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인랑(Jin-roh, 1999)

 

 

옛날에 외톨이 소녀가 있어, 엄마와 10년이나 만나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소녀에게 철로 된 갑옷을 입혀놓고선 언제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옷이 닮아 없어지면, 틀림없이 엄마와 만날 수 있게 될 거야."

소녀는 필사적으로 옷을 벽에 문질러 닳게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옷을 닳아 없애고, 우유와 빵, 그리고 치즈와 버터를 갖고 엄마를 만나러 간 소녀는 숲속에 늑대를 만났습니다.

늑대는 소녀에게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우유와 빵, 거기에 치즈와 버터를 조금 갖고 있다고 대답하자, 늑대는 내게도 조금 나누어 주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소녀는 엄마에게 줄 선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늑대는 핀의 길과 가시밭길 중에서 어느 쪽으로 갈 것을 물어보았습니다. 소녀가 핀의 길로 가겠다고 대답하자, 늑대는 가시밭길로 뛰어가 소녀의 엄마를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이윽고 소녀가 집에 도착했습니다.

"엄마, 문 열어줘요."

"문을 열고 들어오려무나, 잠겨있지 않단다."

... 늑대는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문은 열리지 않아, 소녀는 구멍을 통해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엄마 배가 고파요."

"찬장에 고기가 있으니까 먹으렴."

그것은 늑대가 죽인 엄마의 살이었습니다.

굴뚝 위에 커다란 고양이가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먹고 있는 건 엄마의 살이란다."

"엄마, 굴뚝 위에 고양이가 있는데, 내가 먹고 있는 게 엄마의 살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거짓말일게 뻔하잖니. 그런 고양이에게는 나막신을 던져주렴."

고기를 먹은 소녀는 목이 말랐습니다.

"엄마, 나 목이 말라요."

"냄비에 포도주가 있으니 마시려무나."

그러자 조그만 새가 날아와 갑자기 말했습니다.

"네가 마시고 있는 것은 엄마의 피란다. 엄마의 피를 마시고 있는 거야."

"엄마 굴뚝에 조가만 새가 있어서, 내가 엄마의 피를 마시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런 새에게는 두건을 던져 주거라."

살을 먹고 피를 마신 소녀는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어쩐지 잠이 와요."

"이쪽으로 와서 조금 쉬려무나."

소녀가 옷을 벗고 침대에 다가가자, 엄마는 두건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왜 이렇게 귀가 커요?"

" 그건 네 목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란다."

"엄마, 왜 이렇게 눈이 커요?"

"그건 네 모습을 잘 보기 위해서란다."

"엄마 왜 이렇게 손톱이 길어요?"

"이게 없으면 너를 꼭 안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엄마, 왜 이렇게 입이 커요?"

"그래야 널 한 입에 잡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늑대는 이렇게 말하고서 소녀를 한입에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빨간 두건 이야기-


인랑은 오시이 마모루의 '견랑전설'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으로 작중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견랑전설의 내용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작중 세계관에서 일본은 제 2차 세계대전 패전후 독일 군정(실제 역사와 다른 점인데, 여기에서 일본은 연합군에 가담했지만 주축군이 승리하며 독일 군정 치하로 나옵니다. 왜 미국이 아닌 독일이냐는 질문에 '독일 군복과 무기가 멋지니까!-ㅁ-!'라고 답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의 지배를 받으며 고도성장을 이루어가지만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빈부격차 발생과 사회개혁 요구 등으로 내홍을 겪으며 전국에서 시위가 잇따르는 상황입니다. 특히 강성 투쟁세력인 '섹트'(적군파를 모티브로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는 소규모 군대급의 화력을 보유한 채 곳곳에서 시위 선동과 테러행위를 벌이며 악명을 떨칩니다. 이런 섹트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수도경 특기대, 일명 '켈베로스'이며 그 중에서도 프로텍트 기어와 중기관총으로 무장한 돌입소대는 특기대의 상징이 됩니다. 특기대와 섹트는 도심에서 시가전 수준의 전투도 불사하며 끊임없이 서로의 피를 또다른 피로 씻어내는 숙적이 되죠. 민간인의 피해조차 괘념치 않는 특기대의 잔혹한 진압방식은  여론으로부터 비난받고 수도경과 자치경의 갈등을 불러일으키지만(수도경은 독일군정이 전후 혼란을 빠르게 수습하고자 주로 군 출신에서 차출해 만든 조직이고 자치경은 민간정부로 정권 이양 뒤 정상적인 공채로 선발된 경찰조직입니다. 특히 특기대 고위인물 중에는 전범급 군인도 상당수 포함되어있었죠.) 섹트의 테러행위에 맞선다는 명목 하에 정당화됩니다. 


