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잡담...아직은 비싼 옷을 살 때가 아니다
1.옷을 사는건 주식을 사는 것과 비슷해요. 눈앞에 놓여진 옷은 당장 사지 않으면 살 기회가 없을 것만 같고, 오늘이 마치 최저가일 것만 같죠. 그리고 옆에는 점원이 따라붙는데 이건 마치 사짜 리딩방과 비슷해요. 그 점원은 손님에게 필요한 옷이든 아니든, 어울리는 옷이든 아니든, 심지어는 맞는 옷이든 아니든간에 신경쓰지 않아요. 그 점원에겐 그저 옷을 파는것만이 중요한 거니까요.
점원 입장에서는 옷 자체는 아무런 쓸모가 없거든요. 옷을 돈으로 바꿔야만 비로소 옷이 쓸모가 있는 건데, 그 시점에서 옷은 가게를 떠나 버리고요. 결국 옷이란 건 가게 안에 있는 동안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거예요. 시즌이 끝나면 상장폐지가 되고 이월상품으로 넘어가서 정리매매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가능한한 빨리 처분해야 하는 골칫거리인거죠.
2.게다가 거울! 옷가게에 놓여진 거울은 마치 나를 패션 모델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요. 집에 돌아오고 난 뒤엔 쓰레기같은 거짓말에 속았다는 걸 알게 되지만 문제는 이미 집에 돌아와버린 후니까요. 잘못 산 옷을 들고 또다시 가게로 가서 일전을 치르는 건 매우 망설여지는 일이죠.
3.최근엔 큰맘 먹고 비싼 옷을 사러 갔어요. 젠슨황이 입은 가죽자켓을 사려고 했는데 품절이더라고요. 2000만원짜리 옷은 비싸긴 하지만 50년 정도 입으면 대충 1년에 40만원 내고 좋은 옷을 입는다는 투자로 여기려 할 터였지만...올 품절이었다 이거죠. 어쨌든 나는 앉은 자리에서 2000만원을 아낀 거죠.
4.휴.
5.그러다가 어제는 세일을 하는 이벤트 매장을 봤어요. 약 8~90%가량 할인해주는 옷들이었어요. 사실 99% 할인해주는 옷이더라도 필요가 없으면 사면 안 돼요. 그러나 나도 인간이니까...80%씩 할인해주는 이벤트를 보면 마음속에서 그 옷을 사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내곤 하죠. '이 주식은 지금 바닥이야. 앞으로 오를 일밖에 없어.'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어쨌든 할인 매장이다보니 인기있는 사이즈는 거의다 나가고 인기없는 사이즈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딱 하나 남아있던...괜찮은 사이즈의 옷을 발견해서 흐뭇하게 입었어요. 옷은 딱 맞았고 같이 있던 형도 좋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순간 갑자기 점원이 끼어들더니 '그 옷은 너무 작아요. 한 치수 더 큰걸 사야 해요.'라고 강하게 말했어요. 그래서 한 치수 늘려 입어보니...뭔가 긴가민가했어요. 이건 뭔가 아닌 것 같았는데 점원은 '안에 긴팔을 끼워 입는 걸 감안해야 한다'라던가 '뒤에서 보면 어색하다'같은 이유들을 계속 말했어요.
6.사실 나는 지금보다 훨씬 살이 쪘을 때조차도 그 사이즈의 아우터는 사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결국 그런가보다 싶어서 그냥 큰 사이즈의 옷을 샀어요. 결제하는 순간 점원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어요. 글쎄요. 나는 어떤 사람의 얼굴에서 그렇게 빠른 속도로 웃음기가 사라지는 걸 거의 본적이 없어요. 점원은 결제한 카드를 되돌려주며 '절대로 환불이나 교환은 안됩니다.'라고 말했어요.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이죠. 그건 마치 레버넌트의 존 피츠제럴드를 보는 듯했어요.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긴 하지만...이렇게 할인을 해주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나왔어요. 하지만 나오고 나서 3분 정도 걷자 아차 싶었어요. 나는 가게에 딱 하나 남아 있던 인기있는 사이즈 옷을 사지 않은 실수를 저지른 거예요. 지금 들고 나온 사이즈는 위에 썼듯이, 가장 살이 쪘을 때의 나조차 사본 적는 사이즈니까요. 그 뜻은, 내가 지금 들고 나온 옷은 상장폐지를 한번 더 당해도 돈과 바꿀 사람이 나타나기 힘들 거라는 뜻이고요.
그리고 돌아가서 다시 한번 입어보니 역시. 이토록 클 수가?! 너무 큰 거예요. 이렇게 큰 옷인데 왜 거기선 눈치채지 못한 거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말 그대로 안 팔릴 옷을 내게 떠넘기려는 수작질이었던 거죠.
7.그야 돌아가서 환불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돈은 수업료로 생각해야겠어요. 주식과 마찬가지로 맨 처음에 좋다고 여겨진 옷이 좋은 옷은 거예요. 나 같은 사람은 아무리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이미 여러 번 꼬아서 생각하는 게 기본이기 때문에, 거기서 한번 더 꼬려고 하면 완전히 빠그라지는 거죠.
주식은 이제 매매를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옷은 역시 초보인 거예요. 옆에서 사기꾼 리딩방이 조금 떠들어댄 것만으로 좋은 주식을 못 사고 잘못된 주식을 산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앞으로는 옷을 살 때 주식을 사는 것처럼 남의 말에 신경쓰지 않고 내 직관대로 사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그리고 다가오는 점원들에게 악의가 없을 거라는 착한 생각도 좀 집어치우고요.(응? 이나이 먹고?)
8.게다가 어제 거기서 싸다는 이유로 산 옷이 세벌이예요.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냉정히 생각해보니, 내가 그 옷들을 입고 외출할 일은 거의 없어요. 주식과는 달리, 옷은 10번 매수하면 8~9번 정도는 거의 실패에 가까운 거죠.
그래서 앞으로는 당분간 싼 옷을 사기로 했어요. 좀 실패해도 괜찮을 싼 옷을 사면서 옷을 매수하는 실력을 길러 보려고요. 아직은 비싼 옷을 살 때가 아니라 소액으로 매수하는 실력부터 길러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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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시 가서 환불도 안하고, 그 정사이즈의 옷을 하나 더 산다는 선택지도 있어요. 어차피 그 옷은 아주 싸니까요. 하지만 그러지 않으려고요. 그 옷을 볼 때마다 주식에 대한 격언을 한번씩 되새기는 용도로 써먹으려고 해요.
'직관적으로 생각하라.' '기회는 또 온다. 눈앞의 기회가 전부가 아니니 관망해라.' '남의 의견은 듣지 마라.'
옷 한번 잘못 산 걸 100억을 버는 기회로 바꾸는 게 더 이득이니까요. 그리고 100억을 벌면 그 때는 정말로 맞춤 양복을 사입어야겠어요.