시저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 때문에 3편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맺을지 더 궁금해지는 거지만요.

앤디 서키스의 이름이 엔드 크레디트 맨 앞에 뜹니다. CG의 소스를 제공해준 배우의 이름이 진짜 배우보다 먼저 뜨는 이상한 영화죠.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게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만큼이나 이 영화에 나오는 유인원들의 존재감과 연기가 생생하니까요. 단지 아무리 앤디 서키스의 공로를 인정한다고 해도 CG를 최종적으로 완성한 수많은 사람들의 공로가 축소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영화 연기는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운 정의를 요구합니다.

[진화의 시작]과 [반격의 서막]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작품인지를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전 보다 전통적인 SF였던 1편이 조금 더 좋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격의 서막]이 [진화의 시작]이 깔아놓은 설정을 디디고 서서 훌륭히 [제국의 역습] 역할을 해낸 작품이란 작품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14/07/10)

★★★☆

기타등등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이 영화에서 암컷 유인원들의 존재감이 굉장히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리지널 시리즈와 비교해도 그래요. 주도 종족인 침팬지라는 동물의 성격을 고려해보면 설명이 안 되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들이 판타지나 SF 작가들이 종종 걸려넘어지는 '암컷 없는 무리'의 착오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심지어 공동작가 중 한 명이 여성인데도요.


감독: Matt Reeves, 출연: Andy Serkis, Jason Clarke, Gary Oldman, Keri Russell, Toby Kebbell, Kodi Smit-McPhee, Kirk Acevedo, Nick Thurston, Terry Notary, Karin Konoval, Judy Greer, Jon Eyez, Enrique Murciano

IMDb http://www.imdb.com/title/tt2103281/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9740

    • 솔직히 리뷰도 좋은 내용은 별로 없는데 별점과 결론으로만 호평 하셨네요 개인적으로 최악의 영화 였습니다. 1편의 참신함은 다 어디가고 이게 무슨 라이온킹도 아니고 어쩜 그리 진부하고 식상한 장면들만 보이는지...
      액션도 아무 감흥 없었고 제발 영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네요.
      • 아직 영화를 못본 사람 입장에서 이 리뷰의 전반적인 내용은 별셋반 정도가 무리없이 어울리는 좋은 영화라는 호평이 지배적인 것처럼 읽혀요.
        • 당연히 호평으로 이해 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저는 이 리뷰의 내용대로여서 별로인 부분이 지나치게 컸습니다.
    • '역할을 해낸 작품이란 작품이라는 사실은' -> '역할을 해낸 작품이라는 사실은'

      평 읽고나니 기대가 됩니다.
    • 저도 아직 안 봐서 궁금하네요.
    • 저는 전편 (원작이 아니고) 에 별로 매력을 못 느꼈던 (잘 만들었다고는 생각했지만) 관객으로서 2편이 약간 더 나았습니다. 지루하다던가 전개에 새로움을 못느꼈다는 비판도 일면 이해가 가긴 하네요. 근데 뭐 [제국의 역습] 도 "나는 니 애비다" 설정을 제외하면 [스타워즈] 의 팬한테서 비슷한 비판을 받았겠죠.
    • 저는 이번 반격의 서막이 정말 지적이고 진짜 감정과 심장도 있고 심지어 블록버스터로서 쉽지 않은 선택들까지 한 용감한 걸작이라 생각합니다.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ㅠㅠ

영화 리뷰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2454 터널 Địa Đạo: Mặt Trời Trong Bóng Tối (2025) 816 04-28
2453 리 크로닌의 미이라 Lee Cronin’s The Mummy (2026) 1 769 04-28
2452 살목지 (2026) 1 996 04-28
2451 제 98회 아카데미 상에 대해 몇 가지... 5 2,228 03-17
2450 호퍼스 Hoppers (2026) 1,687 03-12
2449 브라이드! The Bride! (2026) 1 1,615 03-06
2448 센티멘탈 밸류 Affeksjonsverdi (2025) 1 1,626 03-05
2447 아르코 Arco (2025) 1,205 03-03
2446 귀신 부르는 앱: 영 (2026) 1 1,001 03-02
2445 왕과 사는 남자 (2026) 2 2,040 03-01
2444 햄넷 Hamnet (2025) 1,406 02-28
2443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 (2026) 1,557 02-22
2442 휴민트 (2026) 1 2,466 02-13
2441 지느러미 (2025) 1 1,449 02-02
2440 솔 서바이버 Sole Survivor (1984) 962 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