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모리스 I Love You Phillip Morris (2009)


[필립 모리스]라는 제목만 본 사람들은 대부분 담배회사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할 것입니다. [I Love You Phillip Morris]라는 원제는 보다 친절하지만 그래도 담배회사에 대한 냉소적인 다큐멘터리일 가능성이 더 높죠. 하지만 이 영화의 필립 모리스는 담배회사가 아닙니다. 어쩌다보니 우연히 이름이 담배 회사와 같았던 남자지요. 그럼 그에게 사랑한다고 외친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영화의 주인공인 스티븐 제이 러셀입니다.

스티븐 제이 러셀은 실존인물이고 이 영화가 그리는 그의 인생 상당부분은 사실입니다. 그는 한동안 평범한 경찰이고 아버지이고 남편이었다가 동성애자임을 고백하고 이혼한 뒤 전문 사기꾼으로 살았습니다. 사기꾼으로 벌인 그의 경력도 화려하지만 더 유명한 건 그가 체포된 이후입니다.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시치미 뚝 떼고 벌인 일련의 탈옥 행위 덕택에 그는 '후디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어요. 그의 탈옥시도는 절묘할 뿐만 아니라 로맨틱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감옥에서 만난 그의 애인 필립 모리스와 같이 있거나 그를 돕기 위해서였다니까요.

그 결과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좀 괴상합니다. 괴상한 사람의 이야기로 괴상한 영화를 만든 게 뭐가 그렇게 신기하냐고 물을 수 있을 텐데, 그렇지가 않아요. 전 러셀의 이야기를 디스커버리 채널의 다큐멘터리로 처음 접했는데, 그 때 저에게 러셀과 러셀의 이야기는 놀랍고 신기하지만 무척 진지하고 정상적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러셀의 전인생을 몽땅 짐 캐리식의 신경질적이고 과장된 코미디에 맞추어버렸어요. 그의 정체성 고민, 입양아로서의 갈등, 사랑, 범죄와 같은 것들은 모두 코미디화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짐 캐리 영화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 결과 나온 결과물은 엄청나게 신경질적입니다. 굳이 웃기지 않아도 될 재료로 웃겨야 하고 적당히 유머스러운 설정도 캐리식으로 과장해야 하니까요. 이 과장이 너무 지나쳐서 영화는 종종 진짜 짐 캐리 영화보다 짐 캐리 영화의 흉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캐리는 진지해지려면 얼마든지 진지해질 수 있는 배우죠. 전 캐리를 주인공으로 더 진지한 영화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러는 게 스티븐 제이 러셀이라는 남자의 진실을 그리는 더 정확한 방법이었다고 믿습니다.

영화는 동성애 소재를 다룰 때 가장 아슬아슬합니다. 영화는 러셀과 모리스의 사랑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영화 전체가 허물어질 테니까요. 아마 영화는 러셀이 동성애자라는 걸 놀리거나 비난할 생각도 없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이런 영화를 만들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영화가 동성애를 그리는 태도는 여전히 위험해보입니다. 늘 소재의 의미를 인식하고 그걸 극단적으로 과장하거나, 반대로 과장하지 않은 척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에, 농담인지 욕설인지 구별할 수 없는 묘한 장면들이 많아요. 짐 캐리의 연기도 마찬가지지고요. 이로 인해 만들어진 영화의 질감은 아주 독특하고 괴상한데, 이건 개성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신경질적인 결과물 안에 진짜 로맨스가 담겨져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가 의도인지 모르겠어요. 이건 스티븐 제이 러셀이라는 자연인의 삶이 그러한 인위적인 과장 속에서도 여전히 울림을 잃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10/06/23)

★★☆

기타등등
아직 미국에서는 개봉되지 않았습니다. 동성애를 다룬 주류 코미디 영화라는 게 핸디캡이었을까요.


감독: Glenn Ficarra, John Requa, 출연: Jim Carrey, Ewan McGregor, Leslie Mann, Rodrigo Santoro

IMDb http://www.imdb.com/title/tt104577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5945

    • 업데이트가 시작되니 너무 좋아요 :)
    • 이 영화 이야기를 듣고 저 인물에 대해서 좀 찾아봤는데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더라구요.. 영화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이야기의 자체의 매력을 다 담아내지 못했나봐요.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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