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한나 Tyrannosaur (2011)


[디어 한나]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순전히 마권 때문에 돈을 잃어 화가 좀 났다는 이유로 기르던 개를 걷어차 죽인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화가 어느 정도 풀리자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뒤늦게 알아차리고 징징거리긴 하지만 이런 인물을 좋아하긴 힘들죠. 영화의 목표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 인물을 이해하고 심지어 동정할 수 있게 이끄는 것입니다. 개를 걷어차 죽이는 건 이 과정을 어렵게 만들기 위한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죠. 거의 서커스인 겁니다.

주인공 조셉은 도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나 있는 걸까요? 영화는 그에 대해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 원인을 정리해서 보여준다면 아마 그건 거짓말처럼 보일 겁니다. 그는 그냥 화가 나 있어요. 특별히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게 그의 천성인 겁니다. 하지만 그가 포함되어 있는 영국 노동자 계급 남성 문화가 그런 그의 천성을 부풀렸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습니다. 그의 주변을 보면 다들 참 암담하게 살거든요. 경제적 문제보다는 정신적인 황량함 때문에 붕괴되어가는 사람들이죠.

영화 초반에, 조셉은 우연히 뛰어들어간 기독교 자선 상점에서 일하는 한나라는 여자를 만납니다. 한나는 가게 구석에 숨어 어쩔 줄 몰라하는 조셉에 겁을 내는 대신 그를 위해 기도를 해줍니다. 참으로 기독교 영화스러운 장면이고, 관객들은 한나가 조셉에게 뭔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길 바랄 겁니다. 그리고 그 기대의 일부분은 먹힙니다. 조셉은 그 뒤로 한나의 주변을 맴돌고 그에게는 변화의 흔적이 보입니다. 여전히 불쾌한 남자지만 적어도 그는 자기가 얼마나 불쾌한지 알고 있고 보다 덜 불쾌한 무언가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는 관객들이 예측하는 방향으로 가려 하지 않습니다. 한나는 조셉을 변화시키지만, 결코 드라마의 촉매로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죠. 한나도 조셉만큼 문제가 많은 인물입니다. 경건한 신자이고 돈 잘 버는 남편과 함께 부자 동네에 살고 있지만,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고, 그 돈 잘 버는 남편은 폭력적인 의처증 환자입니다.

물론 영화는 조셉과 한나가 서로를 도우면서 새로운 길로 갈 수 있게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두 주인공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작가인 패디 콘시다인은 쉬운 길로 가려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상황이 얼마나 힘겹고 그들이 얼마나 바뀌기 힘든 인물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충분히 멜로드라마틱할 수 있지만 정작 영화는 놀랄 정도로 정확한 냉정함을 유지합니다.

배우들의 영화입니다. 감독인 패디 콘시다인이 배우이니, 이는 당연한 것이겠죠. 그는 피터 뮬란과 올리비아 콜먼이라는 두 배우에게서 무엇을 끌어낼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고, 영화의 각본과 연출도 그 흐름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영화는 그래도 낙관적인 편입니다. 더 좋은 길이 분명 있었겠지만, 그래도 관객들은 조셉과 한나가 앞으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조셉은 그래도 운 좋은 소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셉이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킨다고 해도 그가 속해 있는 삭막한 환경에서 아무런 자기 반성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대다수일 것이고, 이 이야기의 진짜 비극은 그들이 여전히 그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일 테니 말이죠. (12/03/20)

★★★☆

기타등등
1. 사람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개는 도대체 무슨 잘못이랍니까.

2. 왜 [티라노소어]라는 제목을 포기하고 보다 달짝지근한 [디어 한나]를 택했는지는 이해가 갑니다만, 그래도 전 원제가 좋습니다. 이렇게 영어 발음으로 적어 놓으면 티라노사우르스와 분리되어 검색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영어권에서보다 더 편리해요.

감독: Paddy Considine, 출연: Peter Mullan, Olivia Colman, Eddie Marsan, Paul Popplewell, Ned Dennehy, Samuel Bottomley, Sally Carman, Sian Breckin

IMDb http://www.imdb.com/title/tt120434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1214

    • 패디 콘시딘... 혹시 본 얼티메이텀에서 주인공 말 안듣고 냅다 뛰다가 총맞고 죽은 기자?
    • 네, 그 배우입니다. 천국의 아이들에서 아빠로 나오기도 하죠.
    • 천국의 아이들 들으니 이란영화? 생각했는데, 저 감독이 출연한 영화의 국내제목은 천사의 아이들이네요.
    • 맞아요. 그 영화는 원제로 기억합니다. 한국어 제목은 헛갈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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