하지만 토사구팽이라 했던가요? 특기대의 활약과 온건화된 사회분위기로 인해 섹트는 점점 힘을 잃어가는데, 이는 곧 특기대의 위기로도 이어지게 됩니다. 강성한 섹트에 맞서기 위해서는 군대나 다름없는 화력을 보유한(심지어 자체적으로 장갑차와 항공소대까지 운영) 특기대가 꼭 필요했지만, 섹트가 사라진 뒤 특기대는 그대로 놔두기에 너무 위험한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그렇게 처절하게 싸워왔던 특기대와 섹트였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존립을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적대적 공생관계였던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특기대의 상급조직인 수도경에서조차 앞으로 조직통합을 앞두고 자치경과 화해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특기대를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며, 특기대는 점차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견랑전설은 이런 배경 아래 특기대와 섹트의 싸움, 특기대를 모함하여 해체시키려는 수도경 공안부의 음모, 오히려 그를 역이용하여 수도경의 약점을 잡고 조직을 보전하려는 특기대 정보부의 역공작 등이 뒤얽힌, 꽤나 하드보일드한 정치물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면... 갖은 노력에도 결국 해체가 결정된 특기대는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오히려 전 병력을 동원 봉기하여 경찰청을 무장점거한 채 최후의 전투를 벌입니다.(이 때 진압을 맡은 부대가 특기대로부터 훈련받은 자위대의 프로텍트 기어 시범부대라는 것도 아이러니죠. 파수견으로부터 길러진 군견이 첫 임무로 그 파수견을 사냥하는 상황...) 궁지에 몰린 개가 끝내 주인의 발뒤꿈치를 물어뜯은 거죠. 이 쿠테타에서 특기대는 전원이 사살되지만 토리베 소이치로, 토도메 코이치, 와시오 미도리 3인만은 특기대장의 명에 따라 탈출하게 되며 이후의 이야기는 실사영화 '지옥의 파수견'과 '붉은 안경'으로 연결됩니다.(참고로 이 두 영화는 저예산인데다가 전문배우가 아닌 성우의 대거 연기 기용, 오시이 마모루의 실험적 구성까지 어우러지며 참 이해하기 어려운 괴작이 됩니다;;)


음 소개하려는 작품은 인랑인데 앞에 다른 말이 너무 길었군요;; 하지만 견랑전설의 세계관을 알아두면 인랑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주저리주저리 했습니다. 인랑은 일종의 외전으로 볼 수 있는데, 견랑전설의 에피소드를 거의 그대로 차용한 것도 있고, 각색한 부분도 있고, 순수한 오리지널 구성도 뒤섞여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계관의 정사로 볼 수 있는 견랑전설과 서로 맞지 않는 부분들도 있지만, 설명이 불친절한 세계관만 이해하면 켈베로스 사가의 다른 작품들과 상관없이 독립된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인랑에서 또 하나의 특이점은 원작자 오시이 마모루가 2선으로 후퇴하고 히로유키가 감독으로 나서며 오시이 마모루와는 또다른 결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오시이 마모루 자신이 워낙 외곬수다보니 본인 스스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 그려내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 연출을 고사했다고 하는데, 이런 점에서 히로유키 감독기용은 신의 한수로 보입니다. 이미 공각기동대에서 오시이 마모루와 작업한 경험이 있는 히로유키는 오시이 마모루가 짜놓은 세계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견랑전설의 하드보일드한 세계를 인랑에서 훨씬 개인적인 관점으로, 관계의 측면으로 풀어냅니다. 견랑전설이 피도 눈물도 없는 조직간의 이야기라면, 인랑은 그 조직에 속해있으면서 고뇌하는 개인의 이야기가 된 거죠. 


