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12년 12 Years a Slave (2013)


스티브 맥퀸의 [노예 12년]의 주인공은 솔로몬 노섭이라는 실존인물입니다.. 북부에서 자유인으로 살아온 흑인이었던 그는 노예업자에게 납치당해 남부로 끌려갔고 12년 동안 노예로 지냈다가 간신히 빠져 나왔습니다. 그는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예 12년]이라는 회고록을 썼는데, 이 책은 80년대에도 [샤프트]의 감독인 고든 팍스에 의해 [Solomon Northup's Odyssey]라는 텔레비전 물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영화 개봉과 함께 5개의 출판사에서 번역되었지만 전 아직 보지 못 했어요. 하지만 자료들을 읽어보니 노섭의 고난은 영화가 그린 것보다 훨씬 지독했던 것 같더군요.

흑인 노예를 다룬 영화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이런 소재 영화들에 대한 고정적인 편견이 있습니다. 부당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다룬 심각한 멜로드라마인데, 그와 동시에 이런 부정적인 자극이 일종의 SM 포르노 역할을 하는 것이죠. [뿌리] 미니 시리즈와 [만딩고]는 이 소재의 양쪽 측면을 대표하는 작품들이죠.

[노예 12년]은 조금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솔로몬 노섭은 흑인 노예지만 원래는 북부에서 자란 자유인입니다. 남부 노예의 문화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죠. 그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다른 노예 이야기와 조금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간 현대인이 겪는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노예제의 고통을 당사자로서 체험하는 대신 약간 거리를 두고 시스템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냉정한 지식인의 관점에서 관찰하는 것입니다.

영화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마이클 파스밴더가 연기하는 두 명의 노예주와 이제 플랫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노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이들은 위선자와 악당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을 조롱하거나 욕하는 쉬운 길을 택하는 대신 그들 역시 노예제의 문화와 경제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으며, 플랫만큼이나 시스템의 포로임을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채찍 휘두르는 악당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파스밴더의 에드윈 엡스는 이 영화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 됩니다. 여전히 혐오스럽지만 쉽게 악당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인물 말입니다.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남부의 노예제가 그 긴 시간 동안 어떻게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 유지되어 왔고 그 시스템 안에 다양한 방식으로 적응한 개인이 어떻게 일상을 유지해왔는지도 보여줍니다. 그 일상은 종종 끔찍한 방식으로 본 모습을 드러내지만 영화는 그 때에도 차분함을 유지합니다. 오로지 루피타 뇽오가 연기하는 노예 팻시의 이야기만이 전통적인 멜로드라마로 남아있지요.

영국 감독이 두 명의 영국 배우, 한 명의 독일계 아일랜드 배우, 한 명의 케냐 배우를 데려와 주연으로 캐스팅해 만든 영화입니다. 이런 캐스팅은 괴상해보이지만 이치에 맞습니다. 미국에서 역사와 문화는 하나의 연속체를 이루며 흐릅니다. 그 연속체의 한쪽 지점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지점과 자신의 차이를 냉정하게 구별하기 어렵죠. 이런 외부인의 관점은 오히려 실제 역사에 더 냉정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해줍니다. 물론 이들이 가진 기존 이미지도 무시할 수 없고요. 예를 들어 솔로몬 노섭의 캐릭터는 이전까지 주로 도시 지식인을 연기해왔던 치웨텔 에지오포의 기존 이미지 덕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노예 12년]는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영화는 아닙니다. 그러기엔 지나치게 냉정하고 객관적이죠. 앞으로도 이 영화는 팬을 거느리는 대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존중받는 수작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큽니다. 나쁜 일은 아니에요. 원래 그렇게 감상되어지도록 만들어진 영화니까. (14/03/07)

★★★☆

기타등등
제작자인 브래드 피트가 막판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카메오로 나오는데, 솔직히 너무 기계장치의 신처럼 보여서 긴장감이 떨어지더군요. 오히려 [장고:분노의 추적자]에서 타란티노가 그랬던 것처럼 적당히 나쁜 역으로 나왔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감독: Steve McQueen, 출연: Chiwetel Ejiofor, Michael Fassbender, Benedict Cumberbatch, Paul Dano, Paul Giamatti, Lupita Nyong'o, Sarah Paulson, Brad Pitt, Alfre Woodard

IMDb http://www.imdb.com/title/tt202454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0901

    • 실존인물입니다.. -> 실존인물입니다.
      파스밴더 -> 파스벤더
    • 저도 브래드 피트가 타란티노의 유머감각을 갖추었으면 했는데 혼자서 오글거리는 역을 하더군요. 스티브 맥퀸은 비디오 설치 미술로 90년대 말에 터너 상을 탔던 젊은 미술가였고, 전 이 사람의 작품을 테이트 모던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아이디어나 구성이 꽤 인상 깊었어요. 이번에 영화 만들고 기자 회견을 하는데 멍청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딱딱 끊더군요. '영국' 국적의 '흑인'이 만들었다는데 의의를 두려는 질문에는 보다 보편적인 시각으로 보라고 단칼에 자르기도 하고요. 오랜만에 감정 뿐아니라 여러 모로 뇌세포를 자극하는 영화였습니다.
      • 이름보고 혹시나했는데 그 스티브 매퀸이 맞군요.저는 작년5월경 테이트브리튼 비디오아트 전시실에서 매퀸의 작품을 본 적 있어요.
    • 감상되어지도록 → 감상되도록/감상하라고
    • 배우가 브래드피트여서 더 오글거렸지만,
      미국 노예제는, 노예제 바깥에서 그것을 진심으로 혐오하는 이들의 무력에 의해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는 설정 같아요.
    • 전 별로 오글거리지 않았는데... 다른 배우가 그랬으면 그냥 넘어갔을 장면이 브래드 피트가 해서 욕을 먹는 것 같아요
      • 글쎄요. 브래드 피트나 제작진을 탓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캐릭터에 집중하지 않고, 배우 브래드 피트를 생각하며 본 관객의 문제죠.
        브래드 피트가 짧지만 아주 진실되게 연기해줘서, 전 정말 선하고 의리있고 훈남이기까지 한 캐나다인 같이 느껴졌습니다.
        • 제 말이 그말입니다. 다른 배우가 연기했더라면 그냥 자연스럽게 넘어갔을 장면인데 초특급스타배우가 잠깐 등장해서 교훈적인 말을 하니까 사람들이 그걸 가만 못놔두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 같아요. 괜찮게 본 장면인데 안좋아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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