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소설] 폭죽

망하고 나자 버릴 게 많았다. 책 스무 박스, 옷장 속의 옷들, 여러 가구들을 다 버려야 했다. 많은 짐을 버린 탓에 1톤 트럭의 짐칸이 허전했고, 때문에 무안하기도 했다. 트럭 기사와 괜한 쓸데없는 말들을 하기 싫어서였던가, 아니면 그저 감상적이고 싶어서였던가, 나는 굳이 트럭 뒷칸에 앉아서 가로등 빛이 내리는 거리을 바라보면서 강물처럼, 자꾸 뒤돌아 보는 강물처럼 밤거리를 흘러갔다.

문득 집에 두고 온 것이 떠올랐다. 실로폰. 내 아이의 웃음이 묻어있는 유일한 물건. 아저씨, 다시 돌아가주세요. 나는 신발장 속에 들어있던, 실로폰을 들고 나와 트럭에 올라탔다. 같은 길인데도 아까보다 트럭이 덜컹대더니, 대충 얹어 놓았던 비닐 봉지가 하나 떨어져서 그 안에 들어있는 머그컵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화가 났다. 하지만 이 마당에 머그컵 따위. 우스운 노릇이었다. 나는 트럭을 세우고 조수석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아저씨, 새만금으로 가주세요. 네, 변산반도요. 돈은 더 얹어드리죠. 기사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별 수 없다는, 그러다가 나쁠 것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여기에다 짐을 내린다고요? 이렇게 캄캄한데? 누가 오긴 와요? 트럭 기사는 황당해하며 웃었다. 나는 새만금 전망대 한 구석에 짐들을 내려놓았다. 지갑 속에 들어있는 돈 전부를 주면서도 미안하다고 몇 차례나 말해야 했다. 트럭이 떠난 후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세네 명의 사람들이 폭죽을 쐈다. 결코 볼만하지는 않은 폭죽, 그저 폭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기 때문에 밤 하늘에 잠깐 불꽃을 내비춰주는 그런 폭죽이 몇 차례 주위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폭죽이 끝난 후에 이어지는 견디기 어려운 적막. 폭죽이 마치 적막 위에 적막을 쌓는 도구라도 되는 것 같았다.

사흘간 잠을 자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미친듯이 잠이 쏟아졌다. 나는 매트리스 깔고 이불을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바람이 이불을 들췄고 얼굴이 반쯤 드러났다. 밤공기에 귀가 얼얼했지만 이불을 덮어 쓰기가 귀찮았다. 손가락도 움직이기 싫었다. 그렇게 거지가 된 첫날밤, 나는 말장난을 하듯 중얼거렸다. 다 이런 거지. 그리고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는 거지. 나 정도면 부유한 거지. 그리고 미칠 듯이 웃어댔다. 하지만 웃는 것도 마음 속에서 이루어질 뿐이었다. 밤공기에 표정이 얼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곧 깊은 잠에 들었다. 잠결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자꾸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적막이 무섭게 쌓이고 있었다. 끝없는 적막이.

 

 

 

 

 

 

 

    • 이사 축하 기념으로 '이사'라는 제목으로 쓰다가, '폭죽'으로 바뀌고, 도무지 기념하기 위해서 썼다고 볼 수 없는...

      망했네요. 이사 첫날부터...
    • 하하. 이사 기념으로 쓴 내용이에요? ㅋㅋㅋㅋ 이사->(기념하자)->폭죽->(무릇 엽편에는 역설과 반어가 짱)->거지로 이어지는 것 같은 사고 흐름이 재밌네요. 결과적으로 이사 -> 거지로 연결이 되어 버렸어요. 푸하하.
      소설 자체는 재밌게 읽었습니다.
    • 가리온/ 아픈 부분을 콕콕 찌르시네요 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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