글 먼 처음에 인용한 빨간 두건 이야기(사실 이건 동화가 아니라 애들한테 함부로 나다니지 말라고 겁주기 위해 만들어진 잔혹한 이야기죠.)는 인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로 볼 수 있습니다. 작중에서도 주인공인 케이와 후세를 통해 두번이나 인용되고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켈베로스'(그리스 신화속 지옥문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파수견)라 불리는 특기대의 엘리트 대원인 후세는 늑대로, 섹트의 일원으로 폭탄을 배달하는 임무을 하지만 후세의 눈앞에서 자폭하는 일명 '빨간 두건' 소녀와 그 언니 케이는 빨간두건으로 치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냉혹한 포식자처럼 보였던 후세조차 죄책감과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며, 자신이 속한 조직 앞에서는 지독히 무력한 개인에 불과하다는 면이 드러날 때 이 해석은 흔들리게 됩니다. 인랑에서 조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심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탄 배달 임무를 맡으며 섹트에 이용되었던 소녀, 후세를 이용해 스캔들을 일으키려는 공안의 공작에 이용된 케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역공작을 벌이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쏴야 했던 후세까지 이들은 모두 조직을 거역할 수도, 그들의 손으로 벗어날 수도 없었던 무력한 '빨간 두건'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이대로 멀리 떠나버리자는 케이의 애원을 후세가 거부한 순간(뭐 애초에 도망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운명은 이미 비극적인 파국을 향해 내닫고 있었던 거죠. 인랑은 시종일관 쓸쓸합니다. 처음부터 비극이 예정되었던 후세와 케이의 사랑도, 그들의 짧은 도피 중 지나가는 거리의 모습도, 심지어 액션 장면에서조차도 그 과도한 잔혹함은 통쾌함이 아닌 음울함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쓸쓸함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정말 뛰어난 작품입니다. 오시이 마모루의 세계관은 언제나처럼 탄탄하고, 감독을 맡은 히로유키는 오시이 마모루적이면서도 한층 섬세한 접근을 보여줍니다. 장인정신으로 유명한(...요즘 하는 거 보면 그나마 퇴색된 듯 하지만...ㅠ_ㅠ) 프로덕션 IG에서 정밀한 고증(심지어 등장하는 총기의 총염과 발사음까지 직접 사격해보며 테스트;;) 하에 일체의 CG를 지양하고 수작업으로 완성한 실사체 작화는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 최후의 역작으로 불릴만한 퀄리티를 뿜어내며, (지금은 칸노 요코의 남편으로 더 유명한)하지메 미조구치의 음악 또한 탁월합니다. 


지금 일본애니메이션에서는 참 찾아보기 힘든 묵직함을 가진 작품입니다. 그리고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그냥 대중성 노리고 라이트하게 가거나 오덕들 노리고 미소녀 벗겨먹는게 태반이죠...-_-), 이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계 최후의 역작 중 하나로 남게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부족한 리뷰 읽고 혹시 흥미가 동하셨다면 꼭 한번 보시길 바래요...=_=/ 

    • 잘 읽었습니다 ㅜㅜ 너무 어렸을 때 보면서 대체 이건 뭔 내용이징?! 하고 봤던 기억이 나는군요 ㅎㅎㅎ
      • 고등학교 때 처음 봤을 때는 작화와 음악에 압도되었지만 내용 자체는 좀 지루하다고 느꼈는데, 나중에 좀 더 나이도 먹고, 견랑전설을 통해 세계관을 인지한 상태에서 다시 보니 정말 명작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오시이 마모루를 정말 좋아하지만 그의 영화에서 늘상 등장하는 거창한 철학적 장광설은 좀 아쉬웠는데, 오시이 마모루가 2선으로 후퇴하고 그의 세계관 속에서 다른 감독이 연출한 작품들(인랑이나 페트레이버 : 폐기물 제 13호)은 오히려 색다른 맛이 있어 좋은 듯 합니다.
    • 오랜만에 공각기동대-인랑을 찾아보게 하는 리뷰 잘 읽었어요.

