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잡담] 오랜만에 본 '김씨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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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때문에 흥행이 망했다는 말들이 많은데 솔직히 제 생각엔 '지구는 지켜라'도 그렇고 딱히 크게 왜곡된 홍보도 아니고 별 차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 최근 실직 당하고 여자친구에게 차이고 거액의 빚까지 쌓여 인생 밑바닥을 찍은 김씨는 죽기로 결심하고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립니다. 주인공이 영화 시작하자마자 죽을리가 없으니 당연히 실패하고 밤섬에서 깨어났네요. 처음엔 당황해서 구조요청, 탈출시도를 해보지만 전부 실패하고 발견될 기미도 보이지 않자 원래 계획대로 다시 자살시도를 해보다가 어차피 자신은 이미 사회적 죽음을 당한 상태니까 의미가 없어졌다고 생각해 그냥 여기서 살아보기로 합니다.


한편 한강 근처 아파트에서 극단적인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는 한 여성이 있었는데 우연히 김씨를 발견합니다. 그래도 마음씨는 착해서 어떻게 도와주고는 싶은데 단순히 방에 틀어박힌 수준이 아니라 타인과의 접촉, 의사소통을 완강히 거부하는지라 쉽지가 않습니다. 과연 이 둘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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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가장 멀쩡하게 뽑힌 해외 포스터인데 국내 메인으로 걸었어도 뭐... 리즈시절 톰 행크스, 로버트 저메키스 콤비였다면 혹시 모르겠습니다. 마침 영제에도 '캐스트어웨이'가 들어가네요. ㅋ)



- 며칠 전 글을 올렸던 '하얀 차를 탄 여자'에서 정려원을 보고 정말 오랜만에 생각나서 재감상 했습니다. 개봉당시 극장에서 나름 재밌게 감동적으로 봤었는데요. 손익분기 반도 못채웠을 정도로 망했지만 이후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그 유기농(?) 수제 짜파게티 먹방씬이 레전드 밈으로 남았는데 막상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다시 본 적이 없었어요.


제일 재밌는 부분은 한국판 '캐스트어웨이'를 찍는 초반입니다. 참 처절하게 슬프고 비참하고 더러운 동시에 빵터지는 상황의 연속과 정재영의 개인기 차력쇼를 보다보면 그냥 이걸로만 한 90분짜리 버전을 내놨으면 더 승산이 있었겠다 싶을 정도로 재밌어요. 특히 결국 갈증을 못이겨 한강물 드링킹 하면서 "먹을만하네! 맛있네!" 하는 장면이라던가 정말 ㅋㅋㅋ 


그러다 정려원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단조로운 진행은 피하지만 아무래도 페이스가 죽으면서 '재미'는 좀 덜합니다. 사실 김씨 상황도 굉장한 무리수 설정을 재밌으니까 눈감아주면서 보는건데 이 히키코모리녀도 설정이 너무 극단적이다보니 현실에 한발 정도는 걸치고 있던 톤에서 아예 벗어나 우화 같은 느낌으로 보게 되는 것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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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에 흉터가 있다는 게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라는 설정인데 그냥 씻고 멀쩡하게 차려입으면 평소의 정려원이랑 별 차이가 없을 것 같...)



