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보고 왔습니다. 

책을 읽고 짧은 추천 글을 예전에 썼었어요. 검색했더니 2021년인데 그때 이미 영화화와 라이언 고슬링의 출연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5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영화가 나왔네요.  

아름답고 위험한 우주를 배경으로 외계 생명체와의 접촉과 우정을 감동적으로 잘 전달해낸 작품입니다. 온가족 나들이 영화로도 괜찮을 듯요. 

우주에서 유영하는 장면이나 우주선 밖에서 불가피한 위험을 겪는 장면이 물론 있어서, sf영화가 주는 시각적 재미가 당연히 있고요, 우주선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실험과 고민 장면이 있어요. 이런 우주 장면 사이사이에 여기로 오기 전에 있었던 지구와 주인공의 사정이 무엇이었는지가 번갈아 제시됩니다. 그리고 주제 면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의 성장입니다.

   

중학교 과학 교사인 주인공 그레이스는 과학 지식을 누구 못지 않게 가졌고 그 분야에서 열린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것 말고는 대부분 사람들처럼 영웅적인 행동과 거리가 먼 그냥 소심한 일반인입니다. 그레이스는 타인과 갈등할 바에는 도망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소신을 가진 것 같고요, 그래서 본인을 비겁하고 나약한 인물이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그랬는데, 그랬던 그레이스가 돌덩어리 형상의 외계 생명체 로키를 만나 사귀면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 품고 있는 내용입니다. 

아래부터 스포일러일 수도 있어요. 저는 좀 헷갈리네요. 개인적으로 스포일러에 무감한 편이라 그런가봐요.



그레이스 덕분에 두 세상이 구해지는데, 뒤집어 보자면 그 이전에 그레이스 한 사람의 탈피를 위해 온 우주가 매달린 것이 아닐까,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머나먼 우주로 보내져서 외계 생명체를 만나 사귀고 그로부터 배우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지구의 위기대응 수장인, 산드라 휠러가 연기하는 에바 수준의 용기를 갖춘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어이구...싶기도 하거든요. 사람 한 명 만든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구나,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하며 웃음을 깨물게도 되네요. 한 사람의 변화와 세계의 변화는 함께 가는 것이고, 둘 다 만만찮게 지극히 어려우니 책이나 영화 안의 세계가 아니라면 미션임파서블이 아닐까라는. 

또 한 가지 엉뚱한 생각은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눈'을 마음의 창으로 인식하며 묘사하여 그 눈에 혹해 인생을 거는 연인들이 떠오른 것입니다. 이런 갈피 없는 생각은 아마 얼마 전에 읽은, 폴란드 국민들이 사랑한다는 소설 [인형] 때문인 거 같네요. 이 소설의 주인공 보쿨스키는 우연히 극장에서 쳐다보게 된 귀족 이자벨라에게 한눈에 반해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게 되는데, 그 이자벨라의 치명적인 무기가 바로 '이상한 눈빛'이거든요. 로키에게는 눈이 없고 코도, 귀도 없어요. 얼굴과 몸의 경계가 없는 그냥 넓둥근 돌에 이동에 필요한 몇 개의 다리가 붙어 있지요. 그런데 인간을 훌쩍 뛰어넘는 지성과 감성의 존재입니다. 아마 그들 끼리 오가는 매력의 신호는 따로 있겠지만요. 어쨌든 이 신호가 서로 다른 생명체가 만나 소통에 이른다는 점이 원작도 이 영화도 감동을 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너무나도 이질적인 존재들이 그것을 뛰어넘는 용기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원작을 읽은 사람에게는 영화가 약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레이스의 고군분투와 외로움, 로키의 지성과 그 귀여움, 에바의 냉정한 판단력, 작품 전반의 유머러스함, 마지막 부분의 (어쩐지 제가 느낀)쓸쓸함까지. 이런 면면이 원작에 비해 약간은 연한 맛으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팝음악들의 조력을 받으면서도 말이지요. 과학 설명 부분도 당연히 축소 되어 있지만, 이건 뭐 저같은 사람에게 아쉽지는 않았으니 통과하더라도요. 그래도 좋았습니다. 만족스럽게 보았고, 무척 선량하고 사랑스러운 영화이므로 많은 분들이 두루 안심하면서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라이언 고슬링 홀로 연기한 장면이 대부분이었을 텐데 무척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영화로 이 연기자가 더욱 좋아졌습니다. 산드라 휠러는 언제나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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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운명은 내 손 안에.



    • 최근 개봉작들 중에서 평단에서도 두루 호평을 받았지만 관객들 반응이 가장 좋은 영화인 것 같아요. 저는 같은 원작자 영화인 '마션'도 정말 재밌게 봤는데 그것보다 더 대중적으로 재밌다는 반응이니 오늘 상영하는 곳에 지금이라도 예매를 해볼까 싶습니다.




