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바낭] 개학 잡담

1.

담임 교사들의 1년 운세는 뽑기로 결정됩니다. 학생 운이죠.

단순하게 '사고 많이 치는 애들을 뽑느냐 안 뽑느냐' 가 전부는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의외로 많이 중요한 게... 성향이랄까요. 사람 관계가 다 그렇듯이 서로 잘 맞는 교사-학생이 있고 아닌 경우가 있어요.

그래도 맞춰가는 게 직업인 교사로서 당연한 게 아니냐고 하면 그것도 맞는 말인데, 노력해서 맞추는 거랑 그냥 잘 맞는 것의 차이는 무시할 수가 없죠.

그래서 오늘 제가 1년간 함께 할 녀석들을 처음 만났는데...


일단 되게 시끄럽다는 건 확실합니다. 딱 하루만에 모두가 제게 '그 반 애들이 제일 시끄럽네요 ㅋㅋㅋ' 라며... ㅋㅋㅋ

그 외엔 모르겠어요. 아무 근거 없는 그 동안의 감으론 괜찮아 보이긴 하지만 제가 뭐 점쟁이도 아니고 좀 더 두고 봐야겠죠.

즐거운 건 좋지만 학년 초에 저렇게 불타오르다가 여럿이 헛발질하고 순식간에 분위기 파탄 나는 일도 흔하니 일단 좀 진정을 시켜 보려구요.


등등 생각은 많지만 어쨌든 일단은 좋습니다. 계속 좋을 수 있도록 신경 쓰고 노력 해야죠. 연말에 웃고, 서로 아쉬워하며 헤어질 수 있도록요.



2.

작년 말에 학생들에게 '행사용 음원을 제출하렴' 이라고 했을 때 아무도 제출을 안 하길래 불러다가 얼른 내놓으라고 재촉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근데 이 녀석들이 제출을 안 한 이유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음원이 뭔지 몰라서' 였습니다.

그래서 mp3 파일 달라는 얘기다. 라고 했더니 mp3가 뭐냐고 묻고요.

이러쿵 저러쿵 설명을 해 주니 돌아온 대답은 '그냥 그날 유튜브로 틀면 되지 않아요?' 였죠. 아아 세월이여... 였는데요.


엊그제는 아이들에게 증명사진 찍어서 전송하라고 시켰거든요.

그랬더니 한 명이 물어봅니다. 


쌤 사진 보내드려야 하죠?

응 카톡이나 문자로 파일 보내면 돼.

그냥 사진 드리면 안돼요?

뭐 그게 편하면 그렇게 하렴. 받아서 내가 스캔하면 되니까.

아니 그렇게 말고 카톡으로요.

? 애초에 내가 그거 얘기했는데 다르게 하겠다는 거 아냐?

아니 제가 파일은 없고 사진만 있어서...


그제서야 이해를 했습니다.

이 녀석은 '사진 파일'을 '사진'이라 부르고 그냥 '파일'이라는 건 사진이 아닌 무언가라고 생각했던 거죠.


생각해 보면 핸드폰에서 파일 정리하는 체계가 그렇게 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구요. 용량 정리할 때 뜨는 옵션을 봐도 '대용량 사진' 아니면 '대용량 파일'을 지우라고 하잖아요. 카톡방의 메뉴를 봐도 '사진' 끼리 모아 보고 '파일' 끼리 모아 보게 되어 있고.


이제 mp3도 안 사고 스트리밍으로만 음악을 듣고, 어려서부터 익숙한 핸드폰의 UI로 각종 개념들을 파악하는... 뭐 그런 세대라는 것이겠죠.

근데 아무리 그래도 기초 개념은 좀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3.

요즘 경기도에서 오래 된 학교를 걍 아예 새로 지어주는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희망 학교가 신청을 하면 심사를 거쳐 대상 선정을 하고. 선정이 되면 이후로 참 많고 길고도 복잡한 준비 과정을 거쳐서 작업에 들어가는데요.

재밌는 건 그래서 건물을 철거하게 되면 학교 운동장 같은 곳에 조립식으로 임시 건물을 지어준다는 거에요. 건물이 사라져도 수업은 이어가야 하니까.

그래서 언젠가 저도 그 운동장의 조립식 가건물에서 생활을 하게 되고 그럴 텐데. 그것도 신기하고 재미는 있겠지만...


역시 아쉬운 건 그간 익숙해지고 정든 이 낡은 건물이 사라진다는 거겠죠.

이게 진행에 아무리 빨라도 5년 이상, 아마도 10년 정도는 걸릴 거라는데 그럼 저도 거의 정년 가까울 때가 되어 있을 테고.

그런 시점에 그간 쭉 일했던 건물이 사라져 버리는 걸 경험하는 건 많이 아쉽고 슬플 것 같아요.


사실 이미 비슷한 일을 겪기도 했거든요.

