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바낭] 일본 라멘을 특별히 좋아하진 않지만. '담뽀뽀' 잡담입니다

 - 1985년작입니다. 런닝 타임은 1시간 54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하지만 저 흰 옷 입은 남자는 라멘을 먹지 않는다구요!! 라는 생트집을 잡아 보구요.)

 - 폭우가 쏟아지는 밤을 트럭 한 대가 달립니다. 중년 아저씨는 운전을 하고 젊은이 하나가 책을 읽어주는데 하필 그 내용이 라멘 장인이 젊은이에게 라멘 먹는 법을 가르치는 거에요. 그래서 배가 고파지고, 특히 라멘에 꽂힌 두 사람은 허름한 라멘집 하나를 발견하고 차를 세우는데... 젊은 애 엄마가 혼자 하는 그 가게의 라멘 맛은 상당히 별로였지만, 하필 그때 진상질을 시작한 손님 하나를 처리해주다가 사장님과 인연을 맺게 된 두 사람은 결국 사장님의 가게를 훌륭한 진짜 라멘을 파는 가게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조력해 주기로 결심합니다!

(떠돌이 최강 카우보이와 마을 여성의 로맨스! 는 둘째 치고 넘나 한국식 그 자체인 야키니쿠 차림이 시선을 강탈합니다.)

 - 20세기. 일본 영화가 아직 한국에선 금지였던 시절에 대학가에서 종종 열리던 일본 영화 상영회들이 있었죠. 일반 학생들의 아마추어 동아리들이다 보니 불법 복제 VHS 테이프나 가져다가 프로젝터로 어중간한 사이즈 스크린에 쏘아 주는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영화 잡지에서 제목만 봐 오던 영화들을 실제로, 극장 분위기(!)에서 볼 수 있다!! 라는 메리트가 있어서 열심히 보러 다니고 그랬어요. 그 시절에 처음으로 접했던 영화였구요. 근데 대략 기억에 남은 건 참 변태스럽다(...)는 것과 일본 라면은 저렇게 생겼구나. 무슨 맛일지 궁금하다. 라는 생각 정도. 재밌게 보긴 했었지만 뭐 30년이 넘은 일이니까요. ㅋㅋㅋ 그래서 언젠가 다시 보고 싶다... 하다가 이렇게 왓챠에 올라오니 감사한 맘으로 봤습니다. 근데 수십 년만에 이게 무슨 일인가 했더니 작년에 한국 극장에서 개봉을 했었나 보네요. 전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역시 감사할 뿐입니다.

(저 라멘 마스터 할배의 라멘 먹는 법 강의는 솔직히 말도 안 되고 매우 웃깁니다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음식을 즐기는 데 그렇게 진심인 이 나라 사람들 문화가 대충 납득 되면서 안 웃겨지는 효과가...)

 - 당시에 보면서도 이 영화 참 이상해! 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보니 그 이상함의 포인트가 조금 정리가 되더라구요.

 일단 라면집 컨설팅해서 인기 맛집으로 키워주는 이야기인데 장르가 웨스턴이라는 거. 떠돌이 재야 고수가 우연히 들른 마을에서 마을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해 주고 바람처럼 떠나가는... 뭐 그런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왔는데 배경이 일본이고 주제가 총싸움이 아닌 라면이니까 웃기구요. 다시 보니 우리 주인공 아저씨가 대놓고 카우보이 모자를 마치 본인 모발인 것처럼 늘상 쓰고 다니며 '이거 웨스턴이라고!'라고 시위를 하니 옛날에 볼 땐 왜 이런 생각을 못했나 하고 피식 웃었습니다.

 또 하나는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스토리와 아무 상관 없는 에피소드들이죠. 당시엔 참으로 경건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뭔가 다 의미가 있고 연결이 되는 걸 텐데 도대체 뭘까!!?' 라는 식으로 봐서 오히려 머리만 복잡해지고 즐기지를 못했는데 지금 아무 생각 없이 다시 보니 웃기고 즐겁습니다. 특히 그 스파게티 먹는 법 배우는 여성들 이야기나 막내 사원의 파인 다이닝 주문 에피소드 같은 게 웃겼구요. 엄마의 마지막 음식 에피소드는 뭔가 무시무시하긴 한데 그래도 재미가 있었고... 뭐 그러는 와중에 정말 괴상했던 건 아무래도,

