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바이러스 잡담이예요

어느날 반친구가 와서 저한테 질문을 하네요.

"컴퓨터 바이러스가 뭐고?"

그때쯤 뉴스같은 데서 컴퓨터 바이러스 이야기가 막 나왔던 것 같습니다. 생물도 아닌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생긴다는 게 이해가 안갔던 모양입니다.

전 아는대로 성실하게 대답했습니다.

"몰라"

그랬더니 그넘이 막 화를 내면서는 알면서 안가르쳐준다고 그러곤 가버렸습니다.


아니, 제가 그냥 친구들보다 컴퓨터를 먼저 쓰기 시작했을 뿐이지, 그런다고 컴퓨터에 대해서 다 아느냐고요. 컴퓨터 바이러스는 저도 그런게 있다고 들어만 봤어요.

8비트 컴퓨터 환경은 바이러스란 걸 구경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거든요.


제가 컴퓨터 바이러스를 처음 접한 건 그후 한참 지나서 IBM 컴퓨터를 사고, PC 통신이란 거에 접속하게 된 다음입니다.

일단 네트워크 접근이 되어야 바이러스 '감염'이란 게 가능해지겠죠.

그때 멀쩡하던 디스크가 깨졌다고 나오고 그래서 당황해서 해결방법을 PC 통신에서 찾았죠.ㅎㅎ

V3라는 걸 받아서 치료하면 된다길래 그대로 했습니다.

치료했다는 메시지가 나와서 안심하고 다시 부팅했더니 또 바이러스 발생.


아무것도 몰랐으니까요. 바이러스 치료하려면 클린하게 부팅한 상태에서 v3를 돌려야한다는 걸 몰랐어요. 시스템이 감염된 상태에서 파일만 치료한다고 했으니 헛짓한 거였죠.

사태를 깨닫고는 이번엔 제대로 치료를 했습니다.

이게 문자운영체제 시절의 제 유일한 바이러스 경험입니다.

이 사건 덕에 전 방역이란 것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되었어요. 컴퓨터뿐 아니라 실행활에서도 바이러스가 어디 잠복했다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경각심.

그게 지금까지 사는동안 나름 도움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얼마 후 서점에 갔더니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V3를 만든 사람이 쓴 거였어요. 얼마전 일도 있고 해서 책을 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부록으로 플로피 디스크를 주는 걸 보고는 놀라서 샀습니다. 제 기억에 MSX 플로피 디스크는 무~지 비쌌기 때문에 책값도 얼마 안하는데 이런 비싼걸 부록으로 끼워주다니 이건 꼭 사야돼!라는 충동에.... 하드 달린 컴퓨터를 썼던데다 그때까지 공디스크를 안사봐서 IBM에서는 플로피 가격이 껌값이란 걸 몰랐어요. )


책 내용은 저자의 컴퓨터 경험. 컴맹시절에 있었던 이런저런 뻘짓들부터 백신을 만들기까지의 대략적인 이야기가 초반에 잠깐. 꽤 재미있었습니다. 저런 컴퓨터 도사도 나랑 비슷한 시절이 있었구나 하고. 그리고 대부분의 내용은 컴퓨터 바이러스의 개념과 역사. 이런저런 사례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건 재미로 볼 내용은 아니죠. 

제가 알고있는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은 거의 대부분 이 책에서 알게된 거라서 지금은 심하게 아웃데이트되어 있을겁니다.

그 책이 지금도 집구석 어딘가 있습니다만, 그당시에는 그저 존경스러웠던 책 저자가 지금 그렇게 될 거라고는 물론 생각도 못했습니다(그넘의 무릎팍 도사에만 안나갔어도 어쩌면 아직도 존경받는 사람이었을지도....)


일단 경각심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바이러스 방지에는 나름 도움이 되는 모양입니다.

그뒤로 오랫동안 대충 감염되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정도로만 살고 백신같은 건 전혀 안깔고 썼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이 살았습니다.

백신을 안깔았던 건 제가 모르는 뭔가를 하는 프로그램이 시스템 자원을 잡아먹는게 싫어서요. 그때는 지금과 달리 모든 자원이 부족하던 시절이니까...


그러다가 두번째로 바이러스를 보게된 건 시간이 또 꽤 지나서 윈도우 2000을 깔면서였습니다.

운영체제 설치가 끝나고 재부팅. 이제 나의 98 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환경이 시작되야 하는 찰나, 걍 새까만 화면만 나오는 겁니다. 그때야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어요(전 윈도우 2000을 XP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다음에 처음 깔았습니다. 일생이 레트로라서...) 윈도우 2000은 바이러스에 취약해서 깔자마자 감염되니 랜선 뽑고 설치해야 한다는 거.

