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미드나잇 Before Midnight (2013)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시리즈가 재미있는 건, 매 영화마다 비슷한 상황을 반복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코 같은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18년의 세월을 따라가면서 주인공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갑니다. 그리고 30대와 40대의 어른들은 결코 첫 영화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던 20대 젊은이들과 같이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죠.

[비포 미드나잇]의 세 편의 [비포] 영화들 중 가장 과격한 도약을 한 작품입니다.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에서 둘은 아직 서로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막연한 연인들이었죠. 하지만 [비포 미드나잇]에서 그런 것 따위는 오래 전에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둘은 [비포 선셋]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결혼했고 쌍둥이 자매도 두었습니다. 잘 지내고 있긴 하지만 앞의 두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설렘은 없습니다.

비엔나와 파리에 이어 이번 영화의 무대가 되는 곳은 그리스의 카르다밀리라는 해변 마을입니다. 셀린과 제시는 아이들과 함께 이곳에 있는 작가들의 커뮤니티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습니다.  막 미국으로 돌려보낸 제시와 전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때문에 약간의 말다툼이 오가긴 하지만, 이들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는 금슬 좋은 부부입니다. 게다가 이들은 작가 친구들이 선물로 준 호텔 방에서 아이들의 방해 없이 로맨틱한 밤을 보낼 계획입니다.

영화의 대화는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넓은 팔레트에서 벌어집니다. 이들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가 친구들과 함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대화의 상당 부분은 주인공 부부가 이들 사이에 있을 때 진행됩니다. 이들은 결혼에 대해, 사랑에 대해, 인류 문명의 미래에 대해, 그밖의 기타 주제에 대해 신나는 대화를 주고 받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의 즐거운 분위기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호텔 방까지 가는 저녁 산책에서도 이어집니다.

그러다 영화는 어느 순간 갑자기 이빨을 드러냅니다. 지금까지 서로에 대한 애정과 휴가의 분위기 기타등등 속에 숨어 있던 현실 세계의 불만이 터져나오는 겁니다. 그 뒤로 관객들은 두 사람의 날이 선 부부싸움 속에 초대받습니다. 이런 건 예상 못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대화를 지탱하는 것은 앞의 두 편과 같은 종류의 서스펜스입니다. "과연 이 둘은 끝에 가서 섹스를 할 것인가?" 그리고 놀랍게도 이 영화는 세 편 중 그 서스펜스가 가장 강렬한 작품입니다.

앞의 두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의 부부싸움도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됩니다. 흐름도 유려하지만 지난 18년 동안 세 사람이 책임지며 쌓아왔던 캐릭터의 무게도 여전하죠. 40대의 셀린과 제시는 특정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거나 조작된 인물이 아닙니다. 그들을 연기하는 두 배우와 함께 자연스럽게 성장한 인물들이죠. 영화 속에서 이런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3부작으로 홍보되고 있는 영화이고, [비포 미드나잇]이면 이들 이야기의 만족스러운 결말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이렇게 끝난다고 해도,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이대로 끝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앞으로도 그들의 대화는 그들의 작은 우주 속에서 계속 이어지겠지요. 그것들이 꼭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해도요. 운이 좋아 9년 뒤에 [비포 던] 같은 영화가 만들어져 그들의 대화에 다시 참여할 수 있다면 그냥 좋은 거고요. (13/05/20)

★★★☆

기타등등
18년이라니 놀랍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여기엔 [비포 선라이즈]나 [비포 선셋]을 실시간으로 따라잡지 못한 관객들도 은근히 많겠습니다.

감독: Richard Linklater, 배우: Julie Delpy, Ethan Hawke, Jennifer Prior, Charlotte Prior, Seamus Davey-Fitzpatrick, Xenia Kalogeropoulou, Walter Lassally, Ariane Labed, Yiannis Papadopoulos, Athina Rachel Tsangari

IMDb http://www.imdb.com/title/tt220941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2309

    • 전 [비포 선셋]에 대해 듣고 나서야 [비포 선라이즈]를 봤지요.
    • 전 비포 선라이즈 때는 초등학생, 선셋 때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둘다 대학생일 때 봤습니다. 어제 내용을 알고서 부부싸움이라니 실망이라고 성급한 글을 썼는데 듀나님 리뷰를 읽고 나니 뭔가 안심이 돼요.
    • 선라이즈 선셋 모두 보았는데 누구와 어디서 보았는지는 도저히 기억이 안나요
      시간이 그렇게 흘렀군요....
      아 슬퍼라
    • 18년이라니..비포선셋 선라이즈 다 봤는데 전 다 기억에 남아요..
      마저 봐야죠~
    • 선라이즈 시절엔 맥라이언 작품들에 빠져있을때라 약간 무시했었죠
      이시리즈가 저에게 인식된건 선셋부터구요 9년후에도 시리즈가 나왔으면 좋겠군요
    • 언젠가 세편을 몰아봐도 재미있겠네요.
    • 앞으로 이 프로젝트가 세번은 더 나와주었으면 하네요
    • 의외로 속편도 가끔씩 괜찮은 것들이 나온다는 공식을 입증하는 영화라고 할까요. 다시 전편을 보고 싶게도 만들고...

영화 리뷰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849 8일째 매미 Yôkame no semi (2011) 3 10,588 05-27
848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2012) 2 12,018 05-27
847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Stories We Tell (2012) 9,462 05-26
846 브레이킹 더 걸즈 Breaking the Girls (2012) 9,890 05-25
845 뜨거운 안녕 (2013) 11,003 05-22
844 백악관 최후의 날 Olympus Has Fallen (2013) 1 10,454 05-21
843 잠 못 드는 밤 (2012) 6,911 05-21
열람 비포 미드나잇 Before Midnight (2013) 8 20,927 05-20
841 스타트렉 다크니스 Star Trek Into Darkness (2013) 3 21,012 05-18
840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2013) 5 17,074 05-17
839 환상속의 그대 (2013) 11,040 05-15
838 크루즈 패밀리 The Croods (2013) 3 12,925 05-10
837 미나 문방구 (2013) 11,936 05-10
836 몽타주 (2012) 2 11,909 05-09
835 고령화 가족 (2013) 5 19,931 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