대학 시절 4년 내내 전공 수업 듣고 과 학생회실에서 붙박이 지박령 놀이를 하며 살았던 건물이 졸업하고 5년도 안 되어서 철거 되어 버렸습니다. orz


이후에 후배들 보러, 옛 동기들 만나러 학교를 방문해도 학교에 돌아온 기분이 전혀 안 들더라구요. 추억이 몰빵되어 있는 장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까요.

그래서 벌써 아쉽고 그렇습니다만. 뭐 이 곳에서 오랫 동안 더 일 해야 할 젊은 분들과 이후의 학생들을 생각하면 그게 맞겠죠.


...그래도 아쉽지만요. ㅋㅋㅋㅋㅋㅋ



4.

사실 지금도 할 일을 잔뜩 들고 왔는데 귀찮아서 이 글 적고 있구요. ㅋㅋㅋ

반 애들 이것저것 물어보는 거 톡방에서 수다 떨며 알려주다가.

오늘 개학한 아들래미, 딸래미랑 새 담임이니 반 친구들이니 등등 수다 떨다가.

등등 빈둥빈둥거리다가 열 두시를 넘겼는데 아직도 일을 시작하고 이러고 있으니 정말 사람은 나이 먹어도 전혀 변하는 게 없나 봅니다. 오늘은 몇 시에나 잘 수 있으려나...;


암튼 그래서 한동안 뻘글이 듬성듬성해지더라도 아 이 인간 또 일 안하고 빈둥거리다가 영화도 안 봤구나... 라고 생각해주심 되겠구요. ㅋㅋ

이젠 정말 질질 끌만큼 끌었으니 얼른 싸들고 온 일이나 해야겠습니다.


다들 편안한 밤 보내시구요.


마지막은 늘 그렇듯이



개인적으로 업타운은 정말 시대를 잘못 만나 덜 뜬 그룹이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윤미래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팀 전체가 그래요. 물론 윤미래가 참 대단하긴 하지만, 어쨌든 팀도 아깝습니다. ㅋㅋㅋ


근데 올려 놓고 나니 이 곡 원래 주인이 생각나서 좀 거슬리는군요. 그래도 그 인간 육성은 안 들리는 버전이니까 괜찮은 걸로...;

    • 라떼 학기초 얘기 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3월 2일 반 편성 하고 새로운 담임 선생님과 만났습니다.  반 편성 당일, 새 담임께서, 아이들 세 명을 조회 시간에 불러내더군요.  불려나간 아이들한테, 새 담임이 바로 강한  귀싸대기를 날리더군요.   아이들은 왜 맞는지 모르고, 나머지 아이들도 왜 때리는지 모르고 놀라고 있었는데, 담임 왈....." 너희 세 놈은, 1학년 때 너희들 이전 담임 선생이 문제아라고 분류해서, 명단을 나한테 넘겨 주었다. 2학년 내 반에서 문제 일으키면 죽을 줄 알아라!"   맞은 '문제아'아이들의 입술에서 'ㅆㅂ'를 읽었고, 눈빛에서 '* 같네'를 보았습니다.  이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ㅋㅋ

      • 그 시절 레전드(?)들 체험담 배틀이 옛날엔 참 많았죠. ㅋㅋ 전 갓 입학한 녀석을 뭔가 좀 아예 틀리진 않지만 '고작 저걸로?' 싶은 이유로 30대쯤 때린 후에 '150대 맞아야 하니까 이제 120대 남았다. 이건 나중에 틈틈이 때린다.'라고 했던 선생이 기억이 납니다. 심지어 약속을 지켰어요(...)

    • 3.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대학 때 학부 건물 뒷마당으로 쓰던 동산이 대학원 졸업하고 몇년 후 건물 증축으로 사라졌어요. 그냥 잔디와 나무가 있는 언덕이지만 신입생 때 거기서 고기구워 먹고 졸업식 때는 다같이 사진찍던 공간이 없어지고 낯선 건물이 들어서니 정말 섭하더라고요. 거기 별명이 '에덴 동산'이었는데...

      • 섭섭하죠. 저는 철거 소식 듣고 찾아가서 건물은 다 사라지고 1층의 바닥만 남은 곳에 가서 사진도 찍어 오고 그랬어요. 낯익은 과학생회실 바닥을 보며 혼자 감성 터지고 막... 이젠 새 건물 들어서서 그것 조차도 없죠. 아이고... ㅠㅜ

    • 2번이 충격적입니다. 저장 아이콘이 왜 디스켓 모양인지 모른다는 얘기와도 차원이 달라요.ㅋㅋㅋ


      요즘은 초등학교에서 컴퓨터 기초교육을 안 받고 올라오나 보네요?

