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2013)


양우석의 [변호인]은 40년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익숙한 법정 멜로드라마의 스토리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돈밖에 모르는 속물 변호사가 우연한 기회에 부당하게 체포된 피고인을 변호하게 되는데 그러는 동안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죠. 프랭크 카프라와 같은 감독이 장엄한 최후 변론을 클라이맥스 삼아 연출할 법한 이야기입니다.

[변호인]이 이런 영화들과 차별점이 있다면, 영화가 그리는 사건이 한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특별한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무 변호사로 일하던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그 특별한 사건은 1981년에 일어났던 부림사건이죠. 그렇다면 송우석의 모델은 당시 변호인 중 한 명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일 수밖에 없고요.

실제로 영화는 노무현이라는 실존 인물과 부림 사건이라는 실화에서 많은 것들을 그대로 빌려오고 있습니다. 송우석의 경력, 학력, 변론은 모두 실제 인물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죠. 단지 영화는 이들을 멜로드라마의 친숙한 공식 안에 넣어 이야기를 보다 수월하게 풀어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전기 영화의 경직성은 없어요. 송강호도 굳이 노무현 성대모사 같은 것에 발목이 잡히는 대신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연기를 하고 있고 송우석과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 묘사도 훨씬 융통성 있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물론 모델의 무게를 고려해보면 이런 태도는 조금 이상해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땅의 경직된 정치상황과 영화의 의미를 더해보면 영화가 취한 전술은 이치에 맞습니다. 여기서 정말로 이상한 것은 실존 인물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영화의 전술이 아니라 그런 전술을 선택하게 한 이 나라의 정치적 분위기지요.

기왕 이렇게 시작했다면 조금 더 픽션을 허용해서 주인공 송우석과 영화 속 이야기에 더 많은 자유를 주는 것이 어땠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그게 실존인물에서 영향을 받은 허구의 인물의 장점이죠. 구체적인 한 사람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보다 보편적인 인물이 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후반으로 가면 영화가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위인전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특별한 개인의 특별한 행동과 그에 따른 특별한 반응으로 제한되는 것이죠.

[변호인]은 극장 개봉으로 완성되는 영화가 아닙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냥 영화로만 남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에요. 이야기만 따진다면 거의 순박할 정도로 우직한 영화지만 그 뒤에 따르는 반박과 옹호, 그에 따른 정치적 행동은 그렇게 단순할 수도 없고 단순해서도 안 됩니다. 앞으로 이 영화가 겪을 일들이 어떻게 흐를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합니다. (13/12/12)

★★★

기타등등
임시완의 팬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습니다. 영화 내내 고문당한다고 하니까 많이들 좋아하더군요.


감독: 양우석, 배우: 송강호, 김영애, 오달수, 곽도원, 임시완, 송영창, 정원중, 조민기, 다른 제목: The Attorney

IMDb http://www.imdb.com/title/tt340414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1901

    • 소심하게 오타 한가지 짚어드립니다.

      두번째 줄에서,
      "피고"는 민사소송에서 사용하는 용어이고, 형사소송에서 재판을 받는 사람은 "피고인"이라고 합니다.
    • 저는 이 영화와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실제사건이라는 점 때문에 오히려 집중하는 데 방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노무현 대통령 한 번 떠올리지 않고 송강호만 머리에 남았을 것인데 말입니다. 임시완은 너무 이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래서 몰입하는 데 좀 더 많이 방해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영화적으로는 꽤 쳐주고싶은 영화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진한 영화를 만나는 것이 늘상 있는 일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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