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구두를 사야해 Atarashii kutsu wo kawanakucha (2012)


키타가와 에리코, 이와이 슌지, 나카야마 미호는 몇 년 전부터 파리를 무대로 한 영화를 한 편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계획의 중심엔 나카야마 미호가 몇 년 전부터 파리에 살고 있다는 간단한 이유가 있었겠죠. 이미 프랑스에서 살면서 문화와 언어에 익숙해진 일본 배우가 한 명 있으니 그걸 써먹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키타가와 에리코의 영화 [새 구두를 사야해]입니다. 원래는 조금 더 일찍 만들 계획이었다지만 스케줄 문제 때문에 계속 연기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는 동안 키타가와 에리코는 감독 데뷔작으로 [하프웨이]를 찍었고요.

영화는 여동생에게 억지로 끌려 파리에 온 사진작가 센을 주인공으로 시작됩니다. 동생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오빠를 길에 버려두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버리고, 센은 예약한 호텔 이름도 모른 채 센 강가를 방황하는 신세가 되지요. 이 때 우연히 마주친 게 파리에 살면서 일본어 무가지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는 아오이입니다. 둘은 이후로 며칠 동안 파리 시내와 아오이의 집을 오가며 관광을 하고 사진을 찍고 요리를 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온스타일이나 홈스토리 같은 채널에서 낼 법한 여행이나 라이프스타일 프로그램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입니다. 나른하고 정갈하고 예쁜 분위기 속에서 예쁜 사람들이 뭔가 예쁜 곳을 돌아 다니면서 예쁜 일을 하는. 빈정거리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 겁니다. 전 이게 특별히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이런 건 영화보다는 텔레비전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긴 하죠.

영화는 링클레어의 [비포 선라이즈]와 많이 닮기도 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이국의 도시에서 한없이 수다를 떠는 내용이죠. 단지 여기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두 주인공은 동등했고 두 사람의 수다는 진짜로 듣는 재미가 있었죠. [새 구두를 사야해]는 둘 다 아닙니다. 일단 이 영화의 대사나 에피소드는 파리라는 도시를 이용하기 위한 의무방어의 느낌이 강해요. 두 주인공이 속을 털어놓는 후반부에도 대화라기보다는 서로를 향한 신세 한탄에 가깝고요.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무게 중심은 전적으로 아오이 쪽에 기울고 있습니다. 처음엔 센이 주인공인 것 같지만, 그는 결국 아오이의 드라마를 만들어주기 위한 예쁘장한 소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아오이가 진짜 주인공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부터 영화는 궤도에 오릅니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젊다고 할 수 없지만 아직 로맨스와 삶에 대한 희망이 있는 중년 프리마돈나의 아리아입니다. 영화의 모든 빛은 나카야마 미호의 연기에 집중됩니다. 영화의 진짜 감정이 폭발하는 것도 이 부분이고요. 여기서부터는 가볍기 짝이 없었던 영화에도 무게가 생기기 시작하며 뻔한 파리의 관광명소들도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엄청난 영화는 아닙니다. 예고편에서 예상했을 법한 예쁜 관광지 영화죠. 하지만 그 안에는 드문드문 고개를 드는 예상 외의 드라마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게 엄청나게 새롭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영화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건 사실이죠.  (13/04/17)

★★★

기타등등
[파리 5구의 여인]에 이어 이 영화를 봤어요. 같은 도시인데도 두 영화의 파리는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파리 5구의 여인]의 파리 쪽이 현실 세계의 파리와 더 가깝겠지요. [새 구두를 사야해]의 파리는 어쩔 수 없이 관광지니까.

감독: Eriko Kitagawa, 배우: Miho Nakayama, Osamu Mukai, Mirei Kiritani, Gô Ayano, Amanda Plummer, 다른 제목: I Have to Buy New Shoes

IMDb http://www.imdb.com/title/tt2330723/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8417

    • 셋이서 처음 모여서 함께 작품을 만들자 한 건 영화가 만들어지기 6년 전이라는데, 키타가와 에리코가 99년부터 10년간 심한 통증을 수반하는 난치병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더군요. 병원에서 회의를 하는 것도 새로웠을 거라며 낮은 톤으로 농담하는 이와이 슌지랑, 이상하게 금세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조용한 분위기의 나카야마 미호 옆에서 연신 밝게 떠들며 크게 웃던 키타가와 에리코, 셋의 대화를 본 적이 있어요. 진행자 없이 출연자들끼리 이야기 나누는 방송이 있거든요. 키타가와 에리코의 전설적인 작품들을 못 봤고, 90년대 거 하나 몇 년 전에 쓴 거 하나 정도 봤는데 정서적으로 저와 어긋난다고 느꼈었어요. 그런데 리뷰를 보니 어쩐지 끌리네요. 결정적으로 동생이랑 아마도 그 애인으로 나오는 배우를 예쁘게 보는 중이라서요. 예쁜 사람들이 예쁘게 찍어 준 영화에 나온다니 말이에요.
    • "어머 이건 봐야해!"

      실망할 때 하더라도 봐야겠네요.

      근데 최근 호타루의 빛 극장판도 그렇고 일본인들이 유럽에서 뭘 찍으면 다소 끔찍해지는 건 감안해야하는 거 같아요. 그래도 기타가와 에리코니 뭐.
    • 중간에 오타가 있어요. [돌다 다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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