      • 애초에 컴퓨터를 쓸 일이 없을 거에요. 어려서부터 스마트폰과 태블릿으로 온갖 것 다 하며 자란 아이들이고, 학교에도 태블릿을 구비해 놓지 컴퓨터를 쓰진 않으니까요. 그래도 중, 고등학교 때 학교 수업으로 배우니 기본 지식은 장착되어 졸업하긴 할 겁니다. ㅋㅋ

    • 몇 년마다 이동해서 근무해도 근무지에 정이 드는데 계속 같은 곳에 계셨다면 아쉬움이 아주 크겠습니다. 아직은 미래의 일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어려움 중에 적응하기가 힘들어 진다는 점이 있잖아요. 어떤 종류든 낯선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에 민감해지는 것 같아요. 매년 새로운 학생들을 접하는 3월에는 서로 맞추자면 스트레스도 따를 것인데... 신선함에서 받는 에너지가 더 크기를요.

      • 사실 지금 당장 옮겨도 한참 아쉬울 텐데 지금보다 더 나이 먹고 정년이 10년, 5년 정도 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옮긴다면 더 더 더욱 아쉽고 그리울 거긴 합니다. ㅋㅋ


        하지만 위에도 적었 듯이 이 곳에서 계속 일 해 나갈 젊은 분들을 생각하면 이게 맞는 거겠죠. 뭐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을 만한 건물도 전혀 아니고 하니까요.


        대신 새로 세워질 건물은 정말 아주 많이 좋았으면 합니다. 그래야 말씀대로 에너지라도 받겠죠. 하하.

    • 1. 또 이렇게 한 아이들을 맡게 되셨군요. 잘 가르쳐주시고 학생들도 배티님도 모두에게 즐겁고 나중에 추억에 남는 1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CD - MP3로 넘어가던 시기에 이제 요즘 애들은 레코드나 테이프는 모르고 자라겠구나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젠 MP3 마저 과거 유물이 된다니 시간이 참 허허;; 사진 - 파일 구분은 좀 다른 문제 같긴 하지만요.




      4. 그래도 나름 당시 교포출신 그룹들 중에서 솔리드랑 둘이 가장 잘 된 케이스인데 윤미래 말고 거의 다 묻힌 건 확실히 아쉽긴 해요. 그 곡의 원래 주인에 대한 넷플 다큐를 작년 말에 봤는데 어떻게 보면 하비 와인스타인 같은 작자들보다 더 악질인 아주 개XX였더라구요. 노터리어스 비기 추모하는 곡인데 관련 뒷이야기들도 듣고나니 이 곡의 대히트로 부와 명예를 누렸던 게 역겹기도 하구요. 그래도 어찌저찌 잘 빠져나가서 지은 죄에 비하면 너무 가벼운 형량을 받았던데 참 권선징악이라는 게 얼마나 순진해빠진 말인지 다시 한 번 새삼 느꼈습니다.

      • 1. 아직까진 다들 착하고 귀엽고 즐겁긴 한데... 얘네들은 매 달마다 변하는 애들이라 방심은 금물이구요. 하지만 일단 좋으니 무척 좋고 그렇네요. ㅋㅋ




        2. 이젠 그냥 다 스트리밍이니까요. 근데 스트리밍이라고 해도... 대부분 음질 설정 같은 게 존재한다는 것도 모르고 걍 기본 세팅된 저음질로 듣고 다니는 게 슬픕니다. 헤드폰 비싼 거 쓰고 다니면서 bps가 뭔지도 모르면 어떡하라고!! 라는 꼰대 마인드가 불끈불끈... ㅋㅋㅋㅋ




        4. 사실 솔리드와 비교해도 이 분들은 팀 자체가 인기가 있고 인정 받는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죠. 그냥 곡이 좋으면 반응 좋고 아니면 묻히고... 를 반복하다 사라진 느낌이라 더 아쉽구요. (구) 퍼프 대디 재판은 판결이 나온 줄도 몰랐는데 검색해 보니 5년형이군요. 근데 판사님 말씀이 뭔가 정겹(?)습니다. “자수성가한 예술가이자 사업가로, 전 세계 유색인종 커뮤니티를 포함한 지역사회에 혁신과 영감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참작해 형량을 결정했다. 라니, 여기나 저기나 이런 건 똑같군요.... orz

    • 진정한 한해 시작하셨군요. 올해 만난 아이들과도 귀여운 일 많이 생기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써주신 이야기들이 다 놀랍네요ㅋㅋㅋ 파일과 사진의 차이라… 어린 세대를 바로 접하시는터라 그 차이를 너무 크게 느끼실거 같아요. 퇴직하시는 날까지(?) 말이 잘 통하는 샘이 되시길!!!
      • 감사합니다. 일단 시작은 좋은 느낌인데 두고 봐야겠지요.


        물론 이 또래 애들이 다 이렇다거나, 이런 애들이 훨씬 많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만. 그냥 저 일 자체가 참 신선(?)한 느낌이라서 적어 봤어요. 하하. 아무리 그래도 mp3가 아예 사라지진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온라인이 아니면 쓸 수 없게 되는 서비스들은 싫어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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