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우주공주 Lesbian Space Princess (2025)


올해 베를린 영화제 테디상 수상작인 [레즈우주공주]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만큼이나 정직하고 직관적인 제목을 갖고 있는 영화지요. 이 영화의 주인공 사이라는 정말로 레즈비언 우주 공주입니다. 조금 더 꼼꼼하게 이야기하면 클리토폴리스라는 행성을 지배하는 왕족의 딸이에요. 사이라를 차고 떠난 전여친 키키가 이성애자 백인 악당들(Straight White Maliens)에게 납치되어 인질이 되자, 사이라는 성차별주의자 인공지능을 탑재한 우주선을 타고 클리토플리스를 떠나 우주로 나갑니다.

제목의 직관성은 아무래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앞섭니다. [레즈우주공주]라는 제목을 보면 떠오르는 씩씩한 이미지가 있잖아요. 이 영화의 사이라에겐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씩씩함이 없습니다.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인기는 당연히 없습니다. 공주가 이러면 정말 곤란한데 말이죠. 그 씩씩함을 모두 갖고 있는 건 키키인데, 사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원래 키키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짜려고 했다 합니다. 그랬어도 재미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보다 장르에 충실한 정통적인 모험물이 되었겠지요. 방향을 튼 이유는 아무래도 엠마 허프 홉스와 릴라 바르기스 감독 콤비(실제로도 커플이라는데)가 더 몰입과 공감이 쉬운 사이라를 주인공으로 택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이라가 인도계로 설정된 건 바르가스가 인도계이기 때문이고요.

이 영화도 우주를 배경으로 한 모험물이긴 합니다. 하지만 영화 속 우주는 오로지 비유와 상징으로만 이루어진 곳입니다. 그러니까 사이라의 모험은 안전지대의 버블 안에 갇혀 있던 젊은 여성이 두려움과 수줍음을 극복하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스페이스 오페라의 재료들로 상징화한 것입니다. 그 모든 비유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일대일이에요. 영화의 재미는 바로 그 뻔뻔스러움에서 옵니다. 그렇다고 영화의 다채로움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바이섹슈얼 게이팝(네, 케이팝 농담이라고 하는군요) 가수에서부터 음험한 드랙 퀸에 이르기까지 캐릭터들도 다양하고 그만큼이나 배경 우주도 다채롭습니다. 아마 호주 사람들만 알아차릴 수 있는 농담도 꽤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건전하고 단순하지만 쉽게 가는 영화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영화는 로맨스지만 장르 전형성을 따르는 결말을 갖고 있지 않죠. 그런 결말을 맺기엔 감독들이 주인공을 지나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영화는 밝은 편이고 우린 사이라와 감독 커플에 대해 많은 기대를 품게 됩니다. 정말 즐거운 영화예요. (25/08/03)

★★★☆

기타등등
영화에서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하는 라비리스라는 도끼가 있지요. 영화에서는 그걸 설명하는 위키피디아 항목도 보여주는데. 이제 그 항목에는 이 영화 내용도 추가되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Labrys


감독: Emma Hough, HobbsLeela Varghese 출연: Shabana Azeez, Bernie Van Tiel, Gemma Chua-Tran, Richard Roxburgh, Kween Kong

IMDb https://www.imdb.com/title/tt29781139/

    • 두 번째 문단의 괄호가 끝난 부분 뒤에 '가'를 붙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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