- 그런데 그래서 안좋다는 건 또 아니구요.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살면서도 극단적으로 사회와 격리되어 존재감 없이 무시 당하고 살아가는 두 남녀가 처음으로 또는 아주 오랜만에 서로 소통을 하게 되면서 미약하나마 삶의 희망을 찾는다는 참으로 뻔하고도 뻔한 비유와 메시지인데 이걸 코믹과 감동, 현실의 비극 사이를 오가면서 두 배우의 망가지는 것도 감수하는 열연과 갬수성 적절히 터뜨려주는 스코어로 전달해주니 효과적으로 확실하게 마음을 툭 건드려주는 건 여전하더군요. 짜파게티 먹방씬에서 절정을 찍은 후 너무 결말을 맺기위해 둘에게 갑자기 동시에 닥치는 위기상황과 도식적인 클라이막스는 좀 그랬지만 마지막까지 빛을 발하는 정씨 콤비의 연기와 너무 민망해지기 전에 담백하고 흐뭇하게 끊어주는 엔딩이 있기에 딱히 불만스럽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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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면서 새삼스럽게 2000년대 중후반 쯤의 정재영이 참 훌륭한 성격파 배우이면서 동시에 곧바로 관객들에게 친근함과 호감을 줄 수 있는 충무로 리딩맨이었구나 싶었습니다. 당시 '아는 남자'도 있었고 은근히 미녀배우들과 짝으로 주연작을 많이 찍었는데 작품 완성도와 별개로 흥행성적이 좀 애매해서였는지 어느샌가 조연급으로 내려와있더군요. 그래도 최근에 '노량'이나 '리볼버' 등에서 얼굴 나오면 그렇게 반갑더군요.


정려원은 걸그룹 샤크라 출신에서 생각보다 금방 성공적으로 연기자 전환을 해낸 걸로 기억하는데 이런 역할에도 거침없이 도전하고 오랜만에 여러가지 관련영상들을 보니 스태프들 전원에게 수작업한 팀 티셔츠 선물로 주고 그러는 걸 보니 갑자기 없던 팬심도 생기고 호감이었습니다. 전혀 보진 않았지만 화제가 됐던 '마녀의 법정' 소신 수상소감도 떠올랐구요. 필모를 보니 대표작이 거의 드라마인데 제가 국내 드라마를 거의 안봐서 앞으로는 영화도 좀 많이 찍어주시길 바랍니다. 팬질 좀 하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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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맛있어보이고 먹방연기는 이거 하나만큼은 하정우, 브래드 피트 다 이긴다 싶었습니다. 이걸 늦은밤에 보다가 저도 짜파게티가 엄청나게 땡겼는데 그냥 둥글레차 벌컥 벌컥 들이키고 참은 나 자신, 칭찬해!)



- 워낙 나름 컬트가 된 작품이라 어지간하면 다들 보셨을 것 같은데 저처럼 오랜만에 생각나셨다면 재감상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먹방씬 때문에 빈속은 위험합니다. ㅋ 짜파게티 전 초반에도 생선, 새고기 먹방씬들이 제법 찰지니까 미리 주의하시구요. 넷플릭스에서 봤고 왓챠, 티빙 등에 올라와있습니다.



*여담 1


- 히키코모리녀 파트에서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중요한 소재로 나오죠. 추억도 돋고 불과 몇년 후 소셜 미디어 시대가 도래한 걸 생각하면 조금만 더 길게 넓게 보고 운영했으면 얼마나 더 성공하고 벌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하하;;



*여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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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보다가 제일 놀라고 저절로 빵터진 부분입니다. 검색해보니까 이미 뜨고 난 뒤에 재발견되서 나름 화제가 됐던 모양이에요. 열심히 독립영화 찍고 연출하고 단역으로 나오던 시절이었나보네요. 최근에 당당히 멜로영화 주연으로 손익분기 넘기고 200만 찍고 그랬던데 참 많이 컸어요. ㅋㅋㅋ


사실 작중 가장 큰 무리수는 김씨가 밤섬에 표류했는데 히키코모리녀 제외하곤 아무에게도 발견이 안된다는 설정이죠. 뭐 여기서 살기로 결심한 뒤로는 유람선 지나갈 때 숨기도 하고 그런다는 장치를 넣어두긴 했지만 생태계 보존구역이라 실제로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늦어도 하루 안에는 발견되서 구조(추방) 될거라고 하네요.

    • 두 번째로 올리신 해외 포스터는 얼핏 보고 정말 캐스트 어웨이 포스터인가? 했네요. ㅋㅋ 자세히 보니 전혀 아니었습니다만.




