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 미 인 Let Me In (2010)


1.

영화 개봉 몇 달 전부터 해머판 [렛 미 인]의 홍보사에서는 이 영화가 스웨덴판 [렛 미 인]의 리메이크가 아니라 원작소설에 바탕을 둔 오리지널 영화라는 내용의 홍보메일을 돌렸습니다. 아마 법적으로는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스웨덴판이 없었다면 해머판이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지 못했을 겁니다. 수많은 장면들이 비슷하고, 수많은 장면들이 원작소설 대신 영화의 길을 따르고 있습니다. 뱀파이어 소녀와 '아버지'의 관계처럼 소설을 버리고 영화가 암시한 길을 보다 확실하게 따라간 부분도 있지요. 그렇다면 굳이 리메이크가 아니라고 주장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2.

그렇다고 해머판의 감독 맷 리브스가 스웨덴판을 베끼면서 그냥 놀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해머판과 스웨덴판 사이에는 여러 차이가 존재합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미국의 로스 알라모스로 무대를 옮겼다는 것이겠죠. 같은 80년대라고 해도 스웨덴과 미국은 분위기부터 다릅니다. 아이들의 행동도 다르고 주변 문화적 환경도 다르지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남자주인공 오웬이 아이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이유입니다. 원작에서 오스카르가 따돌림과 괴롭힘의 대상이 된 건 그가 단지 쉬운 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리브스는 오웬이 여자아이처럼 예쁘장한 외모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여기에는 노골적인 호모포비아가 내재되어있고 이는 80년대 미국사회의 마초적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상대할 대상이 더 커진 겁니다. 


이를 조금 더 깊이 팠다면 재미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리브스는 주인공인 두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게 옳다고 본 것 같습니다. 스웨덴판에 많이 남아있던 주변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이 영화에는 거의 없습니다. 원작과 스웨덴 영화에서는 이웃의 몫이었던 게 영화에서는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는 경찰에게 넘어갔지요. 이 과정 중 원작과 스웨덴판의 애잔한 동화 느낌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대신 영화는 은근히 고풍스러운 필름 느와르를 닮아갑니다. 특히 클로이 모리츠의 애비는 거의 클래식한 팜므 파탈입니다. 홀로 버려진 길잃은 소녀와 같았던 리나 레안데르손의 이엘리와는 달리 애비는 보다 성숙하고 어른스럽습니다. 그만큼 이기적이고 잔인하기도 하죠. 해머판에서는 애비가 주변의 사람들을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이용한다는 느낌이 훨씬 강합니다. 이런 캐릭터의 변화는 원작과 다른 의미에서 흥미롭습니다.  


3.

전 기술적인 면에서 어느 정도 개선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최종 결과물을 보니 조금 덜 다듬어져 보이긴 해도 스웨덴판이 해머판에 꿀릴 이유는 없어보입니다. 이 정도의 이야기에서 특수분장과 CG의 차이가 그렇게 클 수 없기 때문이죠. 여전히 해머판이 조금 더 매끄럽긴 한데, 영화의 인상을 바꿀 정도는 아닙니다. 결국 배우 위주의 영화가 아닙니까.


더 잘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었던 부분들도 있습니다. 특히 후반부의 수영장 장면은 그렇습니다. 불필요한 편집 때문에 스웨덴판이 가지고 있었던 차갑고 시적인 서스펜스가 날아가버렸다고 할까요. '초대'의 의미가 밝혀지는 것 같은 결정적인 장면들도 스웨덴판이 더 좋습니다. 편집이나 연기가 더 맞아보여요. 리브스는 종종 상황을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게 설명하려 하는데, 그게 종종 분위기를 깨기도 합니다. 스토리의 흐름도 스웨덴판이 더 좋고요. 아마 제가 스웨덴판을 보지 않았다면 덜 신경쓰였겠지만요.


마이클 지아키노의 음악은 지나치게 감수성에 호소하는 스웨덴판보다 더 좋지만 그렇다고 호러음악의 걸작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4.

선택의 문제입니다. 해머판에는 리나 레안데르손의 환상적인 캐스팅이나 북유럽 동화의 차가운 느낌, 스웨덴 중하층계급과 아이들 사회의 정교한 묘사 같은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할리우드 영화의 깔끔한 느낌, 친근한 언어, 보다 노련한 연기와 좋은 특수효과를 원하신다면 해머판 [렛 미 인]은 좋은 선택입니다. 스웨덴판의 팬들도 이 영화를 그렇게 꺼릴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해머판이 나왔다고 해서 스웨덴판이 밀리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비슷해도 결국 둘은 다른 영화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이야기의 또다른 판인 것이죠. 그냥 연극 관객들이 다른 공연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이 두 영화를 모두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단지 전 아직도 맷 리브스가 스웨덴 영화를 보지 않고 자기만의 독자적인 [렛 미 인]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10/11/03)



기타등등

전 당연히 무대가 오레곤 같은 미국 북부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뉴 멕시코라도 로스 알라모스는 고도가 높아서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하더군요. 보도자료를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감독: Matt Reeves 출연: Kodi Smit-McPhee, Chloe Moretz, Richard Jenkins, Cara Buono, Elias Koteas, Sasha Barrese, Dylan Kenin

 

IMDb http://www.imdb.com/title/tt1228987/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9726

    • 별 기대는 안 하고 있었는데, 리뷰를 읽고 나서 보고 싶어지네요.
      지도를 찾아보니 고도가 7,000에서 10,000피트 사이니까 높긴 높군요.
    • 원작이나 스페인판이 도저히 설명안되는 오스카 캐스팅을 어떻게 납득시킬 생각인지 궁금했는데 그렇게 설정이 변했군요.
    • 렛미인이라는 영화를 헐리우드 감독이 찍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좀 더 설명적이고 좀 더 장르적으로 질러주는 부분들도 있고. 도입부 장면같은것도 별 필요 없는 서스펜스 구성이란 느낌이 들고, 간호사까지 불타 죽는 장면은 은근히 불편하더군요. 그리고 여주인공 애비의 움직임을 약간 골룸(?)같이 표현한 것도 그랬구요. 스웨덴판이 가지고 있는 서정성과 폭력성의 충돌이 빚어내는 시적인 아름다움은 많이 사라져 버린 느낌이에요.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건 영화의 색감이었어요. 스웨덴판은 저에게 깨끗한 하얀색의 이미지 그게 거의 전부였거든요. 이 영화는 저 위에 있는 사진의 색감인데, 일부러 피하려한 느낌이 역력하달까요...그렇다고 나쁜 영화는 아닌데, 스웨덴판의 팬들은 싫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와 제 친구는 그랬으니까요.

      근데 해머판이라는건 무슨뜻인가요? ^^;
    • 오래간만에 해머영화사에서 만든 뱀파이어 영화가 아닙니까!
    • 제가 과문해서 해머영화사가 전설적인 스튜디오라는걸 몰랐네요 ㅎ
    • 원래라면 원작의 감흥을 깨뜨릴까봐 안 볼 영화.

      하지만 힛걸이 나온다니 팬심으로 봐야죠.ㅎ
    • 안보려고 했는데...스웨덴판을 보고 좀 힘들어서...
      그래도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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