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 천둥의 신 Thor (2011)


마블 코믹스의 중요한 만화책들은 대부분 조금씩 맛을 봤지만, 아직 [토르]는 보지 못했습니다. 벌핀치의 책을 통해 북구 신화를 접하긴 했지만 그걸 원작이라고 생각하면 순진무구한 거죠. 저에게 토르는 [야행 Adventures in Babysitting]에 조연으로 나온 빈센트 도노프리오입니다. 다른 이미지로 떠오르지가 않아요. 고로 전 케네스 브래나의 영화 [토르: 천둥의 신]의 코믹북 설정에 얼마나 충실한지 모릅니다. 그건 그냥 건너 뛰렵니다.


영화만 본다면 [토르]는 일종의 성장물입니다. 오딘의 건방진 아들인 천둥의 신 토르는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 지구로 유배되는데, 그러는 동안 동생 로키가 신의 세계 아스가르드를 지배할 음모를 꾸밉니다. 신의 힘을 잃은 토르는 천문학자인 제인 포스터의 도움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그러는 동안 정신적으로 조금 성숙하게 됩니다.


여기 첫 번째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풀려면 어느 정도 내적 고뇌가 필수적인데, 이 영화의 토르에게는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부한 블론드 조크의 주인공 같죠. 아무리 노려봐도 내면의 갈등은 커녕 내면도 느껴지지가 않아요. 원래부터 흔해빠진 금발의 바이킹 같은 이미지라 차별화할 개성이 필요한데, 그런 것도 없으면서 갑자기 자기가 성숙해졌다고 우기고 있으니, 전 그냥 어리둥절했답니다.


캐릭터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이 영화의 각본은 간신히 뼈만 있어요. 성장담과 궁정 음모극, 로맨스, SF 기타등등... 다룰 것들이 엄청 많은데, 짧은 시간(러닝타임, 실제 사건 진행 시간 모두) 안에 구겨넣다 보니 대부분 그냥 언급만 하고 지나가는 수준입니다. 몇 개는, 특히 프롤로그 이후 사정을 설명하는 장황한 드라마는 잘라내고 그냥 가도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는 동안 성의 없는 로맨스 부분을 좀 채우는 게 낫지.


액션은 좀 이해가 안 됩니다. 아무래도 저의 상식은 디지털 시대에 할리우드에서 액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상식과 다른가 봅니다. 하여간 제 상식에 따르면 토르는 커다란 망치를 무기로 쓰는 무식한 아날로그 영웅이고, 이런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려면 그 무기의 타격감이 가장 중요합니다. 뭔가가 진짜로 부서지고 깨지는 느낌이 나야 맛이 산다는 거죠. 하지만 거의 모든 액션을 그린 스크린 앞에서 찍고 CG로 바른 이 영화의 액션에서는 그런 타격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모든 게 얄팍하고 가벼워요.


재미없는 건 아스가르드나 다른 세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의 신의 세계가 에리히 폰 데니켄 스타일의 SF 세계라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스가르드가 마치 온라인 게임의 CG 검투장 같은 곳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요. 전 팀 버튼 시절의 보 웰치 팬이지만, [토르]의 CG 세계엔 적응이 안 됩니다.


배우들에 대해서는 큰 불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습니다. 토르 역의 크리스 헴스워스는 배우로서 별 문제가 없지만 그래도 영화 내내 블론드 조크를 보는 기분이에요. 그나마 로키 역의 톰 히들스톤이 연기할 거리가 있고 또 잘 합니다. 차라리 로키가 주인공이었다면 전 감정이입을 했을 겁니다. 제레미 레너가 잠시 등장해서 놀랐는데, 호크아이 캐릭터인 모양이더군요. 활 집어드는 거 보고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전 그 정도로 예민하지는 않아서...


전 늘 조금씩 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케네스 브래나의 영화들을 좋아합니다. 심지어 다들 망작이라는 [프랑켄슈타인]에도 호의적이죠. 하지만 [토르]에는 제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별로 브래나의 영화처럼 보이지도 않아요. 아마 마블 코믹스 팬들이라면 이 영화에 조금 더 관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11/04/20)


★★


기타등등

엔드 크레딧 끝에 쿠키가 있습니다. [어벤저스] 떡밥도 많고요. 전 [어벤저스]로 마블 히어로들을 하나로 묶으려는 이런 시도가 개별 영화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지만, 팬들의 의견은 또 다르겠죠.

 

감독: Kenneth Branagh, 출연: Chris Hemsworth, Natalie Portman, Tom Hiddleston, Anthony Hopkins, Stellan Skarsgård, Rene Russo, Colm Feore, Idris Elba, Clark Gregg, Tadanobu Asano, Jaimie Alexander, Kat Dennings, Jeremy Renner


IMDb http://www.imdb.com/title/tt080036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9989

    • 첫 번째 시사회 반응은 인크레더블 헐크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수준이라고 합니다.
    • http://www.darkhorizons.com/news/20232/-thor-reviews-post-credits-scene?utm_source=twitterfeed&utm_medium=twitter
    • 여기저기서 호의적인 반응이 나오길래 기대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평이 갈리네요.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반전이 있으려나 하면서 계속 읽어내려가다 보니 별 두개 꽝.
    • 인크레더블 헐크 수준이면 만족스러울 것 같네요.
    • 반전은 별점에서? ㅎㅎ
      어쩐지 이것도 안 볼 수 없겠는데요ㅠ
    • 망치의 모양이 애매한건 북구신화의 설정 때문입니다. 묠니르(토르의 망치) 자체가 난쟁이가 제작을 할때 로키가 방해해서 제대로 완성되지 못하고 손잡이가 짧아진거니까요.

      물론 언제부터 할리우드가 신화에 그리 신경을 썼냐고 묻는다면 할말이 없습니다만, 만화 원작에서도 손잡이가 짧은 원핸드 해머니까요. 워낙 상징적인 무기라 바꾸기가 부담스러웠나보죠.
    • 전 인크레더블 헐크의 경우 좀 튀는 CG빼곤 마블스럽게 괜찮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서 그정도 된다면 만족스러울 것 같네요.
      근데 어중간한 팬 입장에서 봐도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가 질을 떨어뜨리는 것 맞는 것 같아요.
    • *오타* 헨스워스 -> 헴스워스
      저는 코믹스에서의 로키가 토르의 형이라고 이해하고 있었어요. 적자인 동생을 질투하는 주어온 자식이라는 설정이 더 그럴듯하거든요.
    • 오타 모두 고쳤습니다.
    • 글에서 망치의 모양을 말한게 아니라 타격감에 대해 써있네요...
      애니메이션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움직임을 표현하는 법이 있던데
      그런 원리적인 부분은 무시하거나 모르는채로
      표면적인 부분만 화려하면 됐다고 생각했나봅니다.
    • 영화 보는 내내 아스가르드는 무슨 온라인게임 장면 보는 느낌이었어요. 우주CG는 정말 황홀해서 3D로 한번 더 봐야겠다.. 생각했죠. 사람 많은 영화관에서 더 재밌을 작품이었어요.
    • 아 맞아요. 우주 CG는 정말 좋았어요. 나머지 말씀들 구구절절히 공감됩니다. ㅎㅎ 정말 내면을 느낄 수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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