 야쿠쇼 코지의 이야기들이었죠. ㅋㅋㅋ 역시 메인 줄거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살짝 연결되기는 하니 중요한 부분일 텐데 정말 시종일관 '헨타이스럽다'의 절정을 보여주잖아요. 뭐 식욕과 성욕은 오래 전부터 늘 단골로 연결되는 소재이니 자연스럽긴 한데 그게 참으로 변태스러운 상황들을 정말로 천연덕스럽게 보여주니 오히려 변태 같단 생각은 접고 그냥 받아들이게 되는.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코지 아저씨 완전 상남자셨어... 근데 헨타이 상남자! ㅋㅋㅋㅋㅋ)

(중간중간 들어가는 토막 에피소드들도 다 웃기고 귀엽고 그렇습니다. 풍자적인 의미들을 생각해 보는 재미도 있구요.)

 - 쌩뚱맞게도. 개인적으로 가장 감탄했던 건 촬영이었습니다. 오래 된 일본 영화들을 보면서 '아니 그 시절에 어떻게!!!?' 하며 감탄하는 것도 제겐 참 식상할 정도로 익숙한 패턴인데 또 다시 감탄할 수밖에 없었어요. 분명 이야기는 가벼운 톤의 코미디로 가는데 영상미가 어째 이렇죠. 정적인 장면들의 미장센이나 역동적인 장면들의 카메라 움직임이나 다 그냥 '우왕 고퀄! 어떻게 저 시절에?'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구요. 요즘 일본 영화판이 꽤 오랫 동안 침체되었다가 다시 살아 나고 있다는 얘기들도 있고 그런데요. 이미 40여년 전에 이런 영화를 뽑아내던 바닥이 어떻게 그렇게 침체 될 수 있었나... 라는 쓸 데 없는 생각을 해 가며 보고 있었습니다. 헌데 이젠 남의 나라 걱정할 때가 아니죠. 한국 영화야 힘을 내... (쿨럭;)

(저 뱅글뱅글 어묵(?)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는 쓸 데 없는 수확이 있었습니다. 나루토 마키, 혹은 나루토 어묵이라 부른다네요. 저만 몰랐나요!!!)

(그리고 주인공네 라멘의 비주얼은 이러합니다. 요즘 한국의 인기 맛집들과 비교할 때 참 소박한 구성과 비주얼인데, 극중에서도 그걸 포인트로 삼아요. 근본에 충실!)

 - 다 보고 나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이 영화가 이후의 일본 요리 만화, 영화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주인공이 사장님네 라면을 컨설팅 해 주고 제대로 된 맛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같은 게 되게 익숙한 공식으로 흘러가거든요.

 요즘 한국에선 뭔가 힙하고 럭셔리한 고오급 음식 같은 포지션이 되어 버린 일본 라멘의 원래 모습, 그러니까 원래는 이게 그저 서민들의 소울 푸드라는 거... 를 일본 원조 영화에서 접하니 신선하면서 세상 참 재밌단 생각을 하기도 했구요. 저 정직하게 생긴 차슈의 모습을 보세요. 요즘 한국의 라멘집에서 저렇게 생긴 차슈 내놓으면 일본 라멘을 모르는 집이라고 욕 먹습니다. ㅋㅋㅋㅋ

 그리고 뭣보다, 이야기가 정말로 순수하고 긍정적이에요. 정말 아무 대가도 바라지도, 받지도 않으면서 사장님을 위해 헌신하는 귀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대체 이게 말이 돼?'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아 버릴 정도. 세상 참 살만하구나! 라고 생각하며 피식피식 웃게 됩니다. 요즘에 이런 기분으로 볼 수 있는 영화들 많지 않죠.

(나트륨이라는 것이 폭발을 한다!!! 하지만 나도 먹고 싶다!!!!!)