      저도 산드라 휠러는 항상 좋은데 사전에 공개된 사진들을 보면 거의 라이언 고슬링만 나오는 원맨쇼 같던데 비중이 어느정도나 될까요?

      • 라이언 고슬링의 원맨쇼 맞습니다. 그런데 산드라 휠러도 짐작보다는 꽤 나옵니다. 뭣보다 노래를 한 곡 하셔서 깜짝 즐거움을 주고요.


        '마션'만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영화입니다. 듀나 님은 책을 읽고 보는 것을 추천하시던데 저는 그냥 상세한 전개 모르고 원작 읽은 사람의 기대없이 영화로 만나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 나라는 또 우주 영화 인기라니까 잘 나온 이런 영화는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 노래를 한다니 '토니 에드만'에서 그 장면이 생각나네요. 하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과학과 수학이 쥐약이지만 또 SF문학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개봉하자마자
      달려가서 봤습니다. 보면서 수많은 영화에서 그려졌던 외계 생명체와의 첫 만남을 다시 생각했는데요. 서로 다른 별에서 왔기 때문에 기본적인 의사 소통도 어려운 대상과 깊은 우정과 공감을 그렸다는 점에서 아주
      감동적으로 보았습니다.



      (스포일러~~~)



       



       



       



       



       



       



      현실에서 저는 산드라 휠러가 맡은 에바 같은 현실주이자라서 이 우주 판타지가 더 찡하게 다가왔다고 봅니다. 에바가 태양이 죽어가며 식량 부족으로 세계 인구가 감소할 건데,
      과정에서 국가간 협조 부족으로 사상자 비율은 식량부족분의 두 배가 될 거라고 말하는데 소름이 좍 끼쳤거든요. 상상하기도
      끔찍한 시나리오지만, 그 방향으로 전개될 거라는 걸 뻔히 보여주는 지금의 현실이 있으니까요.   

      • 앤디 위어의 세 작품을 재밌게 읽어서 저도 부지런히 극장 관람을 했습니다. 이 작가의 낙천적인 sf가 제 수준에서는 가장 즐길 만하지 않나 여기고 있어요. [아르테미스]도 소식이 얼른 들리길 기다립니다.


        그렇네요. 좀 천진한 느낌의 영화 분위기를 산드라 휠러가 현실감 있게 균형을 잡아주었어요. 캐스팅 잘 한 거 같아요.    


          

    • 스포 주의하느라 써주신 글을 정독하지는 못했는데 책은 읽고 영화를 봐야할 것 같네요
      • 극장에 오래 걸리지 않을까 예상이 되니 그러셔도 될 거예요. 책 재미있으니 꼭 읽어보시길요.

    • 잘 읽었습니다. 저는 어제 토요일에 어머니와 같이 보고 왔는데, 저는 괜찮게 봤습니다만 어머니는 마션보다는 좋게 보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 캐릭터에 대해서 메주 같이 생긴게 거미처럼 기어다닌다고 메주거미 라고 별명을 붙여 주셨습니다. ㅎㅎㅎ 다같이 메주거미와도 소통할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DAIN_

      • 어머니 눈썰미와 상상력이 있으시네요. 메주 질감에 거미 형상. 생각 못했는데 참 그럴 듯합니다. 군데군데 보이는 녹색은 곰팡이 핀 메주였던...ㅎ 

    • 제가 참 현시점 지구에서 흔치 않게 '마션'조차 아직 안 본 사람이어서 말입니다. ㅋㅋㅋ 지인에게 책 먼저 읽고 보라는 조언을 듣고 시키는대로 해야지... 했다가 아직도 책을 안 읽었지요. 아마 이 영화도 비슷한 운명이 될 것 같은데. 조만간 연례 행사인 책 구입을 한 번 시도해 봐야겠어요. 그러기 위해 본문은 첫 부분만 읽고 넘겼습니다. 하하;;

      • 이 작가 책은 학교 도서관에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책이 더 재미나서 일독 권합니다!

    • 안 그래도 이 영화 후기글이 올라올거 같은데?하고 있었는데 토마님이 올려주셨네요. 저도 아직 책 보기 전이라 본문은 스킵해야만 했어요ㅜ

      부산 봄 날씨는 어떤가요. 봄 바람 살랑해지니까 괜히 어디로 떠나고 싶은 날들입니동
      • 우리 끼리 하는 말이지만, 이 영화의 외계생명체를 보면 강아지가 떠오릅니다. 나중에 보시면 공감하실 듯요.


        어제는 바람이 세더니 오늘은 미세먼지 때문인지 흐릿한 날이었어요. 운전하면서 졸음이 와서 혼났네요. 봄이 오나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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