그래서 랜선 뽑고 다시 설치.

그리고 바이러스나 악성프로그램과 관련된 문제는 딱히 겪은 적이 없습니다. 운이 좋았나봐요.(어쩌면 속으로 이런저런 악성프로그램이 잔뜩 깔렸을지도 모르지만 눈에 띄는 불이익은 없었...ㅎㅎ)


세번째로 바이러스 관련 문제를 겪은 건 지금 쓰고있는 컴퓨터를 업어왔을 때.

친구가 쓰던걸 얻어온 거고 OS도 깔려있는 채 그대로 받아왔습니다. v3도 깔려있었죠. 참 오랜만에 다시 보는 v3.

근데 뭔가가 굼뜨고 이상하게 거치는 게 많고 그래서, 처음엔 윈도우 11은 원래 그런가보다 했습니다(95 이후 처음으로 제가 현역 OS를 쓰고 있습니다ㅎㅎ) 전에도 이야기한 그래픽 카드 문제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중에 멀웨어 제거 프로그램도 몇개 돌려봤더니, 뭐가 잔뜩 나오더군요.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악성 어쩌구 하는거... 이넘이 대체 뭐 어떤 환경에서 썼길래. 그거 싹 정리하고 컴퓨터가 많이 쾌적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쓰다가, 일전에 말한대로 v3라는 악성프로그램을 지웠네요. 아니 뭐 내 컴퓨터에서는 하는 짓이 악성프로그램이랑 다르지 않았으니까...

사실 그동안 생전 안쓰던 v3도 이제 깔려있겠다 하고, 그전이라면 안했을 살짝 위험해 보이는 일들도 막 하고 그랬었어요.ㅎㅎ 이제는 좀 더 조심하고 살아야겠죠.

    • MSX-DOS와 MS-DOS 3.3인가 까지는 포맷한 플로피 디스크의 FAT 구조가 어느 정도 공유되기 때문에 MSX에서 MS-DOS체제의 파일을 실행할 수는 없어도 데이타로 IBM-PC의 DOS 3.3에서 구동되는 바이러스 감염된 파일을 MSX-DOS용 3.5인치 디스크로 옮길 수 있습니다! (진짜로) Copy con 명령으로 텍스트 파일 만드는 건 MSX-DOS나 MS-DOS나 거의 동일한 방식이었기 때문인지 IBM-PC의 3.5인치 디스크 드라이브에 MSX에서 포맷한 3.5인치 플로피를 넣어서 Copy con으로 영문 배치파일 같은 건 만들수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물론 MSX에서 IBM-PC의 BIN이 실행되지는 않지만 신기하게도 MS-DOS에서 바이러스를 옮긴 MSX용 해당 디스크를 계속 돌리면 파일명이 깨진 이상한 파일과 데이타가 점점 디스크를 잠식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디스크 드라이브의 버퍼 안에서 스스로 무한 복제를 하는 건가 싶던데, 어쨌든 8088계열과 Z80계열의 CPU 기계어 명령이 완전히는 안 통해도 디스크 억새스할 때마다 바이러스 코드가 복제되는 거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MS-DOS에서도 플로피 디스크 한장에 복수의 컴퓨터 바이러스를 수집하는 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twain32 계열이었던가 바이러스 코드는 윈도체제가 된 아직까지도 해당 계열 코드는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이게 프린터 데이타 스풀 하는 영역을 쓰던가 어땠던가 모르겠지만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체 해봅니다. 허허허 :DAIN_

      • 글을 올리신 날짜 때문에 믿음이 안가는....ㅎㅎ


        운영체제가 달라지든가 해서 더이상 위협이 안되는 구세대 바이러스들이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할 프로그램이란 소리를 듣는 날이 올런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 V3가 나름 부침이 있는 소프트웨어였던 것 같아요. 처음엔 그야말로 구세주처럼 등장했다가, 나중엔 컴퓨터 좀 한다는 사람들 쪽에선 터보 백신, tv가 낫다고들 해서 또 그 쪽을 많이 쓰다가, 나중엔 거의 폐급 취급 받던 게 한 세월이었는데 어느샌가 쌩뚱맞게 성능 좋은 백신 프로그램으로 성장했다고 칭찬 받다가, 요즘엔 뭐 그냥 V3 니가 바이러스 아니니? 라는 소리도 많이 듣고 그런 것 같구요. 더불어 원조 개발자님의 이미지가 워낙 망했다 보니 소프트웨어도 덩달아... (쿨럭;)

      • v3와 한글은 오래도록 유명세가 있다보니 맹목적으로 깔아써야만 한다는 그런 인식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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