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One Battle After Another (2025)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예고편을 극장 앞 모니터를 통해 처음 보았을 때, 전 이게 폴 토머스 앤더슨의 작품이란 걸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오는 애매한 신작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기억하기 어려운 제목 때문이었을 겁니다. 전 분명 앤더슨이 새 영화를 비스타 카메라로 찍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하지만 예고편 위에 흐르는 이미지만으로는 그 영화와 제가 아는 폴 토머스 앤더슨을 연결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기대도 없었고요.

영화를 보기 전에 조금 흥미로운 정보를 얻었습니다. 이 영화가 토머스 핀천의 [바인랜드]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는 거였어요. 이 사람은 한 동안 이 소설을 각색하려고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대요. 결국 캐릭터의 기본 설정만 남겨두고 그냥 액션물을 썼다는 거죠. 여기서부터 예고편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척척 [바인랜드] 캐릭터들과 연결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전엔 생각 없이 보았던 예고편이 재미있어져요. 일단 폴 토머스 앤더슨과 토머스 핀천은 정통 액션물과 직접 연결하기 조금 어려운 사람들이잖아요. 가능하기는 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본 결과물은 정말 신기한 것이었습니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로도 신기했고 그냥 액션물로도 신기했습니다.

영화는 프렌치 25라는 무장 혁명 조직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보다 보면 ‘시대가 맞나‘란 생각이 들죠. 이 사람들은 21세기 초보다는 1960년대에 속해 있습니다. 그건 핀천의 원작이 60년대에 정치투쟁을 했던 80년대 사람들 이야기이기 때문인데 ([허공에의 질주]의 가족과 같은 시대 사람들입니다) 앤더슨은 이들을 별 고민 없이 21세기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들이 와해되고 주인공 인 폭탄 전문가 밥 퍼거슨의 딸 윌라가 16살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 영화의 악당이고 윌라의 친 아버지인 스티브 J. 록조라는 인간이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이라는 백인 우월주의자 단체에 들어가려고 혼혈인 딸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거죠.

분명 시대착오적인데, 보다 보면 ‘어, 이 이야기가 왜 시대에 맞아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영화가 만들어지는 동안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고 미국의 역사를 심각하게 뒤로 뒤로 잡아당겼기 때문이죠. 앤더슨이 트럼프 당선 전부터 짜놓았을 각본은 동시대와 수상쩍을 정도로 완벽하게 조우하고 그 때문에 당시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영화가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들 당시 과장된 풍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냥 리얼리즘이 된 것이죠.

영화에서 가장 이상해보이는 건 리듬감입니다. 2시간 40분이 훌쩍 넘어가는 긴 영화인데 러닝타임 전체를 하나의 리듬감 속에 가두어 놓습니다. 심지어 중간에 1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요. 세월을 건너 뛰고 별별 일들이 일어나지만 쿵쿵거리는 심장박동과 같은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과 함께 같은 리듬으로 가는 거죠. 이러면 머리로는 ‘이래도 되나. 좀 단조롭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정작 보는 동안엔 있어야 할 단조로움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건 영화를 이루는 재료들이 그만큼 재미있고 다양하고 종종 예측하기 어려워서인데, 그러니까 다채로운 재료들이 채워진 비슷한 크기의 상자들이 줄지어 질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액션은 사실 어느 정도 그 리듬의 덕을 보고 있습니다. 콘베이어에 실려오는 물건들처럼 액션들이 일정한 속도로 다가오고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되건 영화는 그것들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 리듬을 타지 못하는 밥 퍼거슨 같은 캐릭터는 그 때문에 자빠지고 뒹굴고 뒷북을 치는 거죠.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액션 장면인 카체이스도 리듬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속도를 높이지 않습니다. 이 장면은 다른 차도 없는 도로를 달리는, 특별히 빠르다고 할 수 없는 세 대의 차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에 특별함을 부여하면 언덕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되는 지형뿐이죠.

영화의 캐릭터들은 거의 무성영화처럼 단순합니다. 체이스 이터너티가 연기한 윌라는 고결하고 아름다운 공주님입니다. 반대쪽엔 숀 펜이 연기한 사학하고 우스꽝스러운 스티브 록조가 있지요. 중간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우스꽝스럽고 하찮은 밥 퍼거슨이 있어요. 이들은 모두 얼굴만 봐도 캐릭터가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복잡해도 두 줄 정도면 설명이 가능합니다. 록조를 예로 든다면, 이 사람은 백인우월주의자지만 흑인 여자에게 끌리는 메저키스트이기도 하죠. 이 사람의 심리와 행동은 딱 이 둘의 조합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설명이 어려운 복잡성은 대부분 정보 부족에서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윌라의 어머니 퍼피디아는 표면적으로는 행동이 설명되지만 여전히 빈 구석이 남아 있는 인물로, 이 사람의 캐릭터로서의 힘도 어느 정도 여기서 나오죠. 하지만 중요한 건 이 단순함이 캐릭터의 지루함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영화는 굉장히 재미있는 캐릭터 전시장입니다.

낙천적이지만 그렇다고 현실주의를 놓치지 않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혁명은 수많은 패배와 약간의 성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결코 쉽게 끝나 결말을 볼 수 있는 종류가 아니고요. 우리는 유머와 친절함, 여유를 잃지 않고 이 영원한 투쟁을 즐겁게 맞아야 하는 겁니다. (25/10/27)

★★★☆

기타등등
흑인 엄마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며 딸의 곱슬머리를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던 밥의 경험은 앤더슨의 아내 마야 루돌프의 아버지 리처드 루돌프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라고요.


감독: Paul Thomas Anderson, 출연: Leonardo DiCaprio, Sean Penn, Benicio del Toro, Regina Hall, Teyana Taylor, Chase Infiniti 다른 제목:

IMDb https://www.imdb.com/title/tt1527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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