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쉽 Battleship (2012)


영화 [배틀쉽]의 원작은 동명의 보드 게임입니다. 광고에서는 해즈보로 원작이라고 하고 있지만, 게임 자체는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죠. 종이와 연필 가지고 하는 빙고 게임 비슷한 걸 상상하시면 됩니다. 전략 게임보다는 운에 기대는 도박에 가까워요. 실제로 이 게임을 하는 빙고장도 꽤 있다고 합니다. 해즈브로는 여기에 약간의 손맛을 주는 장난감을 추가했을 뿐이죠.

이런 걸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니 황당하죠. 테트리스를 영화로 만드는 것과 같은 겁니다. 이 게임에는 캐릭터도 없고, 스토리도 없어요. 심지어 배도 없는 것 같습니다. 게임에서 배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 줄로 이어진 네모칸들에 불과해요. 해전이니, 전함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여기에 인간적인 재미를 넣기 위해 나중에 붙인 것으로, 이 네모칸들은 배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어도 상관없지요.

어처구니 없는 프로젝트지만 작가들은 재미있었을 겁니다. 이 정도면 썩 모험적인 도전이죠. 게임 규칙 이외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들어 내야 하니까요. 자유와 제한이 엉뚱한 곳에서 비율로 섞여 있는 겁니다.

작가들이 택한 것은 '외계인의 진주만 공습'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가 하와이 근방에서 해상 훈련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섯 대의 우주선이 지구로 날아옵니다. 위성과 충돌해 부서진 한 대는 홍콩으로 날아가 도시를 박살내고, 나머지 네 대는 하와이 해안 근처에 떨어집니다. 그 주변에는 반구 모양의 역장이 만들어지고 미군과 일본 자위대 소속의 전함 몇 척이 고립됩니다. 몇십 년 전에는 적군이었던 사람들이 힘을 합쳐 외계인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데, 그 방법이 어쩌다보니 [배틀쉽] 보드 게임을 닮았습니다.

물론 전혀 말이 안 됩니다. 시작부터 그렇죠. 작가들에 따르면 이 우주선들은 글리제 근접 항성 중 하나에서 왔답니다. 유명한 581이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과학자들이 2005년에 그 방향으로 메시지를 쏘아 보냈다니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시대 배경이 2012년이고 이들이 초광속 여행을 한다면 아마 7광년 안쪽에 있는 어느 별이겠죠. 그런 게 몇 개나 되지... 하여간 영화 속 과학자들은 이들이 지구에서 보낸 신호를 받고 왔다는데, 이게 말이 되나요. 지구로부터 70광년 안쪽에 있는 별에 외계문명이 있다면 그들은 그 신호와 상관없이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을 겁니다. 어딘가엔 루실 볼 팬 클럽까지 있을지도 몰라요. 그들이 1년 안쪽의 준비 기간만으로 지구까지 초광속 여행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고 있다면 전파신호 유무와 상관 없이 이미 우리를 발견했을 거고요. 그리고 늘 말하지만 그 정도 기술을 가졌다면 굳이 지구에 와서 전쟁을 하는 대신 다른 별에 가면 되지요.

이들이 지구에서 하는 짓도 괴상합니다. 홍콩에 떨어진 우주선은 일종의 통신우주선으로(극중 인물 중 하나는 '거대한 전화기'라고 표현합니다), 그들은 도착 즉시 지구와 고향 행성을 연결하는 통신망을 잃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그들의 세계에 신호를 쏘아올린 하와이의 통신장치를 이용해 통신망을 구축하려 합니다. 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물론 군대에서 통신망 구축은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7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세계에 전파를 이용해 신호를 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요? 지구의 기술은 아직 그 이상을 못하는데?

이들이 지구 군대와 벌이는 전쟁은 더 황당합니다. 게임에 맞추다보니 외계인들도, 지구인들도 서로의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림짐작으로 공격을 하는 상황이 이어지는데, 지구인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외계인들은 왜 그러는 겁니까. 초광속여행을 할 수 있는 문명의 기술은 다 어디다 놓고 왔나요. 도대체 지구 대포에 맞아 부서지는 우주선으로 어떻게 그 먼 길을 왔나요. 이런 건 적당히 봐주고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하지만 전략 게임이 소재인 영화가 이렇게 한참 봐주고 시작하면 심심하죠. 

여기에 맞추어 끼워넣은 인간드라마는 민망한 수준입니다. 난봉꾼 주인공이 형의 압력에 못 이겨 해군에 들어갔다가 쫓겨나기 직전에 외계인 침략에 맞서 싸우면서 자신을 증명한다는 내용이에요. 그저 편리하기만 한 이야기인데, 그게 또 징그럽게 길어요. 30분이 지나도 외계인들이 코빼기도 내밀지 않으니, 시계를 쳐다보며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얼마나 되는지 걱정하는 빈도수가 높아질 수밖에 없죠.

아무리 생각해도 계산착오가 심각한 영화입니다. [배틀쉽]이라는 게임 자체가 양쪽이 평등한 상황에서만 가능해요.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과 지구인의 대결로는 관객들이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가 없지요. 차라리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과거로 가 치밀한 전략 게임 영화를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물론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뒤를 잇는 다음 블록버스터를 노리는 해즈보로에선 그런 건 원치 않았겠죠. (12/04/06) 

★★

기타등등
1. [배틀쉽] 게임은 스마트폰 앱으로도 있습니다. 방법은 똑같죠. 솔직히 전 이게 무슨 재미인지 모르겠습니다. 상대방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면 조금 낫긴 해요. 하지만 머리 쓰는 재미를 즐기려면 그냥 지뢰찾기를 하죠. 

2. 외계인들이 너무 지구인스럽더군요. 거의 [스타 트렉] 수준입니다. 입고 있는 강화복은 [헤일로] 게임에서 빌어온 것 같고. 전 이상할 정도로 지구인들에게 직접 공격을 하지 않는 외계인의 태도가 조금 재미있었는데, 여기에 대한 설명은 없더라고요.

3. 외계인들을 박살내고 우쭐해 하는 주인공을 보면 어리둥절해지는 게, 그럼 외계인들은 그 뒤로 더 이상 우주선을 보내지 않을 거라는 건가요? 왜 저렇게 자신만만하지?

4. 영화 끝나고 상당히 긴 쿠키가 있습니다.

감독: Peter Berg, 출연: Taylor Kitsch, Brooklyn Decker, Liam Neeson, Tadanobu Asano, Alexander Skarsgård, Rihanna, Peter MacNicol, Hamish Linklater

IMDb http://www.imdb.com/title/tt144012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7128

    • 뭐 아사노 타다노부가 다 나오고 난리여 ;;; 그건 그렇고, 언급하신대로 테트리스 갤럭시판 게임을 어거지로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 ^ [지구 중심으로의 여행]에다가 [트론] 을 이종교배시킨 것 같은 게 나올 것 같은데...
    • 아사노 타다노부 비중이 상당히 큽니다. 미국과 일본이 힘을 합쳐 어쩌구가 중요한 설정이라.

      전 이미 테트리스 영화를 본 거 같습니다.

      http://youtu.be/VE_1KlWFJyA

      영화 후반을 보면 조금 우주전함 야마토스럽기도 해요.
    • 이노무 영화 스킵하려고 했는데, 아사노 타다노부 때문에 봐야겠군요...어쩔수 없이;;
    • <레스트리스>에서 주인공 소년이 카미카제 유령 청년과 배틀쉽 게임을 하던 장면이 생각나네요 :)
    • 홍보카피는 하스브로가 아니라 트랜스포머라는 단어를 노출시키기 위한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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