 - 그래서 이 묘한 영화를 뭐라고 정리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일단 참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즐거운 코미디 영화입니다. 뭔가 깔깔 폭소하게 만드는 영화는 아니지만 내내 피식피식 웃고, 안 웃을 때도 미소를 머금고 보게 되는 그런 부담 없이 즐거운 영화구요. 코지 아저씨 장면은 빼고

 보면서 일본인들 식문화에 대해 생각해 봐도 좋고, 음식과 삶, 음식과 성, 인간의 본능과 뭐 기타 등등... 에 대해 다양하고 깊이 있는 고찰을 해 보면 더욱 좋겠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건 참 보기 좋게, 개성 넘치면서도 부담 없도록 잘 뽑아낸 이야기라는 겁니다. 그러니 40년 묵은 아주 유명한 일본 영화! 라는 부담감 같은 건 접어 두고 한 번 틀어서 보시면 좋겠다. 뭐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는 아주 잘 봤구요. 그러합니다. 끝!


 +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야쿠쇼 코지의 흰 양복 남자가 굴 소녀를 만나는 장면이었는데요. 어... 어라라라라 이래도 되는 거야? 라고 경악하며 봤는데. 영화 다 보고 나서 확인해 보니 당시에 이미 20살을 넘긴 분이었더라구요. 너무 어려 보여서 진심 당황했습니다. ㅋㅋㅋ 덧붙여서 그 배우님은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 중이시구요. 암튼 저처럼 놀란 사람들이 많았는지 영어로 검색하면 담뽀뽀 오이스터걸... 이 자동 완성 중 하나로 뜹니다. ㅋㅋㅋ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만... 줄거리가 워낙 전형적이니 매우 과격하게, 짧게 정리해 버리겠습니다.

 그래서 트럭 운전 콤비는 사장님네 가게로 매일 출근 도장을 찍으며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고 돕기 시작합니다. 가게 사장으로서 가져야 할 마인드, 접객 스킬, 주방에서의 동선과 움직임... 등등을 웃기는 특훈들을 곁들여 가르치구요. 나중엔 식당에서 우연히 알게 된 미식가 갑부님의 지원으로 요리사도 한 분 조력자로 추가되고. 카우보이 아저씨의 인맥으로 노숙자들의 미식왕(?) 아저씨도 등장하구요. 그리고 이 사람들이 국물을 가르치고, 제면을 가르치고, 또 잘 나가는 가게들에 가서 비결도 훔쳐 오고... 하면서 차츰차츰 성장해 나가는 사장님이구요.

 나중엔 카우보이와 사장님 사이에 살짝 러브라인도 움트고 그럽니다만. 우리 카우보이님이 또 은근 귀여운 순정남이라 선을 넘지는 못해요. 그러다 이걸 보고 질투 나서 달려든 도입부의 진상 손님(알고 보니 사장님에게 연심을 품은 소꿉친구였답니다)과 일 대 일로 주먹다짐을 하고는 동료가 되어서 가게 리모델링까지 싸아악 다 해 버리죠. 이때 가게 이름을 '담뽀뽀'로 바꾸는데, 이게 사장님의 본명인 동시에 민들레꽃이라는 뜻이래요.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테스트의 날. 그동안 도와 온 사부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담뽀뽀 사장님이 촥촥 라멘 한 그릇씩을 끓여 내놓구요. 당연히 모든 사부들이 건더기는 물론 국물까지 원샷! 을 하면서 최종 합격을 하겠죠. 근데 그렇게 다들 기뻐하는 자리에서 카우보이 아저씨는 슥 일어나 떠나려고 하고, 담뽀뽀 사장님이 살짝 붙잡으려 해 보지만 걍 사람 좋게 웃으며 응원하고, 다음에 또 들르겠노라고 약속하고는 트럭에 올라 길을 떠나요. 이렇게 엔딩입니다.

 


    • 왜 갑자기 요즘 인스타피드에 선생님 라멘은 어떻게 먹어야 합니까가 자주 뜨나 했더니...(로이배티님 글 말고) 뭔가 SNS 마케팅인지 바이럴이 상시 작동하나 싶군요..;;


      원래 라멘이 중화소바에서 발달된 요리라서 그런지 저당시만 해도 간장베이스 국물인 점은 그렇다고 쳐도 지금만큼 화려하지 않고 수수해서 좋군요. 지금은 지로계 라면이니 뭐니.. 대중요리 트렌드 따라가기도 힘들어요.


      나루토마키는... 원피스 다음 인기만화였던 나루토 덕에 알게 되었죠. 주인공 나루토가 좋아하는 것도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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