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2011)


얼마 전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아마도 아들의 죽음에 대해 보다 잘 알고 있을 법한 친구들을 찾아나섭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어지는 회상 장면을 통해, 입에 걸죽한 욕을 달고 다니면서 가장 약해보이는 애를 집단으로 구타하고 괴롭히는 남자애들을 보게 돼요. 이 때부터 전 공포에 떱니다. 앞으로 두 시간을 어떻게 버티지. 


하지만 [파수꾼]의 진행 방향은 예상과 조금 다릅니다. 도입부는 의도적으로 관객들을 기만하기 위해 디자인되었어요. 이 영화는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하다가 죽은 아들의 복수를 하는 아버지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증거로 도입부에서 구타당하던 아이는 멀쩡하게 살아 있어요. 그렇다면 죽은 아이는 누구이고 왜 죽은 걸까요.


영화는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사실 분명한 건 하나도 없죠. 우린 그 아이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모릅니다. 우린 그 죽음을 촉발한 사건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 모릅니다. 우린 단지 짐작할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보면 짐작이 영화 감상의 절반인 영화입니다.


이 혼란은 의도적입니다. [파수꾼]의 일차목적은 영화의 대상이 되는 십대 소년들의 권력관계가 겉보기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온전한 그림을 볼 수 없으며 모두가 가해자이며 피해자입니다. 이 배배 꼬인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꼭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지극히 한국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보편적이기도 하죠.


한없이 어둡고 황량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파수꾼]은 제가 처음에 상상했던 영화보다는 감상하기 수월합니다. 영화가 그리는 어두움은 적어도 깊이가 있으며 캐릭터들은 몰입과 감정이입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단순해보였던 역학관계의 복잡성과 통제불능성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견고해보였던 권력구조가 훨씬 허술하며 파괴되기 쉽다고 말하죠. 


개인적으로 전 [파수꾼]이 낙천적인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세계는 훨씬 졸렬하고 단순하며, 영화가 극복하고 파괴하려 했던 단순무식한 신문기사에 더 가까울 거예요. [파수꾼]은 예술작품, 그것도 훌륭한 예술 작품이며,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감상의 가치가 있는 무언가로 만들어냅니다. 아무리 어둡고 우울해보여도 이것은 세상을 이루는 저열한 재료를 가지고 만든 더 나은 꿈이에요. (11/02/12)


★★★☆


기타등등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걸레 씹은 것처럼 입이 지저분한 애들입니다. 일상어의 3분의 1이 욕이에요. 근데 그러면서도 '가르치다/가리키다', '다르다/틀리다'는 다들 정확하게 구별하더군요. 


감독: 윤성현, 출연: 이제훈, 서준영, 박정민, 조성하, 다른 제목: Bleak Night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Bleak_Night.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5378

    • 오. 서준영 오랜만이군요.
    • 남자애들 얼굴 구분이 어려워서 애를 좀 먹었어요. 이놈의 안면인식장애...
    • 어린 남자애들 대부분이 입에 걸레를 물고 다닌답니다.
      • 그건 하나도 안 이상하죠. 가르치다와 다르다를 정확하게 구별하는 게 신기한 거죠.
    • '가늘다/얇다'까지 통과한다면 금상첨화이겠네요.
    • 친구의 추천으로 지난 주말에 봤는데, 정말 아름다운 영화였어요.
      많이 공감합니다.

      "십대 소년들의 권력관계가 겉보기보다 훨씬 복잡하다"
      이들의 권력관계를 복잡하게 만든 것은 서로 간의 사랑이었죠.
      저는 이들이 서로 사랑했다고 생각해요.
      원래 애정은 권력관계의 주요 요소이기도 하고요.

      [하나와 앨리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보다 훨씬 더 좋았어요.
      훨씬 더 공감할 수 있었고, 훨씬 더 아름답고 잘 짜여진 얘기라고 생각해요.

      상대적으로 덜 언급되는데,
      재호역을 맡은 배제기의 연기도 매우 훌륭했어요.
      학교다닐 때 보던 아이들을 정말 잘 그려냈어요.
    • 이들의 권력관계를 복잡하게 만든 것은 서로 간의 사랑이었죠.2

      동감입니다.

      세 소년의 사랑이 느껴지니까 영화의 결론이 정말 아프게 다가오더군요.

      다만, 이제훈의 연기가 너무 좋아서 기태의 폭력성이 완화되는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만, 베키의 선택도 이해가 됩니다. 이 상태로 친구관계를 유지한다는건 스스로 '매맞는 아내'를 자초하는 꼴이니.

      개인적으로 제가 몇 년째 겪고 있는 상황과도 많이 유사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남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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