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2025)


이삭 보리는 평양의 스웨덴 대사관의 1등 서기관입니다. 인기 없는 곳이라 다들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데, 이 사람은 계속 연장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요청이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날 왔습니다. 보리는 평양을 떠나야 해요.

보리가 여기 머물고 싶어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교통보안원인 서복주와 연인 사이이기 때문이죠. 둘은 몰래 데이트를 합니다. 섹스까지 갔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전 안 했을 거 같습니다. 일단 너무 위험부담이 큽니다. 두 사람의 연애는 거의 스파이 접선 같아요. 그리고 이미 조심을 했는데도 눈치를 챈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통역관인 리명준은 말이죠.

리명준이라는 이름이 친숙한 관객들이 있을 텐데, 최인훈의 [광장] 주인공 이름이 이명준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느슨한 각색물인가?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영향은 받았고 최인훈의 이름이 엔드 크레딧의 감사하는 사람들 이름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고전적인 냉전 시대 로맨스입니다. 스토리만 보면 동베를린이나 모스크바 배경에 시대는 1960년대나 70년대 정도일 거 같죠.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아이폰이 존재하는 지금에도 가능한 곳이 바로 위에 있습니다. 영화는 그 특수성에 바탕을 둔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그것도 저예산으로요. 답은 애니메이션입니다. 영화는 극영화에서는 고민했어야 할 두 가지 문제를 그냥 해결합니다. 평양 로케이션과 스웨덴 배우의 캐스팅입니다.

영화엔 평양의 지형지물을 활용한 장면들이 많습니다. 한없이 밑으로 내려가고 종종 정전으로 멈추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같은 곳 말이죠. 지하철은 [프렌치 커넥션]을 연상시키는 액션의 재료이기도 해요. 영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평양이라는 도시의 가라앉고 억압된 분위기 또한 잘 잡아내고 있습니다. 그게 얼마나 정확한 묘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영화 속 평양은 구체적인 개성이 있는 곳입니다.

후자는 조금 까다롭습니다. 영화는 주인공을 금발인 백인으로 그리고, 한국어, 정확히 말하면 남한 표준어 대사를 줍니다. 그렇다면 이 대사는 스웨덴어와 영어를 대체한 것일까요. 절반 정도는 그렇습니다. 이 사람은 할머니 중 한 명이 한국인이라 한국어가 가능하다는 설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사관 내부의 대사는 스웨덴어이고 복주나 리명준과의 대화는 한국어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엔 신경 쓰이는 정치적 꼬임이 있습니다. 유럽 언어의 보편화와 정상화, 그리고 거기에 묻어 가는 남한 표준어. 그리고 전 언젠가 AI 영화를 만들라고 하니까 다들 영어를 쓰는 서양인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경향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를 갖고도 이 주제에 대해 꽤 많이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도 [광장]은 울림이 큰 영화입니다. 정치적 상황이 작은 개인들의 삶을 얼마나 억압하는지를 보여주면서 그 억압이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쾌락 또한 그려 보여주는, 거의 [밀회]의 전통을 잇는 전통 멜로드라마예요. 솔직히 대가리가 꽃밭인 1세계 남자 때문에 주변 북한 사람들이 개고생을 한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닌데, 그 역시 의미있는 주제가 될 수 있겠죠. (25/12/08)

★★★

기타등등
이삭 보리라는 이름은 성과 이름 모두 한국어로 여겨질 수 있는 이름인데. 일부러 그렇게 지었을까요.


감독: 김보솔, 출연: 전운종, 이찬용, 이가영, 다른 제목: The Square

IMDb https://www.imdb.com/title/tt36591286/

    • 올해 100미터도 그렇고 나름 좋은 평가를 받는 국내 애니메이션이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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