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밑 아리에티 Kari-gurashi no Arietti (2010)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의 [마루 밑 아리에티]의 원작은 영국 작가 메리 노튼의 판타지 동화 [마루 밑 바로우어즈]입니다. 인간들의 집 안에 은신처를 만들고 물건들을 '빌려가며' 살아가는 이 소인 가족의 이야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서구 사람들이 겪었던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가 반영되어 있고, 실제로 읽다보면 안네 프랑크의 일기와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몇 차례 영화와 텔레비전 물로 각색되었는데, 피터 휴이트가 감독한 97년 영화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쓴 영화의 각본에서 가장 이질적인 것은 배경입니다. 20세기 영국이 무대인 소설인데, 정작 영화의 무대는 21세기 현대 일본이지요. 이렇게 번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각본은 영화의 주인공인 클락 가족을 그대로 두고 있어요. 이들은 일본에 숨어 살고 있는 유럽계 가족인 겁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인들이 상상하는 스테레오타입화된 유럽계 가족이지요. 특히 과묵하고 멋없는 가부장인 아버지 팟은 그렇습니다. (휴이트 영화에서는 짐 브로드벤트가 이 역할을 했습니다. 이미지의 갭을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번안은 원작의 이야기에 추가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의 시골 저택에서 요양하며 수술을 기다리는 병약한 일본 소년 쇼와 어디서 왔는지 몰라도 하여간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미니어처 유럽 소녀인 아리에티의 관계는 분명 원작과는 다른 성격의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걸 그냥 무시해버려요. 클락 가족은 유럽에서 수입해온 작은 인형들처럼 그냥 일본식 서구취향의 반영인 것입니다. 하지만 인형과는 달리 소인들은 보다 명확한 사연이 있어야 하기에, 전 이들의 이야기가 끝까지 정리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 기존 지브리 영화의 역동성을 기대하시면 곤란합니다. 소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몇몇 판타지 액션 장면들이 있긴 합니다만,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환상적으로 비상하는 이전 영화들의 에너지와 속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반대로 영화는 우울하고 가라앉아 있습니다. 유머도 부족해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지브리의 각색자들은 앵글로 색슨 유머를 제대로 살리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아요. 단지 [하울]에서는 그를 보완할 에너지와 새 주제가 있었습니다. [아리에티]에는 그런 게 없어요.


여전히 [마루 밑 아리에티]는 기술적으로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눈에 특별히 걸리는 게 없어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지브리의 미래를 읽기는 어려워요. 저에게 이 영화는 그냥 건실하게만 보입니다. 다른 출구가 보이지 않아요. (10/08/28)



기타등등

축소세계에서 물의 표면장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영화입니다. 애니메이션이라 가능했던 거겠죠. 그렇다고 모든 물리법칙이 다 정확하게 그려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감독: Hiromasa Yonebayashi, 출연: Ryûnosuke Kamiki, Kirin Kiki, Mirai Shida, Tomokazu Miura, Shinobu Ôtake, Keiko Takeshita, 다른 제목: The Borrowers


IMDb http://www.imdb.com/title/tt1568921/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3301







    •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었는데 영국식 유머를 못 옮겼다는 말에 조금 실망이네요. 예전에 비비씨에서 미니시리즈로 만든 버전은 정말 좋았어요. 헐리우드 영화하고는 많이 다르죠. 이안 홈과 페넬로페 윌튼의 탄탄한 연기에다 아리에티 역의 배우도 잘 어울렸고, 여러 모로 원작에 충실했습니다.
    • ginger님/ 혹시 한국에서 [소인국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적이 있는 그 미니시리즈 맞나요? [천사들의 합창] 후속으로 방영됐던 것 같은데.. 최고로 좋아하는 '외화 미니시리즈'였거든요!
    • Neverland / 아니요. 그건 다른 이야기일 거에요. "The Return of the Antelope"를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제가 본 건 http://www.imdb.com/title/tt0105957/ 입니다.
    • 말씀해주신 제목으로 검색해보니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한 건 바로워즈가 아니라 걸리버 여행기를 모티프로 한 시리즈였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듀나님의 평을 읽어보니 지브리의 앞날이 조금 더 걱정되네요. 미야자키 감독께서는 오죽하실까..
    • 대부분 지브리 애니메이션들의 배경은 사실 그들이 생각하는 유럽의 이미지들의 조합이죠. 마녀배달부 키키에서 나온 마을이 스웨덴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도시들의 건축물들을 합쳐놓은 것처럼요. 이들은 애초에 그 이미지만 필요로 했을 뿐, 그 뒤엔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 특유의 무국적 성을 특징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죠. 이 사람들은 서구인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는 것 같아요. 아무리 걸리버 여행기에서 따왔다지만 전체 이용등급영화제목에 라퓨타라는 단어가 들어가있고, 포르코 롯소가 타는 사보이아 s21은 사실 복엽기입니다. 결정적으로 그들의 스튜디오 이름은 기블리가 아닌 지브리예요! 이런 사람들에게서 앵글로 색슨 유머를 기대하시는 건 좀 무리였다고 생각됩니다. 이 대부분의 아이디어들이 미야자키 하야오에게서 나왔으니 그의 진짜 은퇴 후에 지브리의 행보도 많이 궁금해집니다.
    • 앞의 영화들과 달리 하울과 아리에티는 원작이 분명하고, 아리에티의 경우는 고전이기까지 해서요. 원작의 존재와 개성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죠.
    • 에너지는 부족하긴 하지만, 주제의식이 없다는 생각은 안드네요. 타인의 생명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이에 대한 지고지순한 의지를 보인다는 점은 이 영화가 지브리 세계에 뿌리하고 있다는 걸 설명해주지 않을까요? 전반적으로 흐르는 우울한 정서 역시 원령공주의 미니어쳐버전 혹은 번외편 같은 느낌이에요.
    • 주제 의식이 없는 게 아니라 새 주제가 없다는 말이었죠. 원작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무언가가 없달까. 익숙한 게임을 반복한다는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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