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도회 (2016)


요새 관객들은 영화의 교훈에 필요 이상으로 냉소적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정말 훌륭했던 [배드 지니어스]의 결말을 보고 그게 영화를 '망쳤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전 많이 슬펐습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고 올바르게 행동한 것이 그렇게 실망스러웠을까요? 도대체 우린 어떤 세계를 살고 있는 걸까요.

무엇보다 교훈에 대해 기계적으로 냉소적이 되기엔 단순 명쾌한 교훈을 담은 걸작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중 몇 편은 대놓고 프로파간다 영화이기도 하죠. 에릭 로메르의 영화들, 혁명 이후 나온 에이젠슈체인의 걸작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이 만든 기가 막힌 전쟁 선전 영화들. 이들은 ‘그런 주제에도 불구하고 잘 만든 영화’가 아니죠. 그 영화들은 모두 그 주제에 진지하고 충실합니다.

[수요기도회]도 유익하고 현실적인 교훈을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도박하지 말자'요. 2015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단박영화공모전을 주최해 3편의 단편을 뽑아 [사선위에서]란 제목의 옴니버스 영화를 만든 적 있어요. [수요기도회]는 이 세 작품 중 하나입니다. 처음부터 공익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죠. 옛날 같았다면 그냥 문화영화로 틀어도 되었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의 도입부는 소소합니다. 기도회 모임을 돌아다니며 화장품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는 헤라는 우연히 만난 가정주부 소연에게 기도회 모임의 아르바이트를 제안합니다. 여기까지 영화의 분위기는 평범하고 아늑하며 유머도 상당합니다. 하지만 수요기도회는 중년 여자들의 화투판이고, 헤라의 본업은 친목 도모용 화투라는 미끼를 던져 도박장에 사람을 모으는 것이죠.

여기서부터 영화는 거의 호러입니다. 천진난만한 소연은 누가 봐도 도박장의 먹잇감이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바닥을 칠 거라는 건 누가 봐도 뻔하거든요. 의외로 헤라와 소연 사이의 따뜻한 감정은 진짜이고 헤라는 처음부터 소연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데도 그렇습니다. 소연의 몰락은 그래서 진짜로 무서워요. 이 영화에 등장한 이상 도박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운명의 캐릭터인 겁니다. 어떤 자유의지도 먹히지 않는 이야기와 주제의 제물이죠.

[수요기도회]의 아름다움은 이 단순한 교훈이 오히려 드라마에 계속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도박중독은 무시무시하고 가차없는 운명의 힘이고, 이를 정면으로 맞고 붕괴되는 캐릭터나, 이에 맞서 싸우며 도움을 주려는 캐릭터 모두에게 강렬한 인간적 갈등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죠.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도박을 넘어선 인간조건의 한계에 대한 주제로 연결됩니다. 여전히 완벽하게 기능하는 공익영화지만 은근슬쩍 그 울타리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모두 서정연과 김새벽이라는 훌륭한 배우에 의해 끝내주게 연기되고 있지요. (17/12/10)

★★★☆

기타등등
계속 영화제에서 하는 걸 놓쳤다가 이번 네이버 인디극장에서 보았어요.


감독: 김인선, 배우: 서정연, 김새벽, 허정도, 김금순, 정의순, 다른 제목: Wednesday Prayer Group

IMDb http://www.imdb.com/title/tt567462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1007

    • 오늘보고 리뷰를 봤는데 이런 부분이..

      '주제에도 불구하고 잘 만든 영화들이 아니죠.->잘 만든 영화죠'

      영화 좋더라고요.
      • 아뇨. 오타가 아닙니다. 분명하게 하기 위해 작은 따옴표를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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