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밍턴 Bloomington (2010)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넵튠 26]이라는 컬트 SF 시리즈의 주연이었던 재키는 캘리포니아를 떠나 블루밍턴에 있는 대학으로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홈 스쿨로 교육받아온 어린이 연예인이었던 재키에게 대학은 낯설고 조금은 무서운 곳이죠. 하지만 그런 낯설음을 제대로 음미하기도 전에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납니다. 그 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캐서린과 사랑에 빠져 버린 거죠.

[블루밍턴]은 요새 LGBT 커뮤니티 안에서 만들어지는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우리가 동성애 이야기를 다루고 있긴 한데, 진짜 중요한 건 다른 거거든?"식 태도를 취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말이 맞아요. 이 영화에서 재키와 캐서린이 동성애 관계라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들이 사제간이란 것과 (이건 [러빙 애너벨]의 영역이기도 하죠), 재키가 언제든지 할리우드로 돌아갈 수 있는 유명인사라는 것입니다.

영화의 도입부는 가볍고 경쾌합니다. 아무리 [제복의 처녀]에 대한 감상적인 기억을 갖고 있다고 해도, 전 기본적으로 사제 사이의 이런 관계는 옳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에, 둘 중 누구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광속 스토리 전개가 조금 불편하기도 했어요. 아무리 쿨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불편하고 불안하고 그래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캐서린은 영화 시작한 지 15분도 안 되어 재키에게 수작을 걸고, 재키는 1분도 고민 않고 캐서린의 침대 속으로 들어가버려요. 보면서 이게 뭔가, 했습니다. 

그래도 이들의 로맨스는 꽤 재미있습니다. 일단 캐릭터가 제대로 잡혔어요. 할리우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조숙한 작은 어른이 된 재키와 유혹적이고 재미있지만 무책임하고 가벼운 캐서린은 화학반응이 좋은 커플입니다. 둘이 같이 있으면 이런 종류의 로맨스 영화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달콤한 즐거움이 상당해요. 적어도 러닝타임 50분을 넘기기 전까지는요.

영화는 재키에게 [냅튠 26]의 영화판 주연 자리가 들어오면서 위기를 맞습니다. 혼란에 빠진 건 엉뚱하게도 재키가 아니라 캐서린입니다. 여기서 캐서린의 고민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지만 그래도 좀 유치하고 경박한 종류입니다. 물론 이전처럼 재미있게 놀 시간은 부족하겠죠. 관계가 끊길 수도 있겠죠. 여자친구가 다시 유명인사가 되었으니 아우팅 걱정도 해야겠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캐서린이 하는 짓을 보면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일단 이건 학생과 데이트할 때 당연해 고려해야 할 일이고, 일단 자기가 여자들, 그것도 어린 학생들과만 데이트 한다는 걸 학교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데, 아우팅이 그렇게까지 무서운 걸까요. 물론 학생들과 데이트하는 건 여전히 나쁜 거고 캐서린도 그걸 먼저 두려워했겠지만.

영화는 이 문제들을 지나치게 급하게 정리합니다. 50분을 넘겨서야 위기가 시작되는데, 러닝 타임은 83분이 조금 넘으니까요. 캐서린이 후반에 그렇게 유치해보이는 것도 위기를 정리할 시간이 짧아서일 수도 있죠. 캐릭터들이 조금 깊이있는 고민을 할 수 있도록 20분 정도의 시간만 추가했어도 영화는 훨씬 좋아졌을 거예요.

전 단지 많이들 싫어하는 결말에 대해서는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그냥 사실적이죠. 막 할리우드 대작 주연자리를 딴 십대소녀에게 무작정 커밍아웃을 요구하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 정도면 새드 엔딩이 아니에요. 최선의 영화 결말은 아니었지만, 얼마든지 이후의 이야기를 낙천적인 방향으로 상상할 수 있을 정도는 되지요. 하긴 위에 올린 사진 찾으려고 인터넷을 뒤져봤는데, 이미 팬픽 작가들이 속편을 쓰고 있더군요. (12/11/19) 

★★☆

기타등등
이 영화는 은근슬쩍 제 판타지 하나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이게 SF와 관련된 것이라는 건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말씀드릴 수 없고.

감독: Fernanda Cardoso, 배우: Allison McAtee, Sarah Stouffer, Katherine Ann McGregor, Ray Zupp, J. Blakemore, Erika Heidewald, Chelsea Rogers, Patrick Mullen, Steven Durgarn, John Dreher, Jim Dougherty

IMDb http://www.imdb.com/title/tt140900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5700

    • 컬트 SF 시리즈의 주연으로 유명 재키는 → "유명한 재키는"을 의도하셨겠죠?
    • Bloomington에 있는 대학이라는 것은 Indiana University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거기 참 예쁜 동네인데 실제로 그 곳에서 촬영했을까요.
    • 사제 로맨스는 학생은 어느정도 어른스러운 면이 있어야하고 선생은 어느정도 애같은 면이 있어야 커플성립이 되는거 같아요.
    • 음 아우팅이 문제가 아니라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학생, 그것도 학부생을 만나는 게 들통나면 아마 학교에서 짤릴텐데... 학교 사람들이 다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 교직을 유지하고 있다니 의아하군요.
    • “Bloomington” was entirely shot in Indiana in Carmel, Indianapolis and Columbus. But no, not in the actual Bloomington.

      실제 블루밍턴에서는 안 찍었대요.
    • 하긴 학생들만 알고 교수들은 모를 수도 있죠. 하지만 태평스럽게 학생들을 자기 집에 끌어들여왔으면서 막판에 그러면 좀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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