      평가가 나쁘진 않은데 좀 애매했다고 기억하네요. 그리고 제가 당시 유행하던 한국 코미디 영화들을 별로 안 좋아해서 넘겼던 작품인데 이렇게 정성글을 적어 주시니 이제라도 한 번 봐야 하나 싶기도 하구요. 말씀대로 정재영씨가 당시에 완전 전성기이긴 했는데, 단독 주연으로 나온 작품들이 거의 다 잘 안 되면서 어느 순간 급격하게 하락세를 탔던 기억이 있어요. 앙상블 캐스팅에선 참 반짝반짝하던 분이라 아쉬웠죠. 




      아... 구교환씨인가요. 요즘엔 아예 그냥 미남 배우로 등극하셨던데. 대기만성이란 게 이런 거였구나 싶네요. 하하. 요즘보다 안 젊어 보여요(...)

      • 의도적으로 그런 착각(?)을 노렸을지도 몰라요. 제목에도 들어가고 말이죠. ㅋㅋ




        그랬죠. 전문가 평가는 호의적인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막 꼭 봐야한다는 극찬은 아니었고 실관람객들 반응도 괜찮은 편이었는데 그냥저냥 묻혔어요. 나중에 저 짜파게티 먹방이 유명해지면서 궁금해서 봤다가 의외로 괜찮네? 이런 식의 재발견이 된 것 같아요. 정재영이 잘했으면 황정민 비슷한 루트도 탈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또 한계가 있었겠죠. 작품 선구안이 나쁘진 않았는데 흥행운이 아쉬워요.




        그 배우 맞습니다. ㅎㅎㅎ 뭐랄까 커리어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아서 마음의 여유도 있고 돈도 잘 벌고 그러시니 관리도 더 잘되고 그런 거 아닐까요. 하하

    • 정려원은 저때도 기대이상으로 연기를 잘했던 걸로 기억하네요.

      감독의 세심한 연출이 돋보였어요.
      • 아이돌 출신치고 별다른 연기력 논란도 없이 꾸준히 잘한 케이스 같아요. 각본은 무리수 설정이 있지만 그걸 효과적으로 잘 밀어붙였고 세심한 연출에 저도 동의합니다.

    • 제가 기억하는 장면중에 후벼파는게.. 퍼가요의 향연이었거든요. 그때 여자 김씨가 받았을 정신적 고통을 생각해보면..근데 그것마저 이겨내는 상황이 오죠. 처음 봤을 당시에는 엔딩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 못해봤었는데, 나중에 알게된 게 63빌딩 꼭대기에 올라가서 영화 시작과 같은 시도를 했었을 거라고..ㄷㄷ;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갔다는 느낌이 듭니다. 

      • 맞아요. 이번에도 보면서 그 장면에서 아주 섬뜩하고 소름끼쳤습니다. 악플에 대한 충격을 짧고 굵게 제대로 보여준 연출이었어요. 결국 서로에 대한 작은 관심과 연민이 목숨까지 살릴 수 있다는 뻔하지만 너무나도 와닿는 메시지였어요.

    • 본문에 '아는 여자'를 '남자'로 적으셨네요.ㅎ 저는 '아는 여자' 보고부터 정재영 좋았고 활동이 뜸해서 안타까운 호감 배우입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서 반갑게 잘 봤어요. 배우가 좋아 그런지 홍상수 감독 영화 중에 이 작품 좋더라고요.


      '김씨 표류기'는 좀 무리수가 없잖았고 마무리가 어색해서 아쉬웠으나 그래도 재미있게 봤던 '호'쪽 영화입니다. 

      • 평소에도 그 영화 언급할 때 자주 하는 실수인데 이 글에서도 그렇게 해버렸네요. 그런데 막상 thoma님 말고는 지적하는 분도 없었고 ㅎㅎㅎ 저는 '킬러들의 수다' 때부터 꾸준히 호감입니다. 언급하신 작품 포함해서 홍상수 영화들에서도 좋았구요. '우리 선희' 에서도 참 웃겼어요.




        무리수는 엄청 많은데 그 어색한 마무리가 저는 캐릭터와 그 상황에 잘 어울리고 맘에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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