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 Ida (2013)


지금까지 파벨 파블리코브스키를 폴란드 감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가 폴란드 사람이라는 걸 몰랐다는 게 아니라 그는 십대 때 영국에 온 뒤로 영국에서 영국 영화를 만들었으니까요. 대표작인 [사랑이 찾아온 여름] 같은 걸 봐도 감독의 국적 같은 건 거의 보이지 않고. 그러니까 영화계의 조셉 콘래드 같은 사람이라고 쳤던 거죠. 그러고보니 조셉 콘래드는 폴란드어로 소설을 쓸 생각이 있긴 했던 걸까요?

조셉 콘래드가 어땠는지는 몰라도 파블리코브스키는 꽤 오래동안 고국으로 돌아가 폴란드 영화를 만들 계획을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갑자기 튀어나온 영화가 1962년 폴란드를 무대로 한 이 영화 [이다]입니다.

내용은 간단해요. 가톨릭 고아원에서 자란 안나는 수녀 서원을 앞두고 유일한 혈육인 이모 반다를 찾아갑니다. 왕년엔 피의 반다라고 불리던 스탈리니스트 판사였던 반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려주죠. 안나의 본명은 이다 레벤슈타인이고, 안나의 부모는 유태인, 그리고 그들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 때 살해당했다는 것. 사실을 전해들은 안나는 이모와 함께, 부모가 묻힌 곳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단순한 이야기이고 영화로 보면 더 단순합니다. 러닝타임도 80분 조금 넘는 길이로 짧고요. 하지만 이 단순함은 그렇게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난해한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일관성 있는 독자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당연히 할 거 같은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는 1962년 폴란드를 대표할 수많은 재료가 있어요. 제2차세계대전의 상흔, 홀로코스트에 대한 죄의식, 반유태주의, 스탈린주의, 가톨릭.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구체적인 디테일 없이 큰 덩어리로 보여주고 있어요. 여러 주제를 억지로 하나의 흐름 속에 묶을 생각도 별로 없는 거 같고.

영화는 여러 모로 꿈처럼 보입니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폴란드 감독이 자기 나라와 그 나라의 역사에 대해 꾸는 꿈이기도 하지만 1960년대에 나왔을 법하지만 검열 때문에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는 가상의 폴란드 영화에 대한 꿈같기도 해요. 이 영화는 흑백에다 화면비율은 4:3입니다. 인물들을 바닥에 깔고 위를 빈공간으로 남겨두는 스타일은 아니지만요. 하여간 아름답고 낯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그런 이미지의 연속입니다.

자칫하면 날아갈 수도 있는 구체성을 영화에 심어주는 건 안나와 반다를 연기한 두 배우의 연기입니다. 아가타 트르체부코브스카와 아가카 쿨레자. 둘은 극단적으로 다른 배우입니다. 아가타 트르체부코브스카는 순전히 이미지 때문에 뽑은 대학생이지만 아가타 쿨레자는 20년 경력의 전문배우. 하지만 영화는 거의 백지와 같은 트르체부코브스카의 이미지를 쿨레자의 전문 배우 연기와 거의 이상적으로 결합하고 있습니다. (15/02/14)

★★★☆

기타등등
촬영감독이 두 명인데, 첫 번째 촬영감독이 의견 불일치로 나갔고 그 밑에서 일하던 촬영기사가 촬영감독 자리를 차지한 모양이더군요. 이번 아카데미에서는 두 사람 모두 촬영상 후보로 올랐습니다.


감독: Pawel Pawlikowski, 배우: Agata Trzebuchowska, Agata Kulesza, Dawid Ogrodnik, Jerzy Trela, dam Szyszkowski, Halina Skoczynska, Joanna Kulig

IMDb http://www.imdb.com/title/tt271849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3165

    • 본문 마지막 단락에 동일인물인 배우 이름이 하나는 아가카, 하나는 아가타로 되어 있습니다.
    • 극중 호텔 한켠 재즈 라운지는 순전히 감독 취향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적절한 브레이크, 뭐랄까, 요근래 나온 영화들 중에 재즈에 신세를 지는 영화가 많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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