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서울지하철역의 바이올린 할아버지


  #.언젠가부터 서울의 지하철역을 다니다 보면 바이올린을 켜는 외국인 할아버지가 눈에 띄곤 해요. 눈에 띄기 전에 바이올린 소리가 먼저 들려오기 시작하니 멀리서부터 그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죠. 그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건 그에게 살짝 서운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아저씨는 아닌 것 같고...굳이 말하면 할아버지에 가까운 듯 하니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로 하죠.

 

 어쨌든 가끔 그와 다른 장소에서 마주칠 때는 기묘한 우연을 느끼곤 해요. 대체로 그는 동대문역의 이동통로 사이에서 바이올린을 켜는데 한번은 잠실에서도 본 적 있거든요. 잠실에 그리 자주 가지는 않는 내가 잠실에 가는 날 그가 우연히 잠실역에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는 사실...그런 작은 우연을 겪는 날은 기분이 묘하곤 하죠.



 1.오늘은 커피맨을 만났어요. 차를 한잔 하고 고기를 먹고 중앙아시아 거리라는 곳을 좀 걷고 들어갔어요. 어딘가 낯선 곳에 놀러가고 싶었지만 이제 서울의 모든 곳이 내가 잘 아는 곳이어서 고민됐어요. 그야 가면 내게 잘 해주는 곳은 많지만...나는 그들을 이미 너무 잘 아니까요.


 '나에게 잘 해주고 너무 익숙한 곳은 가고 싶지 않아. 그 익숙함이 나를 너무 초조하게 하거든.'이라고 말하자 그는 그러냐고 했어요. 결국 5호선에 그를 태워 보낼 때까지도 갈 곳을 정하지 못했어요.



 2.내가 정말로 가고 싶은 곳은 인천이었어요. 인천에 왜 가고 싶냐면 잘 모르는 곳이니까요. 가고 싶은 곳은 가고 싶은 이유가 아예 없어야 마음이 동하는 법이거든요. 내게 친절하거나 내게 정말 잘해 주는 곳은 갈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이미 아웃이예요. 갈 이유가 없는 곳을 가야 하는 거죠.


 하지만 인천을 가는 건 너무 힘든 일이예요. 또 1호선을 갈아타고 가서 놀고 거기서 1박 자고 오는 건 심신이 지치는 일이니까요.



 3.사실 지금 인천에 간다면, 인천에 가서 노는 게 아니라 헤매는 것이 되겠죠. 어디서 놀지 물색하기 위해 그곳의 좋다는 곳을 한번씩 털어보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 그거예요. 어디 가서 놀아야 될지 모르는 낯선 곳에 가서, 어디서 놀지 정하기 위해 헤매는 것 말이죠.


 한데 생각해보면 그냥 택시를 타고 인천에 가서 놀고, 잠은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자면 돼요. 지금 당장 인천에 가서 한달 동안 그렇게 살다가 돌아와도 되죠. 하지만 역시 그렇게 돈을 마구 쓸 수는 없었어요. 인천에 간다면 지하철을 타고 가겠죠.


 그런 생각이 드니 지금 내 신세가 파이널 판타지의 후반부 맵을 걸어다니는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이제 대륙을 넘나드는 멋진 차도 생겼고 심지어는 날아다니는 비공정까지 얻은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나는 아직도 월드맵을 걸어다니는 뚜벅이인 거죠.



 4.휴.



 5.어쨌든 5호선 플랫폼을 떠나서 다른 노선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또 그 바이올린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어요. 조금 전만 해도 없었으니, 커피맨을 바래다 주고 돌아오는 몇분 사이에 자리를 잡은 참이었나 봐요.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가까이서 그를 스쳐지나가게 되었는데, 젊었을 때는 제법 인기가 많았을지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늙으면서 외모가 나아지는 케이스일 수도 있고.



 6.오늘은 그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5호선 구간에서 바이올린을 켜기로 한 날인데 우연히 내가 그 역의 5호선 구간을 걷고 있었다라...또 한번의 기묘한 우연이 발생했구나 싶었어요.

 

 저 외국인 할아버지는 어쩌다가 한국에 흘러들어와서 지하철역을 옮겨다니며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걸까? 돈은 좀 벌리나? 이미 9시가 넘었는데 오늘은 왜 저렇게 늦게 좌판을 여는 거지? 같은 생각을 해봤어요. 꽤나 오래 전부터 꾸준히 해오는 걸 보니 유명인이 재미삼아 바이럴하는 건 아니고 생활비를 위해 하는 느낌이고요.


 그의 바이올린 솜씨는..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거슬리지만 않는 바이올린 소리라면 이미 충분히 좋은 바이올린 소리가 아닌가 싶어요. 그걸로 좋은 거죠.



 7.가끔 듀게에 바이올린 얘기를 썼었죠. 어렸을 때는 내가 바이올린의 천재인 줄 알았다고 말이죠. 어쩌면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죠. 왜냐고요? 


 나는 내가 바이올린의 천재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전에 바이올린을 그만두게 됐었거든요. 적어도 바이올린을 켜던 시절은 마지막까지 내가 천재가 아닌가 싶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나는 내가 바이올린의 천재인지 아닌지 언제까지나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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