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애프터썬]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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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썬] 2022


감독 : 샬롯 웰스 

출연 : 폴 메스칼, 프랭키 코리오 



"11살때 아빠는 지금 뭘 할거라 생각했어요?" 


[애프터썬]은 20년 전, 31살 생일을 맞은 아빠 캘럼과 11살인 딸 소피가 튀르키예로 떠났던 여름 휴가를 다룹니다. 

이제 그때 아빠의 나이가 된 소피가 당시의 캠코더 영상을 다시 보며 미처 알지 못했던 아빠의 진실을 추적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죠. 

영화는 관객에게 친절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사적이고 내밀한 기억의 조각들을 정교하게 이어 붙여 관객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잔상을 남깁니다. 

시종일관 나른하고 평화로운 휴양지의 풍경을 비추지만, 그 이면에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의 파동이 흐르고 있습니다. 

여행의 추억에서 많은 부분을 낯선 친구들과 보냈던 소피의 기억 넘어에서, 함께였어야 할 아빠 캘럼은 혼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요. 

영화는 캘럼이 왜 슬픈지, 그가 겪고 있는 내적 붕괴의 원인이 무엇인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관객은 소피의 시선을 따라가며 캘럼의 들썩이는 등을 보게 되고, 그 모호함 속에서 오히려 더 거대한 슬픔을 마주하게 됩니다. 


샬롯 웰스 감독은 관객을 관찰자로 머물게 하지 않고, 소피와 함께 기억의 사각지대를 더듬는 탐험가로 만듭니다.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으로, 서사의 물리적 크기를 키우기보다 인물들 사이의 침묵의 무게를 조절해 이야기의 깊이를 확장해냅니다. 

감독의 장편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칸 영화제를 비롯한 전 세계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단숨에 그해 가장 중요한 영화 중 하나로 자리잡았죠. 



"마지막 밤이니 춤 출 시간이야." 


가장 인상적인 명장면은 후반부의 '언더 프레셔(Under Pressure)' 시퀀스입니다. 

과거 휴양지의 댄스 타임과 현재 성인이 된 소피의 클럽 공간이 교차 편집되는 이 장면은,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채 격렬하게 흔들리는 감정의 폭발로 과거와 현재의 거리를 메워버리는 경이로운 순간을 선사합니다. 

이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씬과 연결되어, 이별을 나누지 못한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소피의 간절함이 전해집니다. 


폴 메스칼은 다정하면서도 위태로운 아버지의 양면성을 눈빛 하나로 설명해내며, 딸과 하는 여행의 즐거움과 우울증의 잠식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줍니다. 

어린 소피 역의 프랭키 코리오 역시 놀라운 발견입니다. 어린아이의 천진함 속에 문득 스치는 어른스러운 통찰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두 사람의 앙상블은 연기가 아닌 실제 삶의 한 조각을 훔쳐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화면과 음악의 의도적인 미스매치입니다. 

청량한 팝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카메라는 고독한 내면의 혼란함을 비추고, 흥겨운 댄스곡이 나올 때 인물은 심리적 붕괴를 경험합니다. 

이러한 감각의 충돌은 관객의 무의식을 자극하며 설명하기 힘든 먹먹함을 자아냅니다. 

또한 캠코더의 거친 질감과 필름의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영상은 '기억'의 불완전함을 시각적으로 그려냅니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영화의 문법이 친절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서사의 템포가 매우 느리고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기에, 선형적인 구조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지루하거나 난해하게 느껴질 여지가 있습니다. 

감정의 과잉을 극도로 절제한 만큼, 그 울림이 전달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겁니다. 



'This is Our Last Dance, This is Ourselves.' 


[애프터썬]은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렌즈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그림자를 복원하려는 슬픈 시도입니다. 

소피가 기억하는 아빠와, 캠코더 속에 남겨진 실제 아빠의 모습, 그리고 소피의 상상과 간절한 바람이 쌓여 거대한 감정의 파고를 만듭니다. 

영화의 끝에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본 것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추억 여행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었던 이별을 비로소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된 사람의 아련한 작별 인사였다는 것을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묵직함은, 아마도 각자가 간직한 누군가와의 '잊지 못할 여름'을 소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휴양지의 햇살처럼 찬란해서 더 슬픈, 추억 속의 라스트 댄스입니다. 



넷플릭스에서는 5월 16일 종료 예정입니다. 

다행히 티빙, 웨이브, 왓챠에서 계속 볼 수 있습니다.

    • 확실히 친절하지 않아서 촬영도 연기도 삽입곡도 전체적인 분위기도 죽이고 하는데 그래서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처음 볼 때 아리송했었어요. 물론 아빠의 여러가지 행동에서 뭔가 불안한 징조들이 느껴지긴 했습니다.


      나중에 인터뷰 등에서 감독의 실제 아버지의 얘기에서 많이 가져왔고 아버지가 이후 어떻게 됐나 알고나서 재감상을 하니 훨씬 더 좋더군요. Under Pressure가 그렇게 쓸쓸하고 슬프게 들릴 수 있는지 처음 깨달았죠.

      • 처음 봤을 때는 좀 당황했습니다.
        큰아이가 적극 추천했는데, 혼란스런 전개에 집중이 잘 안되더군요.
        다시한번 돌려보면서 아 저 장면이 뒤에 연결되는구나 하는 것들을 되세기니, 깊은 여운이 남았습니다.
    • 이상하게도 제 눈물버튼이 되어버렸습니다. 언더 프레셔 장면은 너무 가슴아파요. 이 영화는 이상하게도 두번째 보면 나이든 소피의 시점에서 캠코더를 돌려보는 위치에 가게 되기 때문에 또 다른 슬픔이 있더군요. 유년기의 소피의 슬픔과 성장한 소피의 슬픔을 각각 느끼게 되는...
      • 여러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더군요.
        때때로 재감상해야겠습니다.
    • 벌써 여러 번 드린 말씀이지만 영화처럼님께서 영화를 설명해주시는 글이 너무 좋아서 관심 없던 영화에도 관심이 생기고 그럽니다. ㅋㅋ 이 영화는 워낙 좋은 얘길 많이 들어서 넷플릭스에 올라온 걸 보고 찜은 해뒀던 경우인데, 이미 내려갔겠네요. 아무래도 다른 OTT보단 넷플릭스 쪽이 화질이든 음질이든 확연히 좋아서 있을 때 봤어야 했는데...; 뭐 다른 서비스로라도 꼭 보겠습니다. 오늘도 글 잘 읽었어요!

      • 영화는 지난주에 봤는데, 먹먹한 감상을 추스리고 정리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업무에 쫓겨 넷플릭스 종료 기한에 너무 촉박하게 글을 올렸네요.
        미루기 습관을 고쳐야하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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