      SSS 이후로는 잠잠해서 아쉬워요.
      • 근데 공각기동대는 주요인물인 모토코에 이어 바트까지 퇴장한 상황이라 리붓되지 않는 한 더 이상 시리즈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걱정되더군요;; 공안 9과를 벗어나 아예 외전 형식으로 가는 것도 흥미있을 것 같긴 하네요. 시로우 마시무네의 원작은 꽤 유쾌한 분위기의 전형적인 사이버 펑크물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이걸 90년대 이후 가장 무거운 분위기의 프랜차이즈로 뒤바꿔버린 오시이 마모루의 위력...=_=;;
        • S.S.S 후반에 소령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나요. 물론 인원수가 크게 늘어나버려서 전과 같은 소수정예(늘어나봤자 10여명도 안되지만)의 분위기는 흐려졌겠지만요...전 리부트도 좋지만, 공안9과 설립무렵의 프리퀄을 노리고 있어요(아직도). 시로우 판 코믹에서의 소령은
          거의 하루히에 가까웠던..
          • 오오 그랬군요. 발표 전 "소령은 현재 공안 9과 소속이 아니며 모종의 이유로 실종 상태", "공안 9과는 현재 토구사가 이끌고 있음"이란 유출된 정보만 보고 사실 SSS를 패스했던지라;; 답글 읽고 정보검색해보니까 다시 모이는군요. 주말에 공각기동대나 다시 챙겨보고 SSS도 볼 수 있으면 봐야겠네요.
            • SSS끝자락에 소령과 바트가 복귀하는 모양새였던거 같은데... 전 다 필요없고 빨리 타치코마 복귀시켰으면 좋겠어요ㅠ.ㅠ
              • 사실 타치코마야말로 오시이 마모루판과 시로우 마시무네 원작을 구분짓는(오시이 마모루판에서 타치코마가 안 나온 게 원작팬들로부터 가장 까이는 부분이라더군요. 마모루가 너무 심각하게 바꿔버린 모토코 캐릭터보다도 더 까인다고 함;;), 그리고 TV판이 오시이 마모루의 영향력을 배제하진 않되 큰 틀에서는 원작을 계승한다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캐릭터죠. 모토코든 바트든 전신 의체화는 했을지언정 어쨌든 머릿속에 인간의 뇌가 들어있는데 비해(뭐 이것도 자기가 자기 뇌를 들여다볼 수 없으니 확신은 못하지만) 타치코마는 순수한 기계의 전뇌가 생명체 수준의 사고와 개별화된 '인격'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던진다는 점에서, 공각기동대 원작의 주제의식을 반영하는 진주인공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치코마는 귀엽잖아요!!>_<!!
                • 나름 정보를 드렸으니 이참에 SAC 시리즈도 리뷰해주시길 바라요. 여기는 Djuna님이 공각리뷰를 안해서인지 아예 담론 자체가 잘 안생기는듯...-_-...다른 커뮤니티 없어요.
    • 제1회 부산국제 판타스틱애니메이션 영화제(헥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납니다. 제목도 내용도 미공개인 영화를 보기 위해 밤까지 기다렸었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사실 케르베로스 사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기에 그나마 헷갈리지 않고 볼 수 있었지, 완전히 몰랐다면 제가 뭘 봤었는지도 몰랐을 겁니다.
      • 타이틀롤 때 3분 정도 자막으로만 상황설명하더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뜨악스럽긴 하죠;; 뭐 그 세계관 자세히 설명하려면 타이틀 롤로 런닝타임 절반을 까먹을 상황이고 또 히로유키 감독이 그리려고 했던 것은 켈베로스 세계관 자체라기보다 그 안에 소속된 개인들이었으니 굳이 세계관을 설명하는데 공들이지 않았다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꽤나 불친절한 작품이란 것도 사실.

        어쩌면 인랑을 처음 볼 때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부닥뜨렸기에 그 압도적인 오프닝 장면과 공포스럽기까지 한 프로텍트 기어의 위압감이 더욱 생생했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 제가 소장하고 있는 몇 안되는 DVD네요 ㅎㅎ. 관계성의 이야기가 좋았어요. 조직에 있을수 밖에 없는, 조직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 이야기라는게 흔히 볼수 있는 소재는 아니었고 애니로 만들어져서 더 좋았다고 생각해요. 특기대 장비가 밀리터리적 즐거움도 주고요. 공각기동대에서 모토코가 던지는 실존에 대한 화두가 재밌었다면 인랑도 즐기기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견랑전설 말미에서 특기대의 몰락을 지켜보며 ,그 도저히 거역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강대한 조직조차 상급조직 앞에서는 토사구팽당할 운명의 소모품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씁쓸해지죠. 사실 따지고 보면 이 특기대라는 게 우리나라에선 구사대나, 더 비약하면 광주민주항쟁 때 계엄군 같은 자들인데 조직의 명령에 따라 감정없는 기계처럼 움직일 수 밖에 없었던 그들 개인을 그리면서도 '그들도 먹고 살려고 한 일이야.', '어쩔 수 없었잖아' 따위로 무턱대고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 인랑의 주인공은 "집단이 아니면 살수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거 아니었나요? 먹고산다기보단 조직의 일원이라는거, 자기가 몸담은 조직 그 자체가 자기 아이덴티티고 정체성인 뭐 그런... "어쩔수 없었"다는게 그냥 보통의 푸념이 아닌 정말 그 말 그대로인... 전 그렇게 느꼈어요. 미화는 없었지만 그건 주인공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어쩔수 없음" 그 자체를 미화하는 느낌은 있지만요. 견랑전설은 시각이 달라서 님 말이 좀 더 가깝긴 하다고 생각해요.
          • 인랑은 제목 그대로 인간 늑대죠. 늑대의 탈을 쓴 인간(늑대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쓴 늑대(인간늑대)... 조직에 속해있기 때문에 인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조직을 벗어나면 한 마리 들개에 불과한 자... 저도 후세에 대한 생각엔 동의합니다. 후세는 알거 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 자기합리화하는 인물이 아니라 정말로 특기대에밖에 속할 곳이 없는 인물이죠. 그런데 인랑에서는 이런 후세를 중심에 두고 그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도 무조건 그를 감싸지만은 않는 느낌이 있어 좀 독특한 것 같아요. 분명히 그에게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피할 수 없는 죄의 대가를 치룬다는 느낌도 들거든요.(그냥 제 개인적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딱히 어떤 장면이라 찍어말할 수도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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