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던트 Yi ngoi (2009)


정보서의 [엑시던트]는 제가 처음 봤을 때 리뷰할 기회를 놓친 영화인데, 그 뒤로 자꾸 이 영화를 언급할 기회가 생기더군요. 결국 얼마 전에 다시 한 번 봤습니다.

4인조 살인청부업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브레인, 나이 지긋한 아저씨, 뚱보, 젊은 여자로 구성된 이 팀은 루브 골드버그 머신을 연상시키는 복잡한 연쇄작용으로 사고를 조작해서 살인을 저지릅니다. 이렇게 고생을 사서 하는 것보다 더 간단한 방법이 있겠지만, 너무 따지지는 말기로 합시다. 그렇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아니에요.

당연한 일이지만 두 번째 살인 때 사고가 발생합니다. 청부받은 살인은 무사히 마쳤는데, 그 뒤 갑작스럽게 교통사고가 일어나 멤버 중 한 명이 목숨을 잃고 만 거죠. 그는 죽기 전에 브레인에게 묻습니다. "저거 사고였어?"

그건 브레인도 궁금합니다. 그는 우연의 일치나 사고처럼 보이는 모든 일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거든요. 여기서 우리는 교훈을 얻습니다. 음모론에 가장 쉽게 빠질 수 있는 사람은 음모가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영화는 [미션 임파서블] 1편과 비슷한 방향으로 갈 것 같습니다. 남은 멤버들을 결집해서 그들을 공격한 보이지 않는 적이나 내부의 적을 응징해야죠. 그리고 실제로 브레인이 하려고 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브레인의 의도대로 흐르지 않습니다. 일단 관객들은 브레인의 판단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 수 없어요. 그가 맞을 수도 있지만 순전한 사고일 수도 있죠. 아니면 둘 다 아닌 어떤 것이거나. 이렇게 혼란스럽다보니, 영화는 [미션 임파서블]의 세계를 떠나 우연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안토니오니의 [블로우 업]이나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세계로 넘어갑니다. 안 그럴 것 같았던 장르영화가 갑자기 예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영화의 해석 가능성은 넓어져 갑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음모론에 대한 고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다르게 보면 이는 영화를 만드는 행위와 이 장르를 통해 세상을 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죠. 아마 이것은 신과 신을 모방하는 예술가의 관계에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1시간 반도 되지 않는 짧은 영화치고는 주제가 묵직하죠.

[모터웨이]와 마찬가지로 [엑시던트]도 일단은 제작사 밀키웨이의 개성 안에 속해 있습니다. 냉정한 프로페셔널들의 이야기를 다룬, 바닥에 건조하고 조금은 괴상한 시적 분위기가 흐르는 우울한 느와르죠. [엑시던트]를 처음 보았을 때는 두기봉과 구별되는 정보서만의 개성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모터웨이]를 본 뒤로는 그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더군요. 아마 제가 읽었던 건 얼마 전에 작고한 각본가 사도금원의 개성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다시 한 번 명복을. (12/11/05)

★★★

기타등등
그런데 [모터웨이]는 개봉 안 하나요? 부천에서 반응이 좋아서 [나이트폴]보다는 빨리 개봉할 줄 알았는데.

감독: Pou-Soi Cheang, 출연: Louis Koo, Richie Ren, Shui-Fan Fung, Michelle Ye, Suet Lam, Alexander Chan, Yuqin Han, 다른 제목: Accident, 의외

IMDb http://www.imdb.com/title/tt120251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0611

    •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에서 개봉한(그리고 개봉하지 않은) 홍콩영화를 보며 든 생각인데, 한국에서 홍콩영화를 수입하는 업자들에게는 좀 더 널리 먹힐 만한 영화는 버리고 보다 후진 영화만을 사서 소개하는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올드팬의 프레임 안에서 팔 수 있는 영화(주로 배우가 기준)만 찾다보니 생긴 일이 아닌가 싶은데, 그 결과 홍콩영화 죽었다는 편견은 갈수록 심해지고, 그럴수록 옛날 홍콩영화가 좋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다시 또 수입사는…….
    • 이런 영화를 볼 때면 홍콩의 무뚝뚝하거나 수줍은 아저씨들(영화 만드는 사람들)하고 어쩌면 이렇게도 정서가 잘 통할까 신기할 정도예요. 주인공의 행동에 늦게라도 어쩔 수 없었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이 사람의 현재의 고통과 진실을 알고 난 뒤 새롭게 마주할 고통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져서 마지막 장면에서 오히려 마음이 놓일 정도였거든요. 또 한 사람이 같은 길을 걷게 될까 마음이 쓰이기는 했지만요.

      주인공의 귀갓길 따라가는 장면이 제일 좋았어요. 가장 슬프기도 했지만.

      +) 중국어권이 다 그런 편이기는 하지만 홍콩영화인 인명표기는 심하게 헷갈리는 것 같아요. 우리식 한자 읽기랑 보통화식 표기는 성이랑 이름이랑 나란히 두면 대충 감이라도 잡겠는데(예외는 있지만), 광둥어를 영어식으로 성이랑 이름 순서를 바꾸고 심지어 편의를 위해 이름 중 한 글자만 표기한 걸 우리말로 옮겨 놓으면 같은 이름이라는 걸 알아챌 수조차 없거든요. 이 영화의 감독 정보서는 보통화식 표기인 정바오루이도 연결짓기 어려운데 소이청까지 가면 사전정보 없이 동일인이란 걸 누가 알겠어요. 딱 소 씨 성에 이름이 이청 같은데.
    • [그는 우연의 일치나 사고처럼 보이는 모든 일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거든요. 여기서 우리는 교훈을 얻습니다. 음모론에 가장 쉽게 빠질 수 있는 사람은 음모가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어제자 힐링캠프가 생각나네요.
      타블로가 나와서 자신은 과거에 프로필란에 음모론이라고 쓸 정도로 음모론 마니아였다고,
      달착륙 안 믿었다고.

      그러니깐 자기를 의심하는 타진요가 어떤 생각으로 의심하기 시작한지 자기도 아니깐 그거 때문에 또 미치는 줄 알았다고.
      지금은 음모론을 더 이상 안 믿는다죠. 자신이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고나서는. 달착륙도 이제는 믿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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