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환.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게임은, [원신] 말고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정확히는 원신도 친구가 같이 하자고 해서 시작했다가 멀티플은 거의 뛰지 않고 스펙 업의 노가다가 천라만상으로 예견되는 걸 느끼자 마자 그만두었습니다. 시나리오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런 게임들은 대략, 긴 탐험/퀘스트 기간에 반비례되는 힘을 쏟은 컷 씬을 동력으로 플레이하게 된다고 느꼈어요. 당시 다른 게임들의 재미있는 부분들만 긁어 모았다고 정평이 났던 [원신]에서 새롭게 느꼈던 건 그 정도였습니다.


일종의 제 머릿속 중국X미소녀 게임으로 분류되어 있는 이 분야는 손도 댈 일이 없는 편인데, 갑자기 이 게임을 하게 된 이유는... 옥냥이가 초반 플레이를 하는걸 구경하다 스포일러 당하기 싫어서 바로 끄고 시작했었네요. 다른 것보다 연출의 스타일리쉬가 더 이상 모바일 게임을 넘어섰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확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초반 타이틀이 뜨기 전까지의 인트로 플레잉 과정에서 다양한 장르의 연출들을 인게임 요소들만으로 거의 쥐어 짜내듯이 해냈다고 느꼈기에 뒤로 얼마나 더하려나 궁금했습니다. (거기에 어반 판타지적 요소와 셀 에니메이션 같은 질감을 최대한 살린 요소도 마음의 어떤 곳을 자극했다는걸 빼놓을 수는 없겠습니다.)


지독한 무과금러로서의 자신을 매우 신뢰하고 있기에, 컨텐츠를 소모하다 과금의 벽을 만나면 거기서 빠이빠이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찍먹을 시작했는데, 대략 2주가 지난 지금도 무과금 범위 내에서의 컨텐츠가 끝나질 않아서 무료로 이렇게까지 즐겨도 되나 싶은 기분이 드는군요. 하지만 요즘 게임답게 과금의 영역이 이전보다 더욱더 하드코어하게 중층적으로 쌓여있는데, 스킨류나 게임에 영향이 안 가는 것은 차지하더라도, 페이-투-윈 류 캐릭터 성능에 대한 재화들이 대략 5겹에서 6겹으로 이뤄져 있는듯 싶습니다. 캐릭터 구매 - 캐릭터 레벨링 - 능력 레벨링 - 기본 패시브 레벨링 - 특수 페시브 레벨링 - 기본 능력치 레벨링(*4 ~ 8)이 전부 쪼개져서 참으로 혀를 내두르게 하는 성장의 미적분이었습니다. 슬슬 적들의 피통은 커지고 이쑤시개로 사과를 깎는 기분이 들기 시작하기에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는듯 합니다.


아마 이 게임의 재미 절반 이상은 GTA에 빚지고 있다는 생각은, 시리즈 중에 GTA 2를 데모로만 해본 저조차도 바로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도시 전체와 거의 모든 것을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충격이 굉장히 신선하게 끊임없이 들어왔기 때문이었죠. 지금까지 경험한 내부 미니게임만 해도 대략 열 가지는 넘어가고 있는 것 같고, 레이싱 류는 그래도 모양은 갖췄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장식이 아닌 도시의 여러 공간들과 도심 세계에서도 기어오를 수 있는 모든 공간들 (이건 생각해보니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빚진 것 같군요?) 일본-중국-한국의 어느 지점에 있는듯한 너무 익숙한 실외기 가득한 옥상과 유리 빌딩, 주택가들. 비올 때의 아스팔트와 창문의 질감. (낚시 게임의 플레이 로직 요체는 형편 없었지만, 뭐 뽑기 반복의 묘미는 있더군요.)


이런걸 60GB 짜리로 휴대폰 게임이라고 눈가리고 아웅하며 출시한다는게 놀라운 지점이 있었네요. GPT와 도대체 이건 얼마가량 투자가 들어갔을까 문답하는데, 판타지 오픈월드 류가 밝혀진 바로는 천억에서 수천억가량 써서 만들고 있다고 하니, 이 정도면 수천억 이상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대충 잡았습니다. (친절한 지피티 씨에 의하면, 요즘은 기본 70GB, 좀 크면 100GB, 150GB 넘어가는 모.바.일. 게임도 있다고 하니.. 솔직히 작은 화면에서 하라고 만든 건지, 돌아가긴 하니까 되었다는 건지 헷갈립니다.) 중국의 제작사들은 플레이어들에게 그 정도의 개발 비용은 전부 뽑아먹을 자신이 있는 것일까요?


지금까진 시간이 넘쳐나니, 한국어 성우(인간!) 풀더빙 대화들을 스킵없이 전부 들어가며 플레이하고 있는데, 사실상 드라마 2시즌 정도는 되는 분량의 제 시간을 갈아넣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이의 캐릭터 모션들과 컷 숏들도 공을 들여 만들어서 (슬슬 후반부로 가면서 서브 플레이에서는 제작자들이 지쳐간다는 느낌을 받고 있기는 한데) 중국의 게임 개발이 여기까지 왔나 싶더군요.


어제 말러의 교향곡 2번을 듣는데, 듣는 와중에 아 이 게임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잡생각이 자꾸 튀어나와서 빨리 털어버리고자 썼습니다. PS5를 구매한 후에 이런 저런 게임을 하다가, '아, 한국에는 게임 커뮤니티가 있었지?' 하고 찾아가봤다가 무한의 배틀그라운드가 펼쳐져 있는걸 보고는 뒷걸음질 쳐서 도망 나온 후 이런 글을 쓰는건 처음이군요. 이번에는 트위터에서 아주 살짝 키워드로 살펴봤는데, 벌써 할 게 다 떨어졌다, 재화가 부족하다, 언제 새로운 뭐가 나오냐 묻는 질문들이 많아서...... 백수가 시간 날 때마 플레이해도 안 떨어지는데,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스킵을 하는거지? 스킵을 하지 않는다면 시간을 얼마나 갈아 넣는거지? 궁금해하며 뒷걸음질 쳐서 나왔습니다.


좀 딴 소리긴 합니다만, 브레이킹 배드를 시즌 3인가까지 혼자 달리다가, 인터넷 사람들의 잡담이 그리워 검색했다가 스카일러 화이트에 대한 상당한 지탄을 보고 질겁해서 도망 나온 이후에는 적어도 어떤 시리즈를 하차하기 전까지는 컨텐츠에 대한 인터넷 여론을 중간에 찾아보는걸 (시작하기 전에는 당연히) 아예 봉인해버린 적이 있었네요. 저는 꾸준히 스카일러 화이트에 감정 이입하면서 봤는데 지금도 구글 검색에서는 스카일러 화이트까지 치면 '스카일러 화이트 발암'이 자동완성으로 뜨는군요. 다들 호쾌하고 유쾌 상쾌하게 범죄의 세계로 직진해서 터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그 세계에서 가장 일반인적 유혹과 갈등에 가까운 인물이 스카일러 아니었는지.


쌩뚱맞게 이런 이야기를 한건, 이환에서 2번째 메인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충 ... 어린이 역할의 직유로 구성된 남성 캐릭터인데, 미형도 아닌데다 유치한 어린이 행동을 뒷바라지 해줘야 하는 과정이 플레이어들에겐 충격이었는지 잠깐만 슬쩍 반응들을 훑었는데도 알 수 있더군요. (하지만 설정상 어린이인걸...) 나라별로 이 캐릭터에 얼마나 비호감을 가지는지 비교 연구를 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ㅋㅋ. 적어도 중국의 제작진들은 어린이다움(이라고 할만큼까지도 아니고 또 과장된 것 같지만)을 메인 소재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말이죠. 다양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들이 만든 유사-가족 공동체의 끈끈함을 묶기 위해서 최선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던듯 합니다.


여튼... 공중파에서 어렸을 때 해줬던 셀 에니메이션에 추억의 닻이 고정되어있는 저로서는, 가끔 3D 기술이 포함되지 않는 애니메이션을 봐줘야 하는 지병이 걸려 있는데요. 나름대로 원치않게 얻게된 향수병을 조금 지연시켜주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덕밍아웃이라고 해야할까, 좀 부끄럽긴 하지만 어디 다른 곳에 쓸 곳도 없고, 듀게에나 끄적거려 봅니다. 이제 게임을 접을 때까지 대략 2주 정도 남은 것 같은데, 저장 공간이 거슬리지 않는 선에서 몇몇 미니 게임들 (리듬 게임, 레이싱 게임, 낚시 게임...) 시뮬레이터로 돌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뻘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


P.S. 확실하게 벽에 부딪히면 GTA를 하나 사서 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총게임이긴 한데... 그래도 뭐 재미있지 않을까요, 드라마 본다 치면 말이죠. (안그래도 좀 있으면 6이 나온다고 하는데 적절하게 갈아탈 수 있지 않을까...)


메인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개편과 관련된 몇몇 정보들. 9 320 05-11
628 부친상을 당했습니다 8 07:01
열람 이환. 19 05:02
626 [티빙바낭] 앤솔로지는 괜찮은 에피 몇 개만 건지면... '귀신 부르는 앱: 영' 잡담입니다 26 01:12
625 [넷플] 은퇴 생활을 즐기러 간 곳이라고!! ‘더 실버타운’ 1 59 05-23
624 넷플릭스 [파벨만스] 감상 3 96 05-23
623 문워커 빌 골드 4 55 05-23
622 [왓챠바낭] 제목대로의 이야기일 리는 없다고 알고 봤지만. '슈퍼 해피 포에버' 잡담입니다 4 134 05-23
621 블루투스 헤드셋 목에 걸어도 음악 재생 되나요? 10 144 05-22
620 마이클 잭슨&믹 재거 ㅡ the state of shock 61 05-22
619 26년간 저의 큰 영화 스승님이셨던 임재철 영화평론가님 추모 행사가 필름포럼에서 5월 22일, 23일에 진행… 208 05-22
618 [쿠팡플레이] 옛날엔 이렇게 재밌지 않았는데? '도망자' 잡담입니다 8 257 05-21
617 (*스포) [마이클] 보고 왔습니다 4 175 05-21
616 [애니비추] 햄릿을 낫토에 비비고 와사비에 찍어서 드셔보세요 '끝이 없는 스칼렛' 3 145 05-21
615 "나 프린스랑 사이 안 